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한정우(조정석)의 삶은 참으로 화려하다. 뛰어난 조종 실력과 스타성으로 TV쇼에 출연하더니 항공사를 대표하는 유명인이 됐다. 가파르게 치솟던 인기만큼 추락 속도도 빠르다. 술자리에서 내뱉은 잘못된 언사로 한정우의 인생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뒤바뀐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찾고 싶다. 비행기를 몰고 싶은 마음도 여전하다. 술김에 동생 한정미(한선화) 이름으로 지원한 서류가 합격하자 한정우는 여장도 불사하며 재기를 노린다.
영화 ‘파일럿’(감독 김한결)은 배우 조정석의, 조정석을 위한, 조정석에 의한 코미디다. 그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로 빼곡하다. 조정석 특유의 차진 연기와 캐릭터 표현력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저항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원맨쇼에 가까운 그의 활약과 주변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어우러지며 재미와 공감을 골고루 잡아낸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현실로 가져오지만 전혀 들뜨지 않는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전개를 아우르는 조정석의 연기 덕이다. 그는 극 중심에서 전개를 이끌며 곳곳에 윤활유를 덧칠한다. 낯부끄러울 만한 장면부터 잔뜩 망가지는 상황까지 능청맞게 소화하다 보니 그가 화면에만 잡혀도 스멀스멀 미소가 지어진다. 전개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웃다 보면 모든 게 납득될 정도다.
조정석을 필두로 재미를 끌어내는 요소가 가득하다. 여장에 도전한 조정석의 변신이 돋보인다. 예고편에서부터 화제였던 그의 여장이 ‘파일럿’의 핵심 무기다. SBS ‘질투의 화신’ 등 그의 과거 필모그래피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도 있어 더욱더 웃게 된다. 신승호는 주위에서 볼 법한 ‘직장 빌런’을 밉지만은 않게 구현해 웃음을 더한다. 한선화는 조정석과 ‘현실 남매’로 기능하기 위해 온갖 망가짐을 불사한다. 티빙 ‘술꾼도시여자들’로 증명한 캐릭터 소화력을 열심히 뽐낸다. 이주명과 조정석의 조화 역시 볼거리다. 각자가 배역을 실감 나게 그려내며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여기에, 특별출연자들의 활약이 극에 풍성함을 더한다. 도입부터 등장한 유재석과 조세호를 시작으로 적재적소에 유명인들이 출연해 웃음 타율을 높인다. 유쾌한 연출과 조정석의 존재감이 이들을 극에 녹아들도록 돕는다. 볼거리가 많아지니 재미는 자연히 배가된다.
마냥 웃기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감동과 함께 생각할 거리도 착실히 남긴다. 한정미로의 삶을 택한 한정우가 역지사지에 놓인 순간들이 그렇다. 다만 관객에 따라 고개를 갸웃할 만한 대목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극이 풀어놓은 이야기는 한정우의 변화와 함께 매끄럽게 봉합된다. 공감할 만한 요소도 여럿이다. 세대 불문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보다 보면 어느새 훈훈해진 마음속 온도를 느낄 수 있다. 오는 31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0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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