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화석유가스(LPG)가 국내 1톤 소형 화물차 시장의 대체 연료로 자리 잡고 있는 분위기다. 전기와 LPG가 시장을 양분할 것으로 내다봤던 것과 다른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월 정부는 어린이 통학버스를 비롯한 택배 화물차량, 여객 운송용 사업 차량의 디젤차 신규 등록을 금지하는 대기관리권역 특별법을 시행했다. 이에 국내 1톤 소형 화물차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디젤 모델을 단종하고 스마트스트림 LPG 2.5터보 엔진(T-LPDi)을 얹은 모델을 투입했다.
업계는 1톤 소형 화물차 라인업이 LPG와 전기로 세분화됨에 따라 디젤 소형 트럭의 수요를 양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전기트럭의 수요가 주춤하면서 LPG가 디젤의 빈자리에 완벽히 안착했다. 제한적인 1회 충전주행가능거리와 충전 속도 등의 요소가 판매 성장을 방해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환경부가 공개한 국내 전기차 보급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보급된 전기차는 14만6737대로 집계됐다. 이중 전기 화물차는 2만579대에 그쳤다. 이는 4만3940대가 보급됐던 전년의 절반도 못 미치는 수치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차 포터 Ⅱ의 지난해 판매량을 살펴보면 LPG가 대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포터 Ⅱ는 총 6만9267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전기차는 1만1212대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6.5%나 급감했다.
포터 Ⅱ 일렉트릭의 월별 판매량을 살펴보면 지난해 1월에는 4대를 시작으로 ▲2월 262대 ▲3월 2775대 ▲4월 695 ▲5월 796대 ▲6월 948대 ▲7월 1032대 ▲8월 1208대 ▲9월 986대 10월 911대 ▲11월 1268대 ▲12월 327대였다. 네 자릿수를 넘어선 건 총 4번뿐이다.
기아 봉고 EV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봉고의 경우 지난해 총 4만539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봉고 EV의 판매량은 6061대다. 특히 1천대 이상을 기록했던 건 3월 한 번뿐일 정도로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했다.
현대차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자사 첫 번째 목적기반차량(PBV) ST1을 투입하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기록하지 못했다. 지난해 4월 공식 출시된 ST1은 출시 후 총 988대가 판매되며 1000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 1톤 소형 화물차의 경우 211킬로미터(㎞)의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와 낮은 충전 속도 등이 판매량의 걸림돌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실제 전기 1톤 화물차를 소유주들은 짐을 적재할 경우 실제 주행거리가 더욱 짧다며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반면 LPG 1톤 소형 화물차는 순풍을 맞으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내에는 9만 3565대의 1톤 소형 화물차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현대차 포터 Ⅱ와 기아 봉고3 등을 포함한 LPG 1톤 트럭의 판매량은 7만9112대로 나타났다. 전체 판매량의 84.5%를 차지한 것이다.
실제 현대차 포터 Ⅱ LPG와 기아 봉고 LPG는 지난해 각각 5만8055대, 3만4523대가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포터 Ⅱ LPG의 경우 전기차 판매량의 5배가 넘는 수치다. 이 같은 판매량 불균형은 전기차 보다 상대적으로 연료비가 비교적 적고 편리한 점이 장점으로 작용해 수요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포터 Ⅱ LPG 모델의 경우 1회 충전으로 최대 525㎞(수동 변속기 기준)를 주행할 수 있다. 포터 Ⅱ 일렉트릭 대비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각각 159마력, 30.0킬로그램포스미터(㎏f·m)다. 이와 함께 전국 2000여 곳의 충전 인프라를 확보한 점과 디젤 대비 61% 수준의 저렴한 연료비 역시 LPG 수요를 이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2026년 말 현재의 캡오버형(운전석 아래 엔진을 둔 형태) 포터의 단종이 예고되면서 시장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2027년부터 강화된 총중량 3.5톤 이하 소형 화물차의 충돌안전성 기준을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차 포터와 기아 봉고는 과거부터 충돌을 흡수하는 보닛이 없어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
실제로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캡오버 소형화물차 탑승자의 중상 이상 상해(사망자 및 상해등급 1~6급) 비율은 0.7%로 일반 승용차 대비 3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망 사고의 비율은 무려 5.3배에 이를 정도다.
차세대 모델은 충돌 안전성 확보를 위해 ST1과 스타리아처럼 세미보닛 형태로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와 적재량도 늘리는 등 기존 지적 사항을 개선해 시장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기아의 경우 1.2톤급 LPG 화물차의 생산을 유지하는 동시에 2025년부터 목적기반차량인 PV5와 PV7, PV1 등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며 소형 화물차 시장의 변화를 이끈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당초 예상과 달리 1톤 소형 화물차 시장에서 LPG는 확실한 대세로 자리 잡았다”며 “여러 문제점을 개선한 차세대 모델이 등장하더라도 충전 인프라와 보조금 정책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고 말했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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