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24년말 계엄·탄핵 정국으로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이 커졌다. 이런 가운데 새해 1월 20일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다. 기존 국제 통상 원칙을 무시하고, ‘새로운 규범’을 제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귀환은 수출 강국 대한민국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2025년 ‘을사년’ 대한민국이 직면한 ‘내우외환’이다. 하지만 국난을 극복하며 성장한 대한민국에 위기는 기회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위기에 처한 때가 바로 약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경영의 신(神)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는 말했다. 대한민국은 직면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국내 경제전문가 34인의 한국경제 전망과 제언을 담았다.
국내 경제 전문가 34명 중 85%가 넘는 29명이 내년 한국경제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 침체 등으로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2024년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한 수출도 증가율이 둔화하며 성장 정체기에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 34명 중 12명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한국은행이 발표한 내년도 한국의 잠재성장률 1.8%보다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동원할 수 있는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물가 상승 등 부작용 없이 최대로 이뤄낼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말한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보다 낮다는 건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은 생산성은 악화하고, 저출산 초고령화로 인적 자원마저 감소하는 상황에 처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반도체 등 주력산업은 후발주자가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 경쟁력을 유지하는 자동차·철강 등 제조업 분야는 트럼프발(發) 통상 질서 변화가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변수가 발생할 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전문가 34명 중 29명이 2025년 韓 성장률 2% 미만 전망
조선비즈가 국내 경제전문가 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인 17명은 2025년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1.7% 이상~2.0% 미만’으로 전망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지난 11월 발표한 성장률 전망치 1.9%와 부합하는 수준이다.
2025년 성장률을 1%대 후반으로 내다 본 전문가가 대다수인 가운데, 이보다 낮은 1%대 중반대를 예측한 전문가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 중 10명(29.4%)이 ‘1.3% 이상~1.7% 미만’을 예측했다. ‘1% 이상~1.3% 미만’과 ‘1% 미만’을 예측한 전문가도 각각 1명씩 있었다.
성장률 ‘2.0% 이상 ~ 2.3% 미만’을 내다본 전문가도 5명 있었다. 2.3% 이상을 예측한 전문가는 한 명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2025년 저성장을 유발하는 첫 번째 요인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을 꼽았다. 내수 부진과 핵심 산업 경쟁력 약화,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른 수출 감소 등 2025년 예상됐던 ‘성장 마이너스 요인’을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폭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을 비롯해 국내 씽크탱크의 성장률 전망치는 저성장 충격이 2025년 중반이나 중후반기에 올 것이라고 가정했는데, 이는 낙관적인 가정”이라며 “상반기에 쇼크가 올 가능성이 크다. 통상·외교적으로 대응을 해야 하는데 탄핵 국면 속에서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래도 1년 뒤인, 2026년에는 저성장 국면을 다소 극복하고 2%대 성장률을 회복할 것이란 기대섞인 관측이 제법 많았다. 응답자 중 16명(47.1%)이 2026년에도 성장률은 ‘1.7% 이상~2.0% 미만’으로 2025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본 반면, 14명(41.2%)은 2026년에는 한국 경제가 ‘2.0% 이상 ~ 2.3% 미만’의 성장률로 2025년보단 성장율이 높아질 것으로 봤다. 우석진 교수는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진보적 정부일 경우 재정의 역할을 확대해 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2026년의 성장률이 2025년보다 더 낮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2025년부터 시작하지만, 임기 첫 해에는 ‘미국우선주의’ 통상 정책이 바로 시행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대외 환경을 살필 것이고, 미국 내부적으로도 의회 절차를 밟아야 하기 때문”이라며 “2026년부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통상정책이 본격 시행되면서 글로벌 무역에 영향을 미치고, 국내 수출 환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고물가 끝나나… “2025년 물가상승률, 2024년보다 낮을 것”
2025년 물가 상승률은 2024년 상승률(2.3%)보다 낮을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가 다수였다. 응답자 34명 중 33명이 2025년 물가상승률이 2.3% 미만을 기록할 것이라고 봤다. 구간별로는 ‘1.7% 이상~2.0% 미만’ 응답자가 15명(44.1%)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2.0% 이상~2.3% 미만’이 13명(38.2%), ‘1.3% 이상~1.7% 미만’이 5명(14.7%)이었다.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였다. 올해보다 물가 상승률이 높을 것이라고 응답한 전문가는 ‘2.3% 이상~2.7% 미만’을 내다 본 1명이 유일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기 침체 등 수요 감소 영향으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서 전반적인 물가 상승률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적 요인에 따른 물가 상방 압력도 제한적일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다만 기후 변화에 따른 농작물 생산량 변동,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는 물가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꼽았다.
박희찬 미래에셋 리서치센터장은 “내수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고금리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며 “ 최근 금리를 연속해 내리고 있지만, 아직 시장에는 금리 인하의 긍정적 영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이 1.9%까지 떨어졌는데, 흐름상 1% 중반대로 내려갈 수 있다고 본다”며 “국제유가도 수요 요인보다는 공급 요인으로 인해 당분간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최근 국내 정치 불안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점이 물가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석진 교수는 “원래대로라면 내년엔 2% 아래로 물가상승률이 내려가는 게 정상”이라면서 “환율 때문에 물가상승률이 2%대 아래로 내려가기 어려운 국면”이라고 했다.
박 센터장도 “물가상승률을 1% 중반대로 예측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환율이 1400원대 아래를 유지한다는 가정에서 나온 전망치”라면서 “현재의 환율 흐름이 이어진다면 기존 전망치보다 높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환율이 10% 오르면, 물가엔 1%p 영향을 준다는 분석이 있다”면서 “환율 상승으로 가격이 오르면 수요를 줄여 물가가 덜 오를 수도 있겠지만, 환율 영향을 배제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 ‘불확실성’ 마주한 대한민국… 위기 모색은 어떻게
‘불확실성’ ‘정치적 불확실성’ ‘내우외환’ ‘중대기로’ ‘트럼프 리스크’. 조선비즈 경제전망에 응한 경제전문가들이 꼽은 ‘2025년 한국경제를 관통할 핵심키워드’다.
설문에 응한 34명의 응답자 중 14명이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트럼프 리스크와 통상지형 변화 등 불확실성 요인을 구체적으로 언급한 답변까지 포함하면 20명까지 늘어난다. 그 외로는 ‘디지털 전환과 AI혁신’, ‘Resilience’(회복·탄력), ‘내수’, ‘위기 속 기회 모색’, ‘성장 동력 찾기’, ‘저성장 고착화’ 등이 있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모든 문제의 근원은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소비를 더욱 침체시키는 요인이 됐다.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트럼프 2기에 대한 대응이 늦어지고, 수출 감소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도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중 무역 전쟁의 여파로 나타난 중국의 대대적인 밀어내기에 한국 경제가 밀리고 있다”며 “철강과 석유화학에 이어 반도체와 자동차, 이차전지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 센터장은 “미국의 관세 전쟁에 대응해 브릭스(BRICS) 등 글로벌사우스가 미국에 맞서는 모습까지 연출되고 있다”며 “제조업 강국이던 독일과 일본처럼 한국도 비슷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2025년이 이러한 위기의 원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거시 경제와 실물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는 게 이들의 진단이다. 대응책도 위기 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외환 리스크 관리와 대외 신인도, 자본시장 변동성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주요 인물과 많이 만나 대외 정책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고 센터장은 “현재 시급한 것은 외교적으로 통상 지형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다. 지금의 불확실한 정치적 상황도 빠르게 해소해야 한다”며 “국내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마중물도 충분히 공급해줘야 한다. 우리 스스로 성장을 제약하는 ‘규제’를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 설문에 참여하신 분들
▲강민주 ING은행 부문장 ▲강성진 고려대 교수 ▲고태봉 iM증권 상무 ▲곽노선 서강대 교수 ▲김상봉 한성대 교수 ▲김상훈 KB증권 리서치본부장 ▲김성현 성균관대 교수 ▲김승현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장 ▲김지연 한국개발연구원 전망총괄 ▲김진일 고려대 교수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 ▲박선영 동국대 교수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백인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 ▲신관호 고려대 교수 ▲우석진 명지대 교수 ▲유종민 홍익대 교수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윤상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팀장 ▲이근 서울대 교수 ▲이병건 DB금융투자 리서치센터장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승훈 메리츠증권 이코노미스트 ▲이종화 고려대 교수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허준영 서강대 교수 ▲홍기석 이화여대 교수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 등 총 3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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