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막을 내리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숨기는 미스터리한 장하빈과도 작별입니다. 시나리오의 첫인상을 떠올려보면
윽, 너무 답답해! 저는 작품 오디션장이나 회의 자리에서 감독님께 질문을 잘 안 해요. 왜냐하면 제가 아는 게 많이 없고 이미 설명을 잘해주시기 때문이죠. 이 작품을 앞두고 유일하게 감독님께 “어떻게 되는 건가요?”라고 여쭤봤어요. 그 정도로 작품 메시지가 좋아서 잘 표현하고 싶은 만큼 궁금한 것도 많았어요. 심리 스릴러 장르지만 사실 가족애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중요했어요. 이만큼 매력적인 드라마를 본 적 없어요.
장하빈과 첫 만남은
각본을 읽다 보면 인물의 모양이 대강 잡혀야 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알 수 없었어요. ‘왜 이런 말을 하고 왜 이런 행동을 할까?’의 연속이었죠. 하빈이는 대본에 항상 간결하게 표현돼 있어서 속을 알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촬영할 때는 제가 캐릭터 안에서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감독님이 많이 열어주셨어요.
이 인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더 매력적인데요.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나요
전혀 없어서 힘들었어요(웃음). ‘나라면 이렇게 하겠다!’ 싶은 신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하빈의 경우는 아예 없었어요.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야 했죠. 무의식적으로 제 말투나 습관이 나오는 순간 하빈이는 곧바로 망가지거든요. 초반에는 관에 갇힌 채로 연기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은 것부터 섬세하게 신경 써야 했어요. 몇 개월이 흘러 비로소 적응됐죠.
부녀 사이를 연기한 한석규 배우와의 합이 돋보입니다. 선배의 연기를 눈앞에서 봤을 때
선배님이 연기하는 순간, 공기가 달라져요. 경이롭다는 표현이 딱인 것 같아요. 선배님은 활자 그 이상의 감정을 표현할 때가 많아 함께 촬영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그 흐름을 타서 하빈이를 완성시킬 수 있었죠. 하루는 감독님이 “아빠랑 연기하는 게 제일 편하지”라고 하셨죠(웃음). 티가 났나 봐요. 그 정도로 회차가 갈수록 선배님은 정말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됐어요.
한석규 배우의 둘째 딸과 같은 병원 옆방에서 태어나 두 사람은 더욱 독특한 연결 고리를 형성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피가 섞인 부녀처럼 긴밀하게 연결된 듯한 장면이 있었다면
저는 집을 나가려고 하는데 제가 아프다는 걸 들은 아빠가 죽을 사서 들어오는 장면인데, 작품에선 짧게 스치듯 지나가요. 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는데 죽이 소품이 아니라 진짜 아빠가 사온 음식처럼 느껴질 만큼 울컥했어요. 선배님은 항상 “어디 아픈 덴 없니?”라고 물어보시거든요. 그래서 그 죽이 제 마음을 울렸나 봐요.
이번 작품에 대한 반응은 찾아봤나요
저는 피드백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내 느낌과 시청자의 느낌이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궁금해요. 딱 예상한 반응이더라도 신기하죠. 하빈이에 대해서는 반반으로 나뉘더라고요. 너무 답답해서 그만 보고 싶다는 분과 회차가 갈수록 하빈에게 감정이입 돼서 슬프고 응원하고 싶다는 분들. 두 반응 모두 공감해요.
이 작품을 통해 연기와 삶에 있어 조언을 듣기도 했는지
한석규 선배님은 늘 제 상태를 눈치채시고 적재적소에서 조언해 주셨어요.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요. 하빈이가 나와 너무 다른 성향의 인물이라 연기에서 순간적인 집중력을 잃고 헤맬 때 내색 안 하려 해도 어른 눈에는 다 보이나 봐요. 그럴 때 선배님이 사람들이 못 듣는 곳으로 저를 데려가서 조용히 의견을 주세요. “우리가 가장 집중해야 하는 건, 이게 진짜 상황이라고 믿는 거야. 너는 당연히 하빈이가 아니고 나도 태수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정말 존재하는 시간이야”라고 하셨어요. “그걸 한 번 생각해 봐”라고 하는데 순간 확 빨려 들어가더라고요. 그 말은 아직도 깊이 새기고 있어요.
〈스위트 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같은 장르적 특성이 돋보이는 작품에서 연기할 때 당신만의 접근법이 궁금합니다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연기 경력에 거의 장르물만 쌓이고 있는데요(웃음). 〈스위트 홈〉의 하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하빈을 연기할 때 가끔 상황 파악이나 감정 표현에 고민이 생기는 지점이 있으면, 나름의 서사를 만들어요. 인물에 대해 나만 아는 과거의 서사를요. 그럼 조금 쉽게 해결되죠.
12월 방영 예정인 〈수상한 그녀〉에서는 어떤 매력을 펼칠 예정일까요
개인적으로 정말 행복하게 촬영한 작품이에요. 최하나는 구김살 없고 워낙 밝은데다 가수라는 꿈에 욕심도 많은 인물이에요. 그 욕심은 아주 건강하고요. 그저 ‘깨발랄’하고 조금 눈치는 없지만 크게 밉지 않은 친구죠. 하나를 연기할 때 너무 즐거웠어요.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하나요
그럼요. 엄청 훈련받았습니다.
춤과 노래에 재능이 있나요
전혀! 이 작품을 하기로 결심하고 춤과 노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카메라 테스트를 했어요. 준비해 간 뉴진스의 ‘Hype Boy’를 췄는데, 그때 관계자 분이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 나요. “살면서 이렇게 소극적인 ‘Hype Boy’는 처음 봐요.”
하나는 깨발랄한 반면 하빈은 어둡고 조용한 소녀였죠. 스물셋 채원빈은 어떤 소녀일지
꽤 발랄한 편이에요. 장난치는 거 좋아하고 친한 친구랑 있으면 굉장히 수다스럽죠. 그래서 하나를 연기할 때 즐거웠나 봐요.
내가 요즘 푹 빠진 건
빠져 있다고 하기엔 자주 하진 않는데, 친구들이랑 보드게임 카페 가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대여해주는 곳에서 마리오 카트나 UFC 게임을 하기도 하고요. 쌀국수도 좋아해요. 날씨가 좀 차다 싶으면 바로 쌀국수 먹으러 갑니다.
당신은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 편인가요
청춘을 다룬 이야기에 관심이 가요. 슬픔이나 행복, 즐거움, 아픔, 청춘을 표현하는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지만 그 점이 재미있죠.
올해 스물세 살인 나는 어떤 청춘인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치열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할 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나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하는 편이거든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찾아가는 중이긴 한데 그러다 문득 나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성격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점이 나를 괴롭힐 때도 있지만 이런 경험 덕분에 스스로 조절하는 힘을 찾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치열하게 잘 살고 있는 청춘 아닐까요!
치열하게 살다 보면 흔들리는 순간이 있을 텐데
내 상태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도 있고 끝까지 물고 늘어질 때도 있어요. 근데 저는 굉장히 잘 일어나요. 잘 넘어지는데 잘 일어나요.
10년 뒤엔 어떤 역할에 흠뻑 빠져 있을까요
더 나이가 들고 삶에 경험이 늘어나면 지금 같은 역할을 맡아도 다르게 표현하는 지점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렇게 삶에 경험이 쌓여서 어떤 인물과 만났을 때,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기대되기도 해요.
만나보고 싶은 캐릭터는
지금 딱 떠오르는 건 〈또 오해영〉에서 서현진 선배님이 연기한 오해영. 그 역할을 정말 애정해요. 오해영은 누구에게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꼭 표현해 보고 싶어요.
올해는 채원빈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까지 한 해에 두세 작품을 병행하며 촬영했는데 올해 3월부터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에만 몰두했어요. 한 작품에만 진득하게 몰두한 건 처음이어서 새로웠고 자극이 됐어요. 연기나 개인적으로 배운 게 많거든요. 그만큼 이 작품은 올해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고 제 전부였습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장식할 건가요
여느 때와 같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틀어놓겠죠.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조그만 크리스마스트리도 장식해 보려고요. 갖고 싶은 선물은 미니 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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