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최)원준이는 1번타자는 좀 안 어울려서…”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타순 운영 및 관리에 대해 얘기할 때 몇 차례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현대야구에서 개별 타순의 고유한 역할을 살리는 건 큰 의미 없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도 1번타자의 경우 초반엔 공을 많이 보고, 애버리지 이상으로 출루를 많이 하면 팀에 큰 도움이 된다. 발도 빠르면 더 좋다.
냉정히 볼 때 KIA에 이런 유형의 타자는 거의 없다. 그나마 출루율이 좋은 이창진이 가장 적합하지만, 주전이 아니다. 계속 쓸 수 있는 1번타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주전들 중에선 박찬호, 김도영, 소크라테스 브리토, 최원준이 돌아가며 1번 타자로 나갔다. 결국 올 시즌 박찬호가 가장 많이 나갔고, 투수에 따라 소크라테스와 최원준이 들어섰다.
사실 박찬호, 소크라테스, 최원준 모두 잘하고 있다. 최원준은 9번 타자로 가장 많이 들어서는 타자인데 성적은 9번타자 같지 않다. 올 시즌 121경기서 402타수 118안타 타율 0.294 9홈런 53타점 71득점 21도루 OPS 0.802다.
1번타자로는 정말 안 맞았다. 15타수 1안타 타율 0.067 1타점이다. 반면 2번타자로 타율 0.303 4홈런 19타점, 9번타자로 타율 0.313 4홈런 20타점이다. 아무래도 완전체 타선을 갖춘 뒤 소크라테스가 2번 타자로 많이 나가면서, 최원준은 자연스럽게 9번 타자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9번 타순에서 펄펄 나니, 공포의 9번타자가 따로 없다. 투수들 입장에선 쉬어가는 타순이 절대 아니다.
최원준은 지난해 상무 시절 어깨 부상으로 시즌 준비를 제대로 못했다. 그 여파가 1년 내내 이어지며 67경기서 타율 0.255 1홈런 23타점 OPS 0.672에 그쳤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성적이 수직상승했다. 생애 두 번째 규정타석 3할도 가능하고, 생애 첫 두 자릿수 홈런도 가능하다.
최원준은 애버리지에 2루타 생산력을 겸비한 중거리 타자다. 이범호 감독 설명대로 1번 타자로는 표본이 적긴 해도 잘 안 맞지만 2번과 9번을 오가며 KIA 공격력에 기름칠을 제대로 한다. 2번이든 9번이든 결국 중심타선 앞에서 밥상을 차리는 건 같다. 굳이 1번 타자만 그 역할을 하는 건 아니다.
올 시즌 KIA 타선이 워낙 곳곳에서 잘 터진다. 김도영이나 최형우가 워낙 화려한 행보를 하고 있어서, 최원준이 돋보이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제 몫을 충분히 한다고 봐야 한다. 페이스가 안 좋을 때 왼손 선발투수가 나오면 이창진에게 기회를 넘겨준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중견수 수비도 안정적이다. 도루를 무리하게 많이 시도하지 않지만 어느덧 21개다.
최원준은 장기적으로 김도영, 박찬호, 이우성 등과 함께 KIA 타선을 이끌어 가야 할 타자다. 나중에 중심타선에 들어가도 손색없다. 군 복무도 마쳤고, 본격적으로 야구를 잘 할 시기에 들어섰다. 2023시즌의 아픔을 딛고 자신의 야구에 대한 정체성도 찾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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