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대명절 추석이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지내야 하지만, 가족들의 말과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많다. 음식 마련 노동이든, 누군가의 말 한마디든 ‘명절 스트레스’가 ‘도화선’이 돼 이혼으로 이어지는 부부도 있다. 젊은이들은 집안 어르신들의 ‘잔소리 지뢰밭’이 걱정이다. 에스케이(SK)커뮤니케이션즈 시사 폴(POLL) 서비스 ‘네이트큐(Q)’가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성인 6220명을 대상으로 ‘5일간의 긴 추석 연휴, 가장 부담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20대 응답자들은 ‘친인척 잔소리’를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다.
좋은 관계와 원활한 소통, 모두 바라지만 쉽지 않다. ‘한겨레’는 독자들의 ‘슬기로운 명절 소통’을 위해 ‘소통 명강사’인 김창옥씨를 만났다.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관계와 소통을 주제로 최근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라는 책을 내고, 티브이엔(tvN)에서 소통을 주제로 ‘김창옥쇼’를 진행하는가 하면, 유튜브 ‘김창옥티브이(TV)’를 통해 145만 구독자와 소통하고 있는 그는 ‘관계와 소통’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남자들은 술…동그랑땡은 왜 500개씩이나
“어렸을 적부터 한 생각인데, 저는 추석이 20년 만에 한번 오면 좋겠어요.(웃음) 저는 (명절에 관한) 좋은 기억이 2~3, 안 좋고 기대 안 되는 것이 7~8인 집안에서 자랐거든요. 심지어 (저와 소통이 잘되지 않던)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는데도, 칡넝쿨처럼 수십년 동안 얼기설기 꼬여 있는 (가족)관계가 바로 좋아지지는 않더라고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소통 명강사’인 김씨는 이번 추석에도 가족을 만나 특유한 입담을 펼치며 하하호호 웃는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본격적인 인터뷰 전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내느냐”고 질문했는데, 솔직하면서 ‘센’ 답변이 돌아왔다.
“어린 시절 명절 생각하면요. 술 문제부터 ‘제사 지내는데 누구는 돈을 얼마밖에 내지 않았다’라는 얘기를 옆에서 듣고…. 또 어린 제가 보기엔 잘 먹지도 않는 음식인데, 동그랑땡 500개는 왜 하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 내가 보기엔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조상들에 대한 엄청난 고마움도 아닌 것 같은데, 돈을 많이 들여 음식을 하고 그 과정에서 또 (관계) 문제가 생기고…. 남자들은 술을 많이 먹고…. ‘이런 반복되는 일을 도대체 왜 하는 것일까’ 하고 질문하는 세월을 저는 너무 많이 보냈던 것 같아요.”
김씨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많은 집안에서 비슷한 일은 발생하고, 많은 이들이 이런 이유로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한다. 그래도 해마다 추석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리고 가족들은 한데 모인다. ‘공격과 방어’가 난무하고, ‘분노와 상처’로 얼룩지는 추석이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슬기로운 명절 소통법’에 대해 다시 그에게 물었다.
“명절은 2~3일이잖아요. ‘슬기로운 명절 소통’이 아니라 사실은 설이나 추석 그 이전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슬기로운 명절 소통’이라는 주제로 인터뷰하겠다고 나선 기자에게 그는 또 뜻밖의 답변을 내놨다. ‘명절 소통’이 아니라 ‘명절 이전의 소통’이 본질이라고.
“추석 전에 관계가 좋았다면, 굳이 추석이 아니라도 집에 갑니다. 시골에 엄마 보러, 아빠 보러 가요. ‘무슨 일이야?’ 하고 묻겠죠. ‘아휴~ 무슨 일 있어 와? 엄마 보고 싶어 왔지~’ 이런 게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점점 절기는 의미 없어지고 있거든요. 이번 추석에 생각해볼 것은 우리의 평소 관계라는 거죠.”
수많은 사람의 관계 문제에 관해 상담해온 그에게 ‘명절 상담 사례’를 소개해달라고 하니, 드라마 속 대사들이 현실에서도 난무하고 그로 인해 이혼 고민을 하는 부부를 많이 봤다고 전했다.
“기독교에서 ‘은혜가 없는 율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는 없고 지켜야 할 법이 많은 상황을 말하죠.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법을 피하는 방식을 생각하게 돼 있습니다. 평상시 관계가 안 좋으니 자꾸 핑계와 이유가 생겨요. ‘비행기 티켓이 없다’ ‘아이가 학원에 가야 한다’ ‘이번 추석엔 진짜 이혼해야 한다’(웃음) 등등….
그러면 부모님이나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법’으로 얘기합니다. ‘야 너는 자식이 돼가지고,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한탄하고 며느리한테는 ‘우리 아들이 착했다. 네가 들어오기 전에는 집밖에 모르고 엄마밖에 몰랐는데, 네가 들어와서 이렇게 분란이 생긴다’는 식으로 말하죠. 드라마 속 대사들이죠. 상당수 부부가 평상시 관계가 안 좋았고, 명절 후에 ‘너네 집안하고는 내가 못 살아’ 하면서 이혼 얘기가 나오죠.”
상대방을 ‘디스’하지 마라
명절이 아니라 평소의 관계가 ‘본질’이라면, 평소 가족과 좋은 관계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자세와 태도’가 좋은 관계의 9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은 자세와 태도란 무엇인가. 우선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가르치려 하지 말고, ‘디스’하지 말라고 말한다.
“권력이 있고 권위가 있습니다.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요? 권위가 있는 사람은 권면과 위로가 통하는 사람을 말해요. ‘이렇게 해보시면 어때요?’라고 누군가가 말했어요. ‘다른 사람이 말하면 안 듣는데, 당신이 얘기하니까 한번 들어보겠어’ 하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위로가 있어요. ‘나 힘들어~’ 하고 말했는데 ‘아휴~ 얼마나 힘들어~’라고 그 사람이 말하면 위로가 되고 눈물이 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떻게 해야 권위 있는 사람이 되는가 봤더니, 보통 실력은 있는데 낮은 자세로 상대방을 대하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내가 너보다 공부를 더 많이 했네, 나이가 많아, 사회 경험이 많아, 노하우가 많아 하는 그런 사람은 아닌 거죠.”
좋은 자세와 태도를 갖추려면 ‘예의와 존중’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그가 최근 펴낸 책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에서는 “차라리 사랑하지 마세요. 조금 더 존중하고, 조금 더 친절하고 예의를 갖추라”고 주문하는 구절이 나온다. “차라리 사랑하지 말라”니 무슨 말일까.
“가족이랑 친인척 사이에 너무 사랑하지 말자는 얘기입니다. 사랑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첫 관문은 예의라는 것이죠. 예의 없는 사랑이 가장 폭력적인 것 같아요. 모든 부모는 그렇게 말하잖아요. ‘내가 널 사랑해서 하는 말이야.’ 선배도 후배한테 ‘내가 너한테 애정 없으면 이 말 안 했어’라고 말하죠. 그러면서 예의를 안 지켜요. 예의를 안 지키면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결핍이나 얼크러진 욕망을 사랑이라고 잘못 말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바로 따라올 수 있다. ‘예의를 지키면 다 사랑하게 되나요? 나는 예의를 지켰는데, 상대방은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요?’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구는 너무 커서 시차가 있는 것처럼 사람도 자기만의 시간대가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했다고 해서 바로 그 사람이 나의 시간대에 사랑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웬만하면 서로 살아 있는 시간대에 맞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도, 내가 먼저 예의를 지키고 상대방을 존중하자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조금은 ‘남는 장사’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좋은 풍요는 일상의 소통
상대방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는 것이 좋은 관계의 필요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김씨는 “다른 사람과 관계가 좋고 소통을 잘하려면, 내가 나와 맺는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나와 사이가 좋고 자신을 잘 돌보는 사람이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에게 친절도 베풀 수 있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하면서 집에 오면 ‘피곤하다’고 하고 가족에게 말을 함부로 하고 그런 분들이 있어요. ‘도대체 당신은 왜 그래’라고 하면 그분들은 또 이렇게 얘기하죠. ‘내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이러냐. 우리 가족 잘되려고 그러지’라고 말하며 화를 내요.
뇌공학자 선생님들이 얘기하는데 자기가 자기를 인식하는 부분이 있고, 외부를 인식하는 부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통 배우자를 인식할 때는 자기가 자기를 인식하는 부분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배우자를 자기와 상당히 동일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부부 사이가 좋으면 ‘저 사람이 여자를 너무 사랑하네’ ‘남자를 사랑하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이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은 자기 사랑이 좋은 사람이에요.”
청각장애인 아버지는 음주와 도박을 즐겼다. 부모님은 평생 사이가 좋지 않았다. 김씨의 유년기, 청소년기는 절망 그 자체였다. 화목한 가정의 부재, 불통인 아버지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는 소통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그 목마름과 관심이 지금의 김씨를 만들었다. 그런 그에게 자기 사랑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목마를 때 우리는 물을 마시잖아요? 그런데 전문가들은 시간을 정해 물을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합니다. 소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소통도 고통을 느낄 때 관심을 가지면 그땐 좀 늦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정기적으로 관심을 가져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나와의 소통을 위해 관심 가는 책도 사고요. 미술관에 가도 좋아요. 유튜브를 봐도 좋고, 여행을 가도 좋아요. 정말 좋은 풍요는 많은 것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목마르지 않아도 별일 없어도 그런 걸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이 자기 사랑으로 이어지죠.”
한겨레 양선아 기자 /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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