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년의 시간이 흐른 2054년. 오로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 낸 산업과 AI에 의해 인류 문명은 사라졌고, 남겨진 예술품을 통해서만 과거를 기억하게 됐다. 파괴된 자연, 멸종된 동물, 잃어버린 자아. 2024년의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지구가 처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전시가 열렸다.
내년 1월 19일까지 경기아트센터 갤러리에서 진행하는 기획전 ‘생존구역:BBUCK On&Off’는 2054년 가상의 미래 속 디스토피아 세상에 남겨진 생존구역을 살핀다. 고준, 이민우, 권지안(솔비), 장혜진, 조니뎁 등 우리에게 친숙한 국내외 아트테이너 30여 명이 참여해 1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A부터 I까지 9개 구역으로 나뉜 전시장은 조도를 최대한 낮춰 오롯이 작품에 집중하도록 연출했다. 관람객은 마치 탐험하듯 램프에 의지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은 2054년의 과거, 즉 현재 우리 모습을 반추하게 만든다. SNS의 발달과 함께 생겨난 허상뿐인 자아와 사이버불링(cyberbullying, 온라인상 집단 괴롭힘)의 현주소를 보여 준다.
권지안의 ‘A(K)pple land Menual’은 작가가 처음 그림을 시작할 때 대중들에게 들었던 ‘사과는 그릴 줄 아니?’라는 조롱에서 시작됐다. 모니터는 권 작가를 향했던 악성 댓글들로 쉴 새 없이 채워지고, 벽면에 부착된 색색의 사과 모형들은 알파벳으로 치환돼 관람객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패션 틱톡커로 활동하는 이지은은 천장에서부터 길게 늘어진 붉은 드레스에 악성 댓글과 해당 댓글을 남긴 아이디를 빼곡히 적은 ‘Bubble space please(Red dress)’를 출품했다.
이민우가 자신의 모습을 이입해 그린 광대와 조니뎁이 자신의 꿈에 나왔던 ‘토끼 인간’을 형상화해 만든 작품도 볼 수 있다.
최재용의 설치작 ‘Nomad land’는 유목적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돌아보며 “미래의 지구에서 인간은 하루하루 유목민처럼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표현했다. 무수한 폴대에 둘러싸인 텐트 안에는 간이 의자와 테이블 등 캠핑용품이 놓였고, 다양한 펜과 스탬프를 비치해 관람객이 자유롭게 의견을 남기도록 했다.
또 무분별한 산업 발전으로 인해 자연 파괴와 삶의 터전을 잃어가는 동물들을 위한 목소리도 담겼다.
윤송아는 동물들의 눈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장혜진은 자신이 여행하며 본 풍경들에 동물들을 그려 넣었다. 또 사라주가 제작한 다양한 동물 조각들이 함께 소개된다.
이정권 전시 총감독은 “아트테이너의 ‘자기 치유 활동’을 그룹화된 네트워크 운동으로 연결해 예술이 동시대의 긍정적 사회공헌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성인 1만 원, 청소년 7천 원, 어린이 5천 원에 관람할 수 있으며,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당일 공연 관람객과 65세 이상, 장애인 및 국가유공자 등에게는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정경아 기자 jka@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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