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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사실상 유례가 없는 종목 10연패를 이룬 한국 여자 양궁은 “대표팀에 들어가는 게 메달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10차례 올림픽에서 찾아온 고비마다 상대를 제압한 ‘강심장’의 바탕에는 투명한 선발 시스템과 획기적인 훈련 방식이 있다는 평가다.
임시현, 남수현, 전훈영이 나선 한국 대표팀은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쟁발리드에서 열린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다시 한번 꺾고 10연패를 달성했다. 슛오프까지 가는 접전 속에서 또 한 번 한국 양궁의 정신력이 빛났다.
특히 ‘무명’이라는 우려를 씻어낸 맏언니 전훈영과 남수현은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다는 한국 양궁의 경쟁력을 다시 보여줬다. ‘계급장 다 떼고 온전히 실력만으로 뽑는다’는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는 세계를 제패하기에 충분한 실력이 있음을 재차 증명한 것이다.
이날 막판 슛오프에서 10점을 쏜 전훈영은 금메달 확정 후 “나라도 우려가 됐을 것 같다. 진짜 팬들이 못 보던 선수이기 때문”이라며 웃었다. 그는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내가 선발돼 버렸는데 어떡하나. 그냥 해야지”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한국 양궁은 총 5차에 걸친 살얼음판 승부를 펼쳐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를 뽑는다. 정성적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정량적 요소로만 선수 간 우열을 가려낸다는 원칙을 지킨다. 이런 시스템이 각 실업팀, 대학팀, 유소년팀 지도자들은 파벌 싸움 없이 선수 육성에만 전념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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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림픽에 나선 선수들의 강심장은 수치로도 드러났다. 도쿄올림픽부터 도입된 ‘심박수 중계’에서 전훈영은 이날 결승전에서 휴식을 취할 때와 다름없는 70~80bpm의 심박수를 보였다. 중국 선수 안취쉬안의 심박수가 최고 108bpm까지 올라간 것과 대조됐다. 심박수가 높을 때 양궁 선수들의 점수는 대체로 낮게 나온다.
이런 강심장은 신기술을 도입한 체계적인 훈련으로부터 비롯됐다는 평가가 많다. 남수현은 “막상 실제 경기를 하니까 즐기면서 할 수 있었다”며 “연습을 생각하면서 자신 있게 쐈다”고 말했다. 그 뒤에는 현대차그룹의 물심양면 지원과 양궁인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앵발리드 경기장과 똑같은 시설을 진천선수촌에 설립하고 파리 현지에도 전용 연습장을 마련하는 한편 개인 훈련용 슈팅 로봇을 개발하고 소음·바람 적응 연습 환경을 만들어 선수들의 훈련을 도왔다.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파리까지 여자 단체전 10연패를 달성한 궁수들은 개인전과 혼성전에서 메달 사냥을 이어간다. 특히 김수녕, 박성현, 기보배로 이어진 신궁 계보를 이을 것으로 기대되는 에이스 임시현은 개인전과 혼성전에서 3관왕에 도전한다.
한편 외신들은 이날 한국 양궁의 10연패 소식을 전하며 칭찬을 쏟아냈다. 미국 NBC는 “올림픽에서 어떤 스포츠가 한 나라에 의해 지배된다면, 그것은 바로 여자 양궁”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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