2015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707만명의 관객을 모은 영화 ‘내부자들’에서 “개 돼지”라며 대중을 기만한 기득권 세력의 대사를 기억하는가. ‘내부자들’로 부패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고 10·26 사건을 소재로 한 ‘남산의 부장들’로 현대사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치는 등 시대를 날카롭게 조명하는 작품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친 우민호 감독이 또 한 번 지나간 시대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비춘다. 오는 24일 개봉하는 ‘하얼빈’을 통해서다.
‘하얼빈’은 일제의 국권 침탈의 발판이 된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향하는 독립군의 이야기를 그렸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이 그 중심에서 독립군 동료들과 함께 거사 결행을 위한 힘든 여정을 이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는 위인이 바로 안중근 의사이다. 30대 젊은 나이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죽기를 각오한 안중근 의사의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극적인 삶이 계속해서 스크린으로 소환되는 이유일 것이다.
‘하얼빈’은 ‘늙은 늑대 척결’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독립군의 여정에서 그 의지를 끊임없이 시험받는 안중근의 고뇌를 담는다. 자신들의 전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국공법을 따라야 한다며 포로를 풀어줘 동료들의 질타를 받기도 하고, 일본군의 방해로 수많은 동료들을 눈앞에서 잃은 직후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밀정들의 암약으로 동료들도 함부로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목표를 위해서 전진하는 안중근과 동료들의 험난한 여정은 광활한 대지, 비장한 선율과 어우러져 비감을 더한다. 특히 동료들을 몰살당해 혼자서 흩날리는 눈발을 헤치며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한 발 한 발 내딛는 안중근의 모습은 그 당시 독립군이 느꼈을 외로움과 괴로움, 불안감, 무력감을 시가적으로 표현해내며 웰메이드 프로덕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현 시국을 예견한 것 같은 장면과 대사들이다.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면서 “백성들이 가장 골칫거리”라며 말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대사나, 반복되는 희생과 실패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되새기며 “불을 밝혀야 한다”는 안중근의 대사는 현 시국을 상기시키며 가슴에 와닿아 깊이 박힌다.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달려간 안중근과 이름 없는 수많은 독립군에게서 국민의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광장으로 달려나간 오늘날의 국민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면 지나칠까. 안중근의 ‘그 불’이 107년 뒤 광화문 광장을 밝혔고, 115년 뒤 여의도 광장으로 이어져 또 한 번의 커다란 변화를 이끌고 있다.
내년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20주년이 되는 해다. 다시 돌아오는 을사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 관객과 만나게 된 ‘하얼빈’의 운명이 의미심장하다.
감독: 우민호 / 출연 :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유재명, 릴리 프랭키 그리고 이동욱 / 제공·배급 : CJ ENM / 제작 : 하이브미디어코프 / 개봉일: 12월24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13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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