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고의 충돌 테스트 및 안전 장비 심의 기관인 ‘유로 NCAP(Euro NCAP)’이 안전 평가 프로그램에 상용차를 포함했다.
세계 최대 평가 기관이 상용차 안전을 위해 나서면서 글로벌 상용차 업체들이 안전성 확보에 한층 더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유로 NCAP은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와 더불어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안전 기관이다. 유로 NCAP은 유럽 내 판매 및 출시되는 승용차, SUV, MPV 등을 대상으로만 안전도 평가를 실시했다. 상용차가 안전 평가에 추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로 NCAP이 상용차의 안전도를 평가를 시행하는 이유는 사고율 저감이 대표적인 이유다. 상용차는 사고 발생 시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 전역에 운행 중인 상용차는 3%에 불과하지만 상용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전체에서 15%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주행 조건이 다른 까닭이다. 대게 상용차는 무거운 짐을 싣고 달리기 때문에 제동거리가 긴 편이다. 예컨대 8.5톤 화물차를 기준으로 시속 70킬로미터(㎞)로 주행 시 제동 거리는 35미터(m)가량으로 15m인 일반 승용차 대비 2배 이상 길다.
큰 사각지대로 인한 사고도 빈번하다. 상용차는 구조상 운전석에서 보행자나 자전거 등이 최소 1.5미터(m) 이상 떨어져 있어야 시야에 들어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바짝 붙어 움직이는 물체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여러 제조사는 사각지대로 인한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사각지대 감지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다.
유로 NCAP은 이러한 상용차의 특성을 고려해 안전도 평가 항목을 구성했다. 주요 평가 항목으로는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속도 제동 장치인 ‘지능형 속도 적응(ISA)’, ‘자동 긴급 제동 장치(AEB)’, 주변 물체를 인식하는 장치인 ‘보행자 및 자전거 이용자 감지 장치(VRU, Vulnerable Road User)’, ‘차선 이탈 방지 장치(LSS)’, 차량 전면 및 측면 센서를 활용해 사각지대를 능동적으로 체크해 사고를 예방하는 ‘회전 및 이탈 방지(Nearside AEB)’, 카메라 모니터링 시스템(eMirrors) 등이다. 충돌 테스트는 오는 2026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특히 사각지대로 인한 사고 발생률이 높기 때문에 보행자 및 자전거 이용자 감지 장치의 정확도는 안전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게 유로 NCAP의 설명이다.
평가 결과는 각 항목의 점수를 종합해 별 0개에서 5개까지 총 6개 등급으로 나뉜다.
유로 NCAP은 지난달 20일 처음으로 상용차 안전도 평가를 시행했다. 이번 평가는 각국에 위치한 공식 연계 기관 14개 시설 중 스웨덴,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등 6개국 7개 시설에서 진행됐다. 평가에 참여한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 ▲볼보트럭 ▲만트럭 ▲이베코 ▲다프 ▲르노 ▲스카니아 등 7개다.
평가 결과 대형 트럭 최초로 볼보트럭의 FH와 FM이 최고 등급인 별 5개를 획득했다. 두 차량은 모두 도심 교통 상황 속에서 취약한 보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설계된 능동 안전 시스템과 시야 확보를 바탕으로 ‘도시 안전(City Safe)’ 기준을 충족했다.
르노 트럭 T는 별 4개를 획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로 NCAP 측은 르노 트럭 T가 탑재된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의 정확도와 충돌 회피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고 설명했다.
유로 NCAP 관계자는 “신설된 상용차 안전도 평가는 모든 신차가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해당 평가를 통해 상용차 제조 업체가 더욱 안전한 상용차를 생산하는 데 지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상용차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0’으로 만든다는 ‘비전 제로(Vision zero)’를 달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유로 NCAP 상용차 안전도 평가가 시행됨에 따라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용차는 안전과 떼려야 뗄 수 없다”며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실시하는 ‘KNCAP(Korea Car Assessment Program)’에도 상용차 안전 평가 항목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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