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홍련’ 박신애 작곡 “한이 많은 캐릭터, 음악적으로 돕고 싶었죠”[스포츠W 임가을 기자] ※ 본 인터뷰는 작품에 대한 주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창작 뮤지컬 ‘홍련’은 ‘장화홍련전’과 ‘바리데기 설화’를 결합해, ‘홍련’과 ‘바리’를 가정 학대 피해자라는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작품으로, 두 주인공이 저승 천도정의 사후 재판에서 각각 피고와 재판장으로 만난다는 설정을 차용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지난 2022년 CJ문화재단의 뮤지컬 창작자 지원사업 ‘스테이지업’을 통해 발굴된 ‘홍련’은 기획 개발을 거친 뒤 2022년 스테이지업 최종지원작으로 선정되어 리딩쇼케이스를 개최하는 등 지속적인 수정-보완 과정을 거쳐 올해 여름 초연을 올렸다. ▲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스포츠W는 서울 종로구 소재의 카페에서 뮤지컬 ‘홍련’의 창작진인 배시현 작가, 박신애 작곡을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홍련’은 폐막까지 남은 전 회차가 전석 매진 되는 등 창작 초연 작품임에도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배시현 작가는 “너무 감사한 마음”이라며 공연을 올린 직후를 회상했다. (배시현) “사실 공연이 올라가고 나서 일주일간은 불안했었다. 작품이 소재가 소재인 만큼, 혹시라도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걱정이 정말 컸다. 근데 정말 다행히도 위로를 얻고 가시는 분들이 많다고 해서 이제야 겨우 한 시름 놓았다. ‘홍련’이라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사랑을 주시는 많은 분들께 너무 감사하다.” 작품은 배시현 작가가 떠올린 소재와 기본적인 스토리라인을 바탕으로 박신애 작곡에게 제의해 작업에 들어서게 됐다. 작가는 ‘홍련’의 이야기를 밀양아리랑에 깃든 사연이기도 한 아랑전설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아랑전설은 아랑이라는 이름의 처녀가 억울하게 죽어 한을 풀어달라 밀양부사를 찾아가는 원귀담으로, 죽은 후 사또를 찾아간다는 점에서 장화홍련전과 유사하다. (배시현) “아랑전설을 읽고 ‘왜 우리나라 귀신 이야기는 죽은 뒤에 사또를 찾아가는 얘기가 많을까’라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고, 그 해에 가슴 아픈 사회적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이전에 했던 생각과 겹쳐보이며 ‘왜 세상은 항상 약자의 이야기에 바로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야 문제가 인식되는 경우가 많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이 ‘이런 상황이 처녀귀신들의 전사와 비슷하다’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됐다.” 생각들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망자의 한을 풀어주는 신인 바리데기를 떠올린 배시현 작가는 우리나라 처녀 귀신 이야기를 대표하는 장화홍련 같은 인물들이 바리데기를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해 생각했고, 이것이 곧 지금의 ‘홍련’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배시현) “바리데기 설화를 다시 보니, 바리데기 역시 버려진 딸이라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바리데기 역시 사회의 약자였다는 사실이 보이면서 이 두 인물들이 가정학대 피해자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했다. 두 설화의 연결점을 찾은 뒤 처음의 생각으로 돌아가 이 사람들이 가장 무력했던 순간에 그들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 닿았을지, 가장 원했던 것은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면서 조사하다 보니 가장 무력한 약자들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게 됐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작품을 풀어나가기 위한 배경은 장화홍련의 원전 내용에서 착안해홍련의 사후재판으로 설정됐다. (배시현) “사후재판은 원전에서 두 자매가 사또에게 찾아가 ‘저희 한을 풀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착안했다. 그 장면이 저에게는 마치 재판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읽혔다. 이 사람들이 공명정대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한을 풀 수 있는 재판을 원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홍련이라는 인물이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배시현 작가는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를 좋아한다며 전통 문화 중 현대적인 시각으로 펼치면 재밌을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이를 재해석할 때 가장 기본적인 접근법은 이 이야기가 현재에 어떤 의의를 갖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작가는 처음 바리데기 서사를 떠올렸을 때는 맹목적인 효를 강조하는 전통적이고 제도적인 이야기라 현대 가치관에서는 쉽게 납득되기 어려울 거라 보고, 의의를 잃었다고 판단했지만, 이야기를 더 깊이 공부하고 생각해보니 바리데기 설화의 진짜 가치는 바리의 효성이 아닌, 바리가 망자들을 위해 저승으로 내려간 인물이라는 점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배시현) ”바리가 재물을 거부하고 망자의 영혼을 인도하는 신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 인물이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여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바리의 여정도 지극한 효심보다는 인물 자체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닐까 싶었다. 이런 시각으로 보니 바리데기가 가진 가치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바리가 단순히 부모를 구한 공덕으로 신이 된 게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끌어안은 채 그 고통을 견뎌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이 될 수 있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게 현대를 사는 우리가 바리데기 설화에서 진짜 봐야 할 의의가 아닐까 싶었다.” 바리데기의 재해석은 넘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네 얘기의 결말’ 넘버는 바리의 숨겨진 이야기가 풀리는 ‘버려진 소녀’ 넘버를 들은 홍련이 너도 네 원수들에게 자비심을 베풀어라 라는 뜻으로 바리의 말을 곡해해 받아치는 내용이 담겼다. (배시현) “극 중 인물들의 감정과는 별개로, 기존 바리데기 서사와 명쾌한 전개와 결론을 추구하는 현대적 홍련의 입장이 부딪히는 넘버로 상정하며 썼다. 홍련은 바리가 구시대적 효의 가치를 밀어붙인다고 생각해서 이를 튕겨내지만, 결국 바리의 이야기가 사랑의 이야기로 다시 해석될 때 비로소 홍련에게 그 목소리가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닿은 순간이 바로 바리의 ‘씻김’ 넘버다.” 곡 구성과 연출도 바리데기 설화의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데 일조했다. 초중반부 바리의 넘버가 비교적 적은 것은 바리가 홍련의 말을 온전히 ‘듣는다’는 것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을 표현한다. (배시현) “바리의 사랑이 홍련과 관객에게 닿으려면 바리가 계속해서 홍련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게 명확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구성했다. 현실적으로 배우가 무대 위에서 다른 배우의 말을 듣고만 있는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특히 이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90분 동안 그 누구도 무대를 떠나지 않기 때문에, ‘듣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힘들고 숭고한 일인지 확실히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관객도 자연스럽게 바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는 인물이라는 걸 보게 되고, 바리데기 설화가 품고 있는 사랑의 의미 역시 온전히 재해석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느껴주셨다고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사진=마틴엔터테인먼트 ‘홍련’은 록사운드와 국악의 결합을 시도한 음악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박신애 작곡은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홍련이 정말 한이 많은 캐릭터라고 느꼈다며 그 한을 다 토로할 수 있도록 음악적으로도 많이 돕고 싶었다고 전했다. (박신애) “소리치며 분노를 표출하는 데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가 록이라고 생각해서 록사운드를 사용하게 됐다. 하지만 전통 설화를 기반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요소도 놓칠 수 없었고, 그래서 전통 악기와 선율을 록과 함께 믹스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 두 가지를 섞어봤다. 요즘 ‘조선팝’이라고 해서 다양한 형태의 국악이 많이 나오지 않나. 대중들도 이 장르에 친숙하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면 새롭고 재미있는 뮤지컬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의 특성과 어울리게 편성된 악기는 일렉기타,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드럼, 건반으로 구성된 밴드 셋 위에 거문고를 더했다. (박신애) “처음에는 모든 전통 악기를 출연시키면 정말 신나겠다고 생각했지만, 물리적인 문제들로 실현시키기 어려웠다. 그래도 제가 구현하고자 했던 사운드가 잘 나온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전통 악기 중에서도 거문고가 생각보다 리듬적이고 선율적으로도 활용 가능한 악기더라. 이런 효율성을 따져봤을 때도 좋았고, 개인적으로 박다울님의 영상을 정말 좋아해서, 그걸 보고 나도 한번 거문고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작가는 넘버에 맞는 가사를 작사할 때 이야기보다는 인물과 가사의 톤을 맞추는데 많이 신경썼다고 밝혔다. 홍련의 과감한 대사와 강림을 비롯한 차사들의 현대적인 대사도 이러한 방향성을 기본으로 두고 작업을 했다. (배시현) “홍련은 어리고 무력했기에 살아있었을 때 감히 하지 못했을 생각, 했다 해도 말로 꺼내지는 못했을 것들을 표현하려고 하다 보니 잔인하면서 날것의 표현이 담긴 가사들이 많이 나왔다. 그래도 그 정도는 되어야 이 인물이 제대로 드러날 것 같았다. 바리에게는 무게감 있는 가사를 많이 부여했다. 처음에는 입바른 소리처럼 보이지만, 후반부에 곱씹어보면 그 가사들이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강림과 차사들에게는 재판이 실제가 아니라는 힌트가 되는 가사를 많이 부여했다. 재판 속에서 영어를 쓰고 현대적인 박자를 사용하는 것은 이들뿐이다. 그래서 강림과 차사들의 가사를 쓸 때가 가장 마음이 평온했던 것 같다. (웃음)” 인터뷰②에서 계속, 누르면 이동합니다.
소금으로 그린 엄청난 그림소금으로 그린 엄청난 그림
바다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바다 속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바느질로 그린 극사실주의 풍경화바느질로 그린 극사실주의 풍경화
“K-가족 뮤지컬 경쟁력 높인다”...문화공작소 상상마루 '키즈컬 아시아로' 교육과정 성료어린이·가족 공연 전문 제작사 문화공작소 상상마루(대표 엄동열)가 구리문화재단이 함께 주관하는 차세대 어린이·가족 뮤지컬 창작자 발굴 프로그램 ‘키즈컬 아시아로’가 지난달 23일 3개월간 창작 교육과 멘토링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수작 쇼케이스를 앞두고 있다고 2일 어린이·가족 공연 전문 제작사 문화공작소 상상마루(대표 엄동열)가 구리문화재단이 함께 주관하는 차세대 어린이·가족 뮤지컬 창작자 발굴 프로그램 ‘키즈컬 아시아로’가 지난달 23일 3개월간 창작 교육과 멘토링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우수작 쇼케이스를 앞두고 있다고 2일
‘달처럼 불처럼’ 히미츠, 앨범 ‘월‧화’처럼 청량하고 직설적이었던! [D: 인터뷰]4인조 팝밴드 ‘히미츠’, 그들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한 곡 듣고 멈춘 이는 없을 것이다, 단순히 브리티시 모던 락을 추구한다는 말로는 모자란, 남과 구별되는 색깔을 지니고 있고 가사가 내 얘기처럼 퀴에 콕콕 꽂히는 데다 보컬의 음색은 개성 넘치고 연주는 무르익었다.출중한 실력을 갖추고도 아직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기 전인 뮤지션이나 배우 등 아티스트를 보면 궁금하다.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진로를 정했기에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걷고 있는지.“어릴 때 초등 소년소녀합창단으로 시작했어요. 쭈욱 노래하면서 당연히 나는 …
[인터뷰①] ‘에밀’ 김소라 작가 “작품의 시작점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었죠”[스포츠W 임가을 기자] 창작 뮤지컬 ‘에밀’은 지식인이자 작가인 ‘에밀 졸라’와 그를 동경하는 가상의 소년 ‘클로드’의 하루 동안의 만남을 그린 2인극으로, 지난 6월 초연의 막을 올렸다. 창작진으로는 이대웅 연출, 김소라 작가, 황예슬 작곡가가 참여했다. 지난 18일 스포츠W는 서울 종로구 소재의 카페에서 뮤지컬 ‘에밀’의 김소라 작가, 황예슬 작곡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 (왼쪽부터) 김소라 작가, 황예슬 작곡가 [사진=프로스랩] ‘에밀’은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의 대본공모 당선작으로, 지난해 2월 진행된 대본공모 유통 프로모션 ‘대본의 발견’ 쇼케이스를 통해 제작사 프로스랩과 의기투합하게 됐다. 김소라 작가는 “황예슬 작곡가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뮤지컬 아카데미 4기 동기다. 아카데미 내에서 작가와 작곡가들을 매칭해서 작품을 많이 하는데 그때 창작산실 준비를 같이 해보자고 제의했다”고 협업의 시작을 밝혔다. 두 창작진의 작업 과정은 어땠을까. 김소라 작가는 “워낙 작곡가님이 곡을 잘 쓴다는 소문이 있었다”며 “작업이 편했다. 소재에 대해 고민할 시간들은 많았지만 본격적인 창작 기간이 매우 짧았었는데 효율적으로 빠르게 작업이 됐던 것 같다. 곡 분위기나 장면에 대한 해석을 잘하셔서 알맞게 곡을 잘 써주셨다”고 만족을 표했다. 이번 ‘에밀’은 작가와 작곡가의 긴밀한 소통 아래에 완성된 작품이다. 황예슬 작곡가는 “대본 작업 이전 프리 프로덕션에서 둘이서 긴밀하게 대본이 가진 이야기와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눴다. 넘버가 들어갈 만한 타이밍도 같이 잡고, 어떤 음악이 잘 어울릴지에 대해서도 많이 상의했다”고 전했다. 김소라 작가도 “아카데미에서도 원래 뮤지컬은 유기적이고 긴밀하게 작업해야 작품 안에 잘 담긴다고 배웠다. 그래서 작곡가님이랑 캐릭터에 관련해 매일 통화했다. 저 때문에 많이 힘드셨다. 맨날 새벽에 잠 못자고 전화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 박유덕 [사진=프로스랩] 대본뿐만 아니라 음악에 있어서도 많은 의견이 오갔다. 황예슬 작곡가는 “한 곡 한 곡 다 협의를 거쳤다”면서 곡의 스케일과 섬세함, 감정선 등을 주제로 김소라 작가와 작업을 이어나갔다고 말했다. (황예슬) “음악의 스케일, 톤 앤 매너 같은 것도 많이 이야기를 나눴고, 이 캐릭터가 이 넘버를 왜 부르며 어떤 감정으로 어디까지 깊이 있게 스케치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다.” (김소라) “넘버에 대한 최종 결정은 작곡가님이 내리지만(웃음) 레퍼런스 같은 것들을 많이 찾아서 보내줬다. 그 과정에서 서로 ‘이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것 같은데’ 같이 말하면서 ‘밀당’ 과정을 겪었다. 저희도 두 사람이지 않나. 에밀과 클로드처럼 엄청난 심리 게임을 했다.” 작품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드레퓌스 사건은 유대인이었던 드레퓌스 대위가 프랑스의 기밀 문서를 빼돌린 편지의 필체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독일군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써 억울하게 투옥된 사건을 말하며, 이를 통해 당시 프랑스에서는 극심한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김소라 작가는 “원래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았고,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냈다가 큰 대가를 치르거나 묻혀진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복원해서 관객들에게 다시 전달하는 작업에 관심과 애정이 있다. 또 이러한 사람들의 사건 이후가 어땠을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던 것 같다”며 평소 작품을 구상할 때 관심을 두고 있던 부분에 대해 밝혔다. 하지만 의외로 ‘에밀’을 제작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다름아닌 한국에 있었다. 김소라 작가는 1991년 발생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을 언급하며 이번 작품의 시작점을 설명했다. (김소라) “단순히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만 인식하고 있던 사건의 피해자가 14년 만에 대법원 무죄를 받았는데도 아직도 사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이야기를 뮤지컬을 통해 하고 싶었는데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아직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게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를 전달하면 효과적이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 박영수 [사진=프로스랩] 에밀 졸라는 이러한 드레퓌스 사건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다. 프랑스 문화예술계 최고의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은 작가였던 그는 드레퓌스 대위가 억울하게 겪게 된 고초와 사건의 부당성을 고발하기 위해 1989년 1월 ‘로로르’지에 선언문을 발표했고, 이 선언문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는 고발한다’다. 이후 에밀 졸라는 매국노로 낙인 찍히게 된다. 김소라 작가는 사건의 당사자인 드레퓌스가 아닌, 에밀 졸라의 시선으로 작품을 다룬 이유에 대한 질문에 “에밀 졸라는 사실 드레퓌스랑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인데도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이 첫 번째로 있었고, 나라면 에밀 졸라처럼 할 수 있었을 지에 대해 두 번째로 생각했다”며 “목숨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큰 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뭐였을까라는 궁금증으로부터 작품을 시작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역사적 사건이지만, 한국의 역사와는 연관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김소라 작가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드레퓌스 사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김소라) “그 사건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 굉장한 설명을 해야하고 사건의 초반인 8년 전부터 전개에 담았어야 하기 때문에 드레퓌스 사건을 배경으로 깔아두고, 그 속에 있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는 쪽으로 방향성을 잡았다. 그래서 에밀 졸라가 죽기 하루 전을 배경으로 시점을 잡았고, 두 사람의 심리와 관계를 통해 이 사건을 빗대서 얘기를 하기로 했다. 이 방식이 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배경으로 깔리다보니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에밀 졸라의 신념은 넘버의 가사에도 녹아들어가있다. 그의 명언 중 하나인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그 무엇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한다. 김소라 작가는 “원래 출판본은 ‘진실은 전진한다’이지만 조금씩 저희의 언어로 바꿔서 ‘진실은 행진한다’로 작품에 넣었다. 에밀 졸라가 가장 핵심으로 말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일지 고민해서 가져오게 됐다”며 에밀 졸라의 글귀 이외에 차용한 다른 창작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김소라) “‘1902년 9월 29일’ 넘버는 시편 구절에서 따왔다. 다윗이 억울하게 쫓겨다녔을 때의 심정과 에밀 졸라의 심정이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나는 물같이 쏟아졌고 뼈는 어그러졌으며’라고 가사에 넣었다. 같은 넘버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밤’도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차용한 표현이다. 백석 시인은 말년에 북한에서 자아비판을 당하고 시를 못쓰면서 유배생활을 하다시피 힘들게 살았던 인물이다. 같은 문학인으로서 어려움을 당했다는 유사점이 있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기도 해서 참고하게 됐다.” ▲ 박유덕 [사진=프로스랩] 이렇듯 김소라 작가가 에밀 졸라와 유사점이 있는 인물들의 기록에 주목한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볼 수 있었다. (김소라) “에밀 졸라는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분이라 제가 직접 만날 수가 없다. 그래서 그분의 책과 자료도 많이 봤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인물들을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시대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가 억울한 상황에 처하고, 말년이 힘들었던 사람들이 했던 말들과 기록된 언어들을 보면서 에밀 졸라와 같은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작품의 배경은 18세기 말 프랑스이지만 공연이 올려지는 건 21세기의 한국이였기에 동시대성, 공감대에 대한 고민 역시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기에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 수 있었다. (김소라) “동시대성에 대한 부분이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 불안하고 두려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근데 지금 공연을 보신 관객분들이 공감하신 것 자체가 전 이미 동시대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떤 특정한 일의 특수성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과 정의, 선택에 따른 문제들에 대한 질문의 답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여기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 자체가 공감을 일으키는 것 같다. 우리가 침묵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악이 성행한다는 메시지는 지금도 여전히 필요한 메시지고, 그래서 전 세계 어디서든 통할 것 같다.” (황예슬) “진실을 마주하고 말을 할 수 있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처음부터 생각을 했다. 극에서 얘기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디에서나 다 통용되는 진리이지 않나. 결과적으로 저희가 하고 싶었던 말이 분명하게 전달된 것 같아서 관객분들께 감사하다.” 이러한 소재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작품이 가진 강한 메시지와 주변의 도움이다. 김소라 작가는 “하고 싶었던 말이 확실했기 때문에 이 주제로 작품을 밀고 나갈 수 있었다. 다만 이 메시지가 과연 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했는데 그때마다 연출님께서 안심시켜주시고, 방향성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셔서 완성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감사를 표했다. ‘에밀’은 개발의 시작부터 2인극으로 출발했다. 캐릭터가 분명하고, 인물 간의 긴장감을 살린 심리 게임과 같은 방향으로 가기에는 2인극이 딱 좋은 형식이라 판단한 것이 이유다. (김소라) “만약 드레퓌스 사건을 전면으로 내세웠으면 군인, 정치인 등 사건에 얽힌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대극장으로 가야했을 거다. 작품의 첫 방향성 자체가 사건 자체를 얘기한다기보다는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에 대해 사건 당시에는 조명하지만, 사건 이후의 잔인한 시간들을 보낼 때는 무관심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 인물의 관계에 대해 집중을 하자고 처음부터 설정했기 때문에 2인극이 된 것 같다.” ▲ (왼쪽부터) 구준모, 박영수 [사진=프로스랩] ‘에밀’은 두 창작진의 첫 2인극이다. 2인극 자체가 밀도가 높아야 하는 형식이기에 고민이 많았다고 전한 창작진은 긴 호흡을 가져가는 작품의 흐름에 대해서도 끝까지 고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소라) “두 사람이 어느정도 관계를 맺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둘의 이야기가 단 하룻밤 동안 이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에밀 졸라와 클로드가 친밀해져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뒤로 미루고,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을 앞에 배치해서 호흡이 길어질 수 밖에 없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필요했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시간을 쌓아올리고 빌드업하는 과정이 있어야 뒤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본론으로 들어가는 부분을 좀 더 당겨야 하나 싶었지만, 당기게 되면 둘 사이에 관계성이 쌓이지 않았다. 그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황예슬) “음악도 점, 선, 면으로 완급 조절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다. 드라마적으로 호흡이 긴 극이기 때문에 음악도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잘 연결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선형적인 음악과 펼쳐지는 음악의 밸런스를 맞추려 노력했고, 작가님과 상의를 많이했다.” 또 두 창작진은 ‘쓰릴 미’, ‘데미안’ 등 이미 2인극을 많이 연출해 본 이대웅 연출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소라 작가는 “2인극이고 밀폐된 공간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사건은 안에서 일어날 수 없으니까 외부에서라도 이벤트가 계속 일어나서 환기를 계속 시키고, 두 사람이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게끔 충격들이 있어야한다는 조언이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황예슬 작곡가는 2인극에 삽입되는 넘버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요소에 대해 “캐릭터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여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예슬) “음악을 들었을 때 캐릭터에 대해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또 드레퓌스 사건이 극 중 배경에서 굉장히 큰 사건인데 이것에 대해 음악부터 구체적으로 제시를 해줘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부의 ‘에밀 졸라를 찾아라’ 같은 넘버에서 굉장히 볼륨을 크게 가져갔다. 이처럼 2인극일수록 구체적인 디자인을 하고 좀 더 섬세하게 작업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접근했다.” 인물을 깊게 파고들 수 있는 만큼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솔로 넘버의 구성도 눈길을 모았다. 황예슬 작곡가는 “솔로 넘버는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넘버와 자신의 내면에 갖고 있는 아픈 정서를 가진 넘버가 미러링된다고 생각한다”며 ‘에밀’ 속 솔로 넘버의 특징을 정리했다. “에밀은 ‘나는 고발한다’ 같은 넘버가 신념을 강하게 어필하고, ‘1902년 9월 29일’에서는 쓸쓸한 내면을 표현한다. 클로드의 경우에는 ‘이 펜은 내게 말을 걸어’로 자신의 정보를 흘리고, ‘선택’을 통해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내면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다. 이런 넘버들이 대칭을 이루면서 유기적으로 구성이 되어있는 것 같다.” 인터뷰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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