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차기 대한체육회장 자리에 대기업 총수를 내정하고 이기흥 현 회장에게 불출마 압박을 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회장의 폭로로 불거진 이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정부의 개입을 금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의 올림픽헌장을 위반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13일 SBS 보도에 따르면 대한체육회의 한 관계자는 이날 “2024 파리올림픽이 끝난 뒤인 9월 초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기흥 현 회장에게 불출마를 종용하면서 다른 고위직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염두에 둔 후보는 과거 체육 단체장을 지낸 대기업 재벌 총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흥 회장은 지난 12일 MBN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정부 내정자를 밀어주고, 회장 선거에 불출마하라는) 그런 제의를 받았다”며 “제가 볼 때 그분이 대한체육회장으로서는 좀 적절치 않다. 정부에서 그렇게 내가 싫다고 하면 그 사람보다 정말 합리적인 분을 제가 추천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 쪽 후보자’를 돕는 조건으로 고위직을 제안받았다고도 전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의 단체로서는 굉장히 큰 총재직, 이런 자리 제안을 몇 번 받았다”며 “전문성도 없고, 다른 분야에 가서 일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아서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정부가 이 회장의 비위 의혹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기 직전 벌어진 정황이다. 이 회장은 “제가 11월 9일 아침 7시 57분에 누굴 통해서 전화를 받았다. 세 번 전화를 받았다. ‘누굴 도와주고 회장님은 빠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전화였다). 그 다음 날 국무총리실에서 경찰로 다시 재조사 의뢰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라고 폭로했다.
이 회장이 폭로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IOC 올림픽헌장이 명시한 정부 개입 금지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으로 심각한 파장이 우려된다. 정부가 특정 인물을 지지하고 현 회장의 불출마를 압박하는 것은 국가올림픽위원회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동시에 선거 개입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문체부 고위 관계자는 MBN과 인터뷰에서 “정부는 후보를 지정할 의사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며 “체육회장 선거는 중립적으로 치러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회장은 폭로 관련 논란이 거세지자 13일 채널A에 “내가 조용히 안고 가려고 했는데 ‘도가 너무 지나치다. 더 이상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폭로) 계기를 갖게 된 것”이라며 “(정부가 추천한 후보는) 현재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 중에는 안 나와 있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로부터 3선 연임 도전을 승인받은 이 회장은 오는 24일과 25일로 예정된 후보자 등록을 앞두고 다음 주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그는 차기 회장 후보로 추천된 인물과 자신에게 압력을 가한 정부 고위 관계자가 누구인지 등 자세한 내막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한편 13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는 이 회장이 문화체육관광부를 상대로 낸 직무 정지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달 11일, 직원 부정 채용, 물품 후원 요구, 후원 물품 사적 사용 등을 이유로 이 회장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고 직무 정지를 통보했다. 이 회장은 지난 2022년 국가대표 선수촌 직원 채용 당시 부당한 지시를 통해 자녀의 대학 친구 채용을 강행한 의혹을 받는다. 또 휴대전화 20대를 포함한 6300만 원 상당의 후원 물품을 사적으로 사용한 횡령 의혹도 받고 있다.
문체부 통보에 반발한 이 회장은 다음날인 12일 서울행정법원에 직무정지 취소 소송과 집행 정지 신청을 했다. 하지만 13일 법원이 직무정지 처분으로 이 회장이 볼 손해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을 결정하면서 행정소송의 본안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회장의 직무 정지 상태는 계속 유지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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