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인천 박승환 기자] 최악의 하루. 이 이상의 어떠한 단어도 필요하지 않았다.
롯데 자이언츠는 30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SSG 랜더스와 팀 간 시즌 11차전 원정 맞대결에서 5-11로 완패하며, 주중 첫 경기를 패배로 시작했다.
이날 경기의 가장 큰 관심사는 롯데의 ‘잊혀진 특급재능’ 윤성빈의 1951일 만의 선발 등판이었다. 1군 마운드 선 것만 기준으로 본다면 2021년 5월 2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 이후 1166일 만. 197cm의 큰 키를 바탕으로 부산고 시절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뿌리던 윤성빈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을 정도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윤성빈은 메이저리그가 아닌 KBO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롯데는 큰 고민 없이 윤성빈에게 1차 지명권을 행사했다. 롯데의 기대감은 정말 컸다. 계약금을 4억 5000만원이나 안긴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 윤성빈은 데뷔 첫 시즌 18경기에 등판해 2승 5패 평균자책점 6.39으로 충분히 가능성을 내비쳤고, 경험치를 쌓았다. 그리고 이듬해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윤성빈의 프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상으로 인해 공을 던지지 못하는 날도 많았고, 파이어볼러의 숙명과도 같은 제구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구폼에 대한 많은 변화를 시도하면서 좀처럼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남다른 재능을 보유한 윤성빈을 포기하지 않았고, 2019년 ‘형제구단’ 치바롯데에 연수를 보내고, 미국 드라이브라인 프로그램을 통해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윤성빈이라는 이름이 잊혀질 때쯤 한차례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2021년 5월 21일 잠실 두산전. 당시 윤성빈은 불펜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최고 152km의 강속구를 뿌리며 1이닝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1군에서 조금 더 기회를 받을 만한 투구였다. 하지만 윤성빈은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가게 됐고, 또다시 팬들의 기억 속에서 윤성빈이라는 이름이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윤성빈이 1군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게 됐는데, 이번엔 햄스트링이 파열되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또다시 단 한 번도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던 윤성빈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바로 이날 등판이었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에 앞서 “선발 투수로 박진과 최이준도 생각을 했었는데, 윤성빈이 2군에서 공이 좋다는 평가가 있었다. 구속은 워낙 좋지 않나. 2군에서 선발로도 조금씩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그래서 한 번은 기회를 줘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윤성빈의 투구는 분명 나쁘지 않았다. 1회 선두타자 최지훈을 좌익수 전준우의 도움 속에 좌익수 파울플라이로 돌려세운 뒤 정준재를 상대로는 이날 최고 구속인 152km를 뿌리며 중견수 뜬공으로 두 번째 아웃카운트를 생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였다. 최정에게 우익수 방면에 뜬공을 유도했는데, 이 타구가 우익수-2루수-1루수 사이에 절묘하게 떨어지는 안타로 연결된 것. 이때 기예르모 에레디아와 박성한에게 연속 적시타를 맞으면서 2실점을 기록했다.
실점했지만, 윤성빈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날 투구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바로 추신수를 상대로 2B-2S에서 무려 140km의 포크볼을 위닝샷으로 던져 삼진을 솎아낸 것. 그러나 직구-포크볼의 단조로운 투구 패턴 속 2회의 결과도 좋지 않았다. 윤성빈은 시작부터 한유섬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흔들리더니, 후속타자 이지영에게 146km 직구를 공략당해 투런홈런을 맞았다. 그리고 이어나온 오태곤에게도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준 뒤 결국 마운드를 내려갔고, 책임주자까지 홈을 파고들면서 1이닝 5실점(5자책)을 기록하게 됐다.
윤성빈에게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 이하)를 기대하진 않았지만, 너무나도 일찍부터 마운드를 내려가게 된 것은 분명 ‘변수’였다. 롯데는 2회부터 불펜을 가동했고 최이준을 투입해 경기를 풀어나가려 애썼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3회 2아웃까지 잘 잡아낸 최이준이 오태곤과 승부에서 3구째 슬라이더를 던진 뒤 갑작스럽게 어깨를 부여잡은 것. 최이준은 곧바로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극심한 고통을 호소, 자진해서 마운드를 내려갔다.
2022시즌부터 롯데의 유니폼을 입은 최이준은 올해 온갖 궂은 역할을 도맡았었다. 홀드와 세이브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긴 이닝을 소화해 줄 선수가 필요할 때면 항상 마운드에 올랐다. 들쭉날쭉한 등판 속에서 긴 이닝을 지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김태형 감독 또한 이런 최이준의 노고를 모르지 않았기에 지난 6월 13일 키움 히어로즈전이 끝난 뒤 한차례 휴식을 부여했다. 그리고 한 달이 넘어서 1군으로 돌아왔는데, 결국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롯데는 투수가 갑작스럽게 팔꿈치 또는 어깨를 잡고 내려간 것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지난해 개막전에서 이민석이 팔꿈치를 잡았고, 결국 토미존 수술을 받으면서 1년을 통째로 날렸기 때문이다. 최이준은 31일 검진을 받을 예정, 아직 정확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지만,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한 상황이다.
롯데에게 이날 패배는 단순한 1패 이상의 타격이 있었던 경기였다. ‘원조 특급유망주’ 윤성빈 오랜만의 1군 등판에서 좌절감을 느낀 것이 첫 번째. 물론 이는 다시 구슬땀을 흘리고 노력하면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최이준이 어깨를 잡고 스스로 마운드를 내려간 것은 ‘충격’이었다. 최이준의 부상은 불펜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 가뜩이나 마운드에 대한 고민이 큰 상황에서 롯데는 ‘롱 릴리프’ 역할을 해줄 선수를 다시 물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득보다 실이 많은 하루였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