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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스포츠人] 1960~70년대 ‘한국 축구의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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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택(오른쪽)과 전 국가대표 감독과 장원재 전문기자

한국 축구팬의 가슴 속엔 황제의 계보가 있다. 김용식-최정민-이회택-차범근-최순호를 거쳐 홍명보 황선홍의 양대 황제 시대를 지나 박지성-손흥민으로 이어지는 국가대표 에이스의 이름이다.

– 근황은.

“김포 프로축구단에서 고문 자리를 주셨다. 매주 경기장을 찾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지 않았나. 제가 기술위원장 시절 기술위원으로 일해준 것에 감사한다.”

– 제가 더 감사하다. 김포엔 ‘이회택로’도 있다.

“2013년에 생겼다. 시에서 동상과 조형물도 만들어 주셨다.”

– 가족사가 기구하다.

“6.25 때 아버지가 월북하시고 어머니도 재가했다. 엄마 시집가지 말라고 치마꼬리를 잡고 10리를 따라갔다. 할머니 손에 자랐는데, 그 시절 그 정도로 고생 안 한 사람이 어디 있나.”

– 어떻게 축구를 시작했나.

“돼지 오줌보, 짚으로 엮은 공, 고무공, 미제(美製) 깡통 등 뭐든지 찰 수 있는 것은 다 차며 ‘축구 놀이’를 했다. 반 대항, 학교 대항 경기 대표선수로 뽑히다 당시 전국적으로 유행하던 리(里) 대항 축구대회에 나갔다.”

– 일종의 조기회 개념인가.

“경기복도 맞추고 서울 간 현역 선수나 은퇴 선수를 불러 출전시키는 등 나름대로 진지한 대회였다. 1961년 1월 김포 양촌면에서 열린 리 대항 축구대회에서 생전 처음 ‘진짜 선수들’ 경기를 봤다. 서커스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서울로 가서 축구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데뷔는 어디서 했나.

“한양공고 테스트는 낙방했고 영등포공고 축구부에 들어갔다. 데뷔전에서 2골을 넣었는데 부정 선수로 몰려 이듬해에 동북고로 전학을 갔다.”

– 늦게 시작했지만 곧 이름이 알려졌다.

“은사 박병석 선생님 밑에서 하루 10시간 훈련했다. 동북고 3학년이던 1965년 청소년대표로 뽑혀 4월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다녀왔다. 1966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8회 대회도 출전했다.”

– 국가대표는 언제 뽑혔나.

“1966년 9월이다. 12월 방콕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안게임에 나갔는데 태국과 버마에게 지면서 예선 탈락했다. 1970년 방콕 대회 때는 우리가 우승했다.”

– 유럽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8강에 오르자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1967년 2월에 중앙정보부가 육해공군 소속 선수와 입영 대상자를 중심으로 최정예 팀을 만들었는데 저도 대상자였다. 서독,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을 돌며 유럽 전지훈련을 했는데 분데스리가의 몇몇 클럽이 영입을 제안했다. 그때만 해도 유럽 축구에 정보가 없으니 그게 얼마나 좋은 기회였는지 아무도 몰랐다.”

-1967년 아시아 올스타에 뽑히는 등 이름을 날렸지만 전성기가 짧았다.

“제 전성기는 20대 초반에 끝났다. 기량이 문제가 아니라 사생활 때문이다. ‘스타는 공만 잘 차선 안 된다. 술·오락·연애 등 못하는 게 없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퍼졌던 시절이다.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하고 돌아다녔다.”

– 그래도 국내 경기에선 최고의 선수였다. 성적도 좋았다.

“보름 정도 마음잡고 훈련하면 몸이 돌아왔다. 연중 리그가 없고, 몇 달을 두고 대회가 열렸기에 가능했다. 선수로서 목표가 사라진 것도 방랑의 원인이다. 축구를 시작하며 세웠던 청소년대표, 국가대표의 꿈을 몇 년 사이에 다 이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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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홰택. 1970년/ 사진제공=이재형(축구용품 수집가)

– 선수로서 가장 아쉬운 점은.

“올림픽과 월드컵에 단 한 번도 못 나간 것이다. 1968년 멕시코시티, 1972년 뮌헨 등 2번의 올림픽 예선, 1970년 멕시코, 1974년 서독,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 등 5번 도전헤서 다 실패했다. 매번 우여곡절이 많았다.”

– 가장 후회가 남는 경기는.

“1971년 9월 25일 한국 대 말레이시아의 올림픽 예선이다. 슈팅 수 32대 8의 압도적인 경기였는데 0대 1로 졌다. 그날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서 ‘콘택600’ 두 알을 먹었는데 약 기운이 퍼져서 경기 내내 몽롱했다. 경기 막판에 코너킥을 차려고 준비하는데 관중석에서 소주병이 날아왔다. 홧김에 공을 관중석으로 차버리니까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1972년 6월 2일 펠레의 산토스와 서울운동장에서 맞붙은 경기다. 경기장 육상 트랙까지 관중이 들어찼다. 우리가 2대 3으로 졌는데, 펠레도 득점했고 저와 차범근이 한 골씩 넣었다.”

– 감독으로 업적도 냈다.

“은퇴 후 모교 한양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곧바로 우승했다. 41살 때 프로축구 포항제철로 갔다. 1988년 우승팀 감독 자격으로 국가대표 감독도 맡았다. 현역 시절 행동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참고 또 참았더니 성적이 따라오더라.”

– 1990년 월드컵은 3패로 탈락했다.

“아시아 지역 예선을 9승 2무, 30득점 1실점의 압도적인 성적으로 통과했는데 본선에선 힘 한번 못 쓰고 허무하게 무너졌다. 한 달 먼저 현지에 도착해서 시차 적응도 하고 연습경기도 충분히 하고 싶었는데, 개막 일주일 전 현지에 도착하는 걸로 일정이 바뀌었다. 정상적으로 붙었어도 조별 리그 통과는 어려웠겠지만, 제대로 붙어보고 졌더라면 후회가 남지 않았을 것이다.”

– 평양에 가서 아버지도 만났다.

“1990년 10월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열린 남북통일축구대회 때다. 고려호텔 2층 로비에서 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만났다.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 바로 아버지를 알아보셨나.

“물론이다. 핏줄이란 게 무섭더라. 보자마자 바로 느낌이 왔다.”

– 그런데 머리카락이 곤두섰다고 했다.

“아버지를 끌어안는데 저를 밀치고 ‘미(美) 제국주의 놈들 아래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 나는 수령님과 지도자 동지의 은혜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하시더라. 나오려던 눈물이 쑥 들어갔다.”

– 아버지와는 그 만남이 마지막인가.

“그날 밤에 아버지, 작은아버지와 호텔 방에서 같이 잤다. 다음 날이 제 생일이었는데, 아버지가 제 입에 생일떡을 물려주시더라. 눈물이 터져서 아버지도, 저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1990년 10월 13일 오전, 한국 선수단이 서울로 떠날 때 작별 인사를 드린 것이 마지막이다.”

▲ 이회택(78)은

경기도 김포생으로, 동북고, 한양대, 양지, 포항제철, 홍콩 하이펑에서 선수로 뛰었다. 지도자로는 한양대,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레곤즈,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했다. 축구 행정가로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부회장을 지냈다.

아시아투데이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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