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일본 감독은 어떤 사람이기에?
대한민국 축구가 팔레스타인과 0대0으로 비기자 떠오른 의문이다. 그날 일본이 중국을 7대0으로 이겼기 때문. 석 달 전에 한국이 겨우 1대0으로 이긴 중국을…일본의 실력에 놀랐다. 홍명보 감독이 관중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으며 형편없는 경기를 했기에 씁쓸함은 더 했다. 상식과 합리에 따라 감독을 뽑았으면 관중들의 분노가 없었을 터. 그토록 서투른 시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수들이 감독을 변명하고 감싸주는 안타깝고 가여운 모습도 없었을 것이다. 감독 때문에 세계 일류 선수들이 무슨 죄인가?
이런 복잡한 감정을 더 북돋운 사실은 일본 축구매체가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의 평점을 출전선수 16명보다 더 높게 매긴 것. 10점 만점에 9.0. 1골 2도움의 구보 다케후사 등 4명만이 8점. 나머지는 6점대였다. 감독의 점수를 매기는 것은 낯선 일. 더구나 감독에게 최고 점수를 준다는 것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매체는 “깜짝 놀랄 3백으로 경기를 시작해, 끝까지 공격적인 자세를 유지하며 경기를 완승으로 이끌었다”고 평했다.
감독의 전술전략이 얼마나 훌륭했으면 가장 좋은 활약을 한 선수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줬겠는가? 바레인 경기에서도 5대0으로 이기자 “공격은 아시아에서 다른 차원”이라는 칭찬까지 나왔다. 오만에 3대1로 이기고도 “참담한 전술 능력. 일부 선수들 덕분이었다”는 비판이 쏟아진 홍 감독과는 극명한 대조. 일본 매체는 그에게 몇 점을 줄까? 5점 미만일 것이다.
홍 감독이 경기 내내 야유를 듣는 동안 모리야스 감독은 더없는 찬사를 듣고 있었다. 한국 축구의 실력 차이만큼이나 큰 감독의 차.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일본 감독은 바닥에서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모리야스는 홍명보와 여러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그가 2018년 감독에 뽑힐 때 어떤 말썽도 일어나지 않았다. 절차·과정을 무시한 낙하산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함부로 트집을 잡을 수 없게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길을 밟아 국가대표 감독에 올랐기 때문.
모리야스는 대학을 안 나왔다. 고교 때도 실력이 모자라 지역 명문고에 갈 수 없었다. 홍명보의 평생 무기인 학연이 없다. 실업 구단 동기들 가운데 평가가 가장 낮았다. J-리그에서도 그저 그런 선수. 외국감독의 눈에 띄어 발탁된 국가대표 경력도 4년. 처음 대표가 됐을 때 같은 고향 선수 2명 빼고는 아무도 한자를 “모리야스”라고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무명. A시합 35차례. 홍명보가 14년간 국가대표로 137경기, 4번의 월드컵에 나간 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와 달리 코치 경력만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석의 길을 밟았다.
모리야스는 2004년부터 J-리그 ‘히로시마 산프레체’ 육성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4년을 경험한 뒤 U-19/U-20 코치가 되어 3년을 보냈다. 자격증도 없이 처음부터 국가대표 수석 코치가 된 홍명보와는 시작부터 달랐다.
모리야스는 프로 구단 두 군데서 5년간 코치를 했다. 코치만 12년 끝에 히로시마 감독에 올랐다. 감독 6년 동안 J-리그 우승을 3번이나 한 뒤 도쿄 올림픽 감독이 되었다. 올림픽 감독을 하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국가대표 코치를 거친 뒤 2018년 감독에 뽑혔다. 아무리 학연이 없고 보잘 것 없는 국가대표 선수였지만 14년 동안 검증된 지도자 경력 때문에 누구도 입을 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6년 넘게 장수 감독을 하고 있다.
홍명보를 늘 따라다닌 비판은 ‘특혜’다. 바닥 지도자나 구단 감독 경험 없이 국가대표 수석코치, U-20과 올림픽 대표 감독에다 월드컵 감독까지 됐기 때문. 8년 간 꽃길만 걸으면서 월드컵 감독이 되었으나 예선탈락. 그러고도 10년 만에 온갖 논란에 아랑곳없이 다시 월드컵 감독을 맡았으니 특혜 시비는 당연한 일. 물론 올림픽 4위에 그친 모리야스와는 달리 홍명보는 런던에서 동메달을 땄다. 모리야스보다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모리야스는 2019년 아시안컵 준우승, 22년 동아시안컵에서 우승하면서 한국을 3대0으로 이겼다. 특히 모리야스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독일과 스페인에게 각각 2-1 역전승했다. 8강엔 못 갔으나 3위 크로아티아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월드컵 감독 순위에서 프랑스 신문 ‘뤠퀴프’는 모리야스를 2위, 이탈리아 스포츠 매체는 3위로 꼽았다.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은 연간 최우수 감독 국가대표 부문에서 아시아 역대 최고인 5위에 그를 선정했다. 세계가 인정한 셈이다.
■홍명보 연봉은 모리야스보타 30% 이상 많다?
이런 모리야스의 연봉은 19억 원(2억 엔). 월드컵이 끝난 뒤 당시 일본축구협회장은 “지금까지의 감독 이상으로, 세계 누가 봐도 부끄럽지 대우를 하겠다”고 말해 3억 엔 설이 돌았다. 그러나 5000만 엔이 더 오른 2억 엔에 계약했다. 협회 내부의 진통이 없었다. 언론이나 국민들도 거의 찬성. 무더기 반대가 쏟아져 나온 홍명보 선임과는 전혀 달랐다.
홍명보의 연봉은 30억 원가량으로 추산되고 있다. 축구협회가 “외국인 감독만큼 대우를 하겠다”고 공언한 데다 전임 위르겐 클린스만의 연봉이 220만 달러로 알려진 탓. 만약 30억 원이 사실이라면 모리야스에 비해 너무 높다.
일본축구협회 예산은 24년의 경우 지출이 2,050억 원가량(218.6억 앤). 대한축구협회 2023년 일반 예산은 1021억원. 예산은 일본의 절반가량인데도 한국 국가대표 감독의 연봉은 30% 이상 높다. 검증 안 된 성과도 없는 감독에 그렇게 줄만큼 형편이 좋은가?
홍명보 논란의 중심은 대한축구협회. 두 나라 축협의 차이도 크다. 일본은 평생 축구인으로 축구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 아니면 회장이 될 수 없다. 회장 평균 재임 기간 4.3년.
한국은 축구인이 아닌 정몽준·정몽규 회장 4촌 형제의 27년 독식이다. 형제의 재임 기간은 일본 평균의 6.5배. 일본이 오래 전에 청산한 장기집권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그것도 족벌체제로.
일본 축협이라고 문제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국가대표 감독을 회장이 입맛대로 고르는 등의 독단·전횡은 하지 않았다.
최근 일본 매체는 모리야스 분석을 상세하게 했다. 다음은 아주 짧게 간추린 것. “기자회견마다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라는 요소만으로 세계 명감독들을 제칠 수 있을까?
모리야스는 평범한 선수. 그럼에도 일본 대표가 된 원인은 ‘남의 이야기를 듣고 흡수하는 능력.’ 자존심에 얽매이지 않고 끝까지 겸손하게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2022년 독일 원정. 고참 선수 5명이 감독에게 ‘더 세세한 지시를 내려달라’고 요구한 것은 중요한 전환점. 모리야스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 더 명확한 예시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기 쉬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세계 어느 국가대표 가운데 이처럼 선수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조직은 드물 것.
모리야스는 자신의 경험을 선수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지금 선수들이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뛰면서 생활을 포함한 큰 경험을 얻은 선수들로부터 배운다. ’대표선수로서 이렇게 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하는 것이 내 역할. 축구에서는 정답이 순간순간 변한다. 전반의 정답이 후반에는 틀린 정답이 될 수 있다. 유연함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자신의 성공 경험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기사는 모리야스의 다른 능력도 많이 분석했다. 하지만 그런 자세·태도를 국가대표 감독에 오르고 일본을 강하게 만들며 6년 넘게 장수하는 비결로 꼽았다. 늘 ‘카리스마’를 의식한 탓인지 선수들 앞에서 휴지통을 발로 걷어차며 “이게 축구냐?”고 고함친 홍명보와는 정반대다.
특혜도 특권의식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지도자 경험을 쌓았던 모리야스를 일본축구협회는 감독으로 선택했다. 한국은 협회장이 나서 두 번이나 비단길만 걸은 홍명보를 감독에 앉혔다. 인간의 능력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경험은 능력을 늘릴 수 있다. 모리야스와 홍명보의 개인 능력은 수치로 나타내기 어렵다.
하지만 경험 차이는 경력에서 바로 드러난다. 그 차이의 결과가 0대0과 7대0, 3대1과 5대0. 능력과 경험이 어우르진 객관 수치다. 대한축구협회가 상식·합리를 무시한 탓. 언제까지 이런 숫자가 이어질까? 더 이상 국민들 자존심 상하기 전에 한국 축구를 위한 홍명보 감독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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