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소야도 출신 초대 울릉군수 ‘배계주 선생’을 기리기 위한 움직임이 섬 주민들을 중심으로 일고 있다.
옹진군 덕적면 소야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27일 인천시의회 행정안전위원회 세미나실에서 ‘배계주 초대 울릉군수 기념사업 간담회’를 열었다.
이번 간담회는 배계주 선생 발자취를 재조명하고 후손들에게 알리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참석자들은 독후감 대회와 소책자 제작 등을 통해 배계주 선생을 기억하자는 의견을 냈다.

소야도에서 나고 자란 배계주(1850~1918년) 선생은 1895년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과 불화로 울릉도로 쫓겨난 것으로 알려졌다.
배 선생은 도감(島監)을 맡았다가 1900년 지방관제가 바뀌면서 군수로 임명됐다.
특히 일본 침탈에 맞서 울릉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에 몰래 들어가 느티나무를 벌목한 뒤 일본으로 가졌고, 그 피해는 섬 주민들에게 돌아갔다.
1898년 2월 발행된 독립신문에는 ‘일본인 2명이 울릉도에 들어와 베어낸 나무를 반출할 때 밭의 곡식을 마구 짓밟아 백성들이 독한 흉년을 당한 것처럼 죽을 지경’이란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이에 배 선생은 불법 반출된 나무들을 되찾고자 일본으로 향했고, 1989년 8월 일본 사카이시 지방재판소에 시마네현 일본인의 불법 벌목 사건에 대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같은 해 12월 시마네현 마쓰에시를 찾아 일본인이 벌목한 95그루를 배상해 달라고 제소한 소송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배계주 선생 외증손녀 이유미(66)씨는 “할아버지를 알리기 위해 코로나19 이전 덕적도에서 몇몇 분들과 행사를 치렀다”며 “지역 주민들이 관심을 가져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 덕분에 앞으로 다양한 사업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신영희(국민의힘·옹진군) 시의원은 “우리 지역에 이런 분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울뿐더러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지역 주민들과 함께 배계주 선생 발자취를 재조명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글·사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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