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협회냐!”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22·삼성생명)의 ‘작심 발언’ 이후 대한배드민턴협회 조사에 착수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중간 브리핑을 들은 팬들은 개탄했다.
문체부는 10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이정우 체육국장을 통해 배드민턴협회 조사 중간 브리핑을 했다.
“대표팀에서 나간다고 올림픽을 못 뛰는 것은 야박하지 않나 싶다”고 안세영이 직접적으로 언급해 가장 관심을 모았던 비(非)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 제한 규정에 대한 조사 결과와 입장이 명확하게 나왔다.
현 규정에 따르면, 국가대표가 아닌 배드민턴 선수는 국가대표 활동기간 5년을 충족하고 일정 연령(남 28세·여 27세) 이상인 경우에만 세계 배드민턴 연맹 승인 국제대회(국가별 참가인원 제한이 없는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기타 국내 올림픽 및 아시안게임 44개 종목 중 배드민턴처럼 비 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경우는 없다. 문체부는 비(非) 국가대표 선수의 국제대회 출전을 제한하는 협회 규정의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못지않게 관심을 모았던 협회를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혹들도 브리핑 내용에 포함됐다. 문체부가 김택규 회장의 후원 물품 배임·유용 등 ‘페이백’ 의혹에 대해 횡령·배임죄 적용 가능성을 언급해 주목된다.
배드민턴협회는 국가대표 선수가 유니폼뿐 아니라 라켓·신발 등 모든 용품을 후원사 제품만 일괄 사용하도록 규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올림픽·아시안게임 종목 경기단체(44개) 중 배드민턴과 같은 규정을 적용한 것은 복싱뿐이다.
이정우 문체부 체육국장은 “배드민턴에서 라켓과 신발은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해 선수의 결정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선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이 후원업체에 연간 1억5000만원 안팎의 물품을 별도로 요구해 임의로 활용한 정황도 발견했다. 이정우 국장은 “김 협회장이 후원업체에 ‘페이백’을 요구하고, 이를 정해진 기준 없이 사용한 사실만으로도 보조금관리법 위반 및 기부·후원물품 관리 규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끝이 아니다.
배드민턴협회는 과거 후원 계약에 전체 후원금의 일정 비율을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배분하도록 명시했던 규정을 삭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후원사가 아닌 다른 업체와 후원 계약을 맺었던 2017년에는 전체 후원금의 20%를 선수들에게 배분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2021년 6월 이 조항을 삭제했다는 얘기다. 당시 선수단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았으며 대다수 선수들은 이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문체부의 의견 청취 과정에서 파악했다.
또 있다.
협회는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 달성 시 후원사가 선수에게 직접 보너스를 지급하도록 한 규정도 변경했다. 이전 업체와 계약 때 후원사가 선수단에 직접 지급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현 후원사와 처음 계약을 맺은 2019년에는 후원사가 협회를 통해 선수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고, 2023년 재계약 때는 후원사가 협회에게 지급한다고만 규정했다. 이 보너스를 선수에게 지급한다고 명시됐던 조항을 삭제했다. 선수들에게 주어져야 할 보너스마저 사라지게 된 셈이다.
문체부 보조금을 받아 진행하는 사업에서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과 일부 임원들의 비리 의혹도 드러났다. 문체부는 “후원사와 지역 배드민턴협회들에도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현재 파악한 상황만으로도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가 된 사업들은 문체부가 대한체육회를 통해 각 종목 단체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타 종목 단체에서도 같은 문제가 있을 수 있는 만큼 문체부가 조사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까지 국가대표 선수단 48명 중 22명에 대한 의견 청취가 이뤄졌고 최종 조사 결과는 이달 말 발표될 예정이다. 체육계 관계자들은 “중간 브리핑만으로도 배드민턴협회는 초토화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발표 전 책임지는 사람들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반응했다.
배드민턴협회의 재정 자립도는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한 협회 중 가장 낮다. 임원들은 무려 40명에 이르는데 타 종목과 달리 회장‧임원의 기부금은 ‘0원’.
기부금은 국내 스포츠 협회의 주요 수입원이다. 국민체육진흥기금과 지방비 등 보조금만으로 협회를 운영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물론 임원진이 기부금을 내는 것이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안세영 같은 세계적인 선수를 육성하고 지원하기 위해서는 기부금 등을 통해 재정 확보나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배드민턴협회는 “협회가 아니라 복마전 같다”는 비판까지 듣고 있다. 이번 문체부 조사 발표는 스스로 정화되기 어려운 협회가 선수들을 위한 협회로 변모해 새출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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