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조용운 기자] 두 개의 대기록을 달성하고도 웃지 못했다. 개인보다 팀이 처한 상황이 너무도 쉽지 않다.
손흥민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고도 고개를 숙였다. 토트넘 홋스퍼는 지난 6일 열린 2023-24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리버풀 원정 경기에서 2-4로 크게 패했다.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목표로 막판 순위 싸움이 진행되는 가장 중요한 때 대패를 당하면서 4연패 수렁에 빠졌다. 토트넘이 프리미어리그에서 4연패까지 내몰린 건 2004년 이후 20년 만이다.
자연스럽게 챔피언스리그와도 멀어지고 있다. 4위 안에 들어야 출전권을 얻을 수 있는데 승점 60점(18승 6무 11패)에 머무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4위 아스톤 빌라(승점 67점)보다 한 경기 덜 했다 치더라도 격차가 줄어들지 않아 남은 3경기에서 반전을 이뤄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앞으로 한 번이라도 패하면 산술적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 확률은 사라진다.
토트넘은 리버풀 원정에서도 최근 들어 통하지 않는 전술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 여지없이 간파를 당한 토트넘은 전반 16분 모하메드 살라에게 첫 골을 내준 것을 시작으로 전반 45분 앤드류 로버트슨, 후반 4분 코디 학포, 후반 14분 하비 앨리엇에게 줄줄이 골을 허용하며 일찌감치 패색이 짙어졌다.
그제서야 손흥민을 왼쪽으로 돌리는 선택으로 흐름을 바꾸긴 했으나 너무 늦었다. 히샤를리송의 만회골로 영패를 면하자 손흥민도 후반 27분 문전에서 정확한 오른발 슈팅으로 추격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너무 적었고, 손흥민의 득점을 끝으로 2-4로 고개를 숙였다.
벼랑 끝까지 내몰리는 토트넘과 달리 손흥민에게는 뜻깊은 날로 기록될 만했다. 이날 선발 출전으로 토트넘 역사상 세 번째로 프리미어리그 300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지난 2015년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은 9시즌을 기복 없이 활약한 끝에 300경기 고지를 밟았다. 함께 전성기를 누렸던 동료들이 모두 떠난 상황에서도 홀로 남아 간판으로 활약하고 있는 손흥민이라 가능했던 꾸준함의 징표다.
더불어 프리미어리그 통산 120번째 골도 리버풀 상대로 작성했다. 토트넘 입단 첫 시즌을 제외하고 8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해내는 폭발적인 골 기록을 보여준 덕분에 달성한 수치다. 공교롭게 리버풀의 전설 스티븐 제라드와 통산 프리미어리그 득점 동률을 리버풀전에서 이뤄 감회가 남달랐다.
더불어 손흥민은 리버풀을 상대로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초의 기록도 만들어냈다.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는 열성적인 홈팬들의 응원을 등에 업는 곳으로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린다. 이런 곳에서 기량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은 데 손흥민은 2020-21시즌부터 4경기 연속골을 뽑아내며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처음 이름을 새기게 됐다.
놀라운 기록들을 세우고도 손흥민은 뼈아픈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경기 후 구단 채널을 통해 “힘들고 실망스럽다. 올 시즌 들어 처음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 힘든 순간이기에 더 뭉칠 기회이기도 하다”며 “시즌 초반에는 모든 게 잘 풀렸고, 모두 함께했다. 다들 우리 경기를 보고 싶어했다”라고 기세를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자신에게도 채찍질을 가했다. 손흥민은 “주장으로서 나도 충분한 몫을 해내지 못했다. 항상 강하게 밀어주고 싶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뛴다는 건 경험이 많냐 적냐가 중요하지 않다. 유니폼을 입었으면 모든 걸 해내야 한다”며 “우리가 지금 정말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지만 계속 고개를 들고 이 고통과 패배를 감내할 거다. 그리고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런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 그건 정말로 큰 문제다. 도전하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트넘은 앞으로 번리, 맨체스터 시티,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상대한다. 우승 경쟁 중인 맨체스터 시티전이 쉽지 않겠지만 번리와 셰필드는 강등권이라 승점 챙기기에 용이하다. 결국 맨체스터 시티전 승리에 모든 걸 걸어야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려볼 수 있다. 손흥민도 “아직 3경기가 더 남았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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