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2등의 품격을 위해.”
KIA 타이거즈 수비왕 박찬호(29)는 작년 가을 정규시즌 시상식을 마치고 오지환(LG 트윈스)과 유격수 수비상을 공동 수상하자 밝게 웃었다. 그러나 당시 골든글러브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냉정하게 자신이 수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런 박찬호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실제로 수상하지 못했다. 수비 세부기록은 사실 박찬호가 오지환에게 미세한 우위였다. 그러나 오지환은 박찬호보다 장타력이 좋았고, 결정적으로 한국시리즈 우승 유격수라는 프리미엄도 있었다.
그럼에도 박찬호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다. “2등의 품격을 위해”라는 말을 남겨 팬들과 언론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자신이 수상하지 못할 것임을 예감했음에도 오지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기 위해 시상식장을 찾았다. 오지환도 그런 박찬호를 치켜세웠다.
심지어 박찬호는 지난 2월 호주 캔버라 스프링캠프에서도 기자가 먼저 질문하기 전까지 골든글러브의 ‘골’도 꺼내지 않았다. 골든글러브 질문을 하자 “욕심 없다”라고 했다. 개인타이틀은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지, 의식하면 안 되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리고 2024시즌이 시작됐다. 박찬호는 정말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제 타격은 확실히 옛날 박찬호가 아니다. 이범호 감독은 “찬호는 좋을 때와 안 좋을 때가 심한 편이다”라면서도 “리드오프에 가장 어울린다”라고 했다. 박찬호의 타격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
박찬호는 올 시즌 40경기서 161타수 50안타 타율 0.311 12타점 23득점 9도루 장타율 0.360 출루율 0.349 OPS 0.709 득점권타율 0.341이다. 2년 연속 규정타율 3할을 향해 달려간다. 최근 10경기서 타율 0.432로 뜨겁다. 주루는 21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 1회초 득점으로 설명 끝.
수비도 과거 화려한 호수비를 하고도 손쉬운 타구에 실책을 범하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매우 안정적이며 건실하다. 344이닝 동안 3실책이다. 424이닝에 4실책의 박성한(SSG 랜더스), 376이닝에 6실책의 오지환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올해 유격수 골든글러브 레이스는 어떨까. 시즌 3분의 1이 지난 시점에서, 공수를 종합적으로 볼 때 리그 수비 최다이닝의 박성한이 만만치 않다. 애버리지도 0.288이고 1홈런 18타점 OPS 0.715다. 그러나 박찬호가 밀린다고 보긴 어렵다. 오지환도 영원한 잠재적 경쟁자다.
수비만 볼 때 김주원(NC 다이노스)도 만만치 않다. 타격에선 잠재력을 아직 다 터트리지 못했지만, 수비는 작년에 비해 한층 안정감이 생겼다. 이밖에 이재현(삼성)도 공수에서 괜찮은 행보다. 여러모로 올해도 유격수 골든글러브 레이스가 흥미로울 듯하다.
이런 측면에서 박찬호가 마음을 비우고 팀을 위해서 뛰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차분하게 자신의 야구를 이어간다. 어느덧 박찬호도 첫 FA가 눈 앞이다. 2025시즌까지 정상적으로 마치면 자격을 갖춘다. 그 전에 가을의 진짜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누구나, 2등의 품격은 한 번으로 만족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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