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 속 세계를 ‘재현’하는 작업을 전통적인 고전 회화 형식의 화면으로 담아내는 박민준 작가의 개인전 ‘묘(MYŌ)’가 일본 도쿄화랑(東京画廊+BTAP)에서 4월 5일까지 개최된다.
도쿄화랑은 일본 최초의 현대미술화랑으로 1948년 설립 이래 도쿄와 베이징을 거점을 두며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현대미술 작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형상이 현실과 차이를 둘 때, 현실과 비현실 간의 이질적인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묘’ 함을 표현한 신작 15여 점을 소개한다. 상상 속의 반인반수, 서로 다른 동물끼리 결합된 ‘묘’한 느낌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악어 머리를 하고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짐승, 토끼 귀를 한 여인, 개의 외형과 능력을 얻게 된 인간의 모습을 담으며 상상으로 만들어진 형상이 실제와 다를 때 생기는 거리감에서 오는 ‘묘’한 감정을 녹여냈다. 작가가 말하는 이 ‘묘’ 하다는 감정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서로 맞닿아 있으며 그 경계와 경계 사이의 공간이 커질수록 강해진다.

박민준은 전통적인 고전 회화가 전하는 보편적 서사와 재현의 마술적 효과를 동시대 회화 언어로 전개해 오고 있다. 활동 초기 작가는 이카루스, 사이렌, 다프네 등 서구 신화 속 인물을 동양인의 모습으로 옮기고, 미술사의 고전이 된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걸작을 재해석한 작품을 발표했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소설을 쓰고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을 드로잉이나 회화, 조각으로 표현하는 식으로 이미지와 텍스트를 연결한다. 그가 펴낸 두 권의 소설 중 ‘라포르 서커스'(2018)는 천재 곡예사 라포와 그의 동생 라푸를 중심으로 서커스 단원들의 이야기를 그렸고 ‘두 개의 깃발'(2020)은 미술사학자 알리자린이 600여년 전 활동한 화가 사피에르의 마지막 그림을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서구 신화를 작품의 주제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서사 세계를 구축하며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다각도로 살피는 ‘라포르 서커스(Rapport Circus)’와 ‘두 개의 깃발(Two Flags)’, ‘X’,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등의 다양한 시리즈를 선보였다. 인간의 삶과 죽음, 그를 초월한 꿈과 이상, 예술의 창조적 위대함과 가치 등이 그가 몰입해 온 철학적 주제다. 회화와 소설이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탄생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간직한 그의 작품은 삶의 내밀한 풍경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도록 안내한다.

’묘(Ignoramus et ignorabimus)‘는 실제로 존재하나 증명할 수 없고, 증명할 수는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모순투성이의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만들어진 것과 실제를 구분할 수 없는 혼돈의 세상 속에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음을 제시한다. 이번 신작들을 통해 작가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그 사이 생기는 이질감의 적당한 균형이 주는 ‘묘’한 감각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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