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최용재 기자]한국 축구에서 이토록 비운을 가진 인물이 있었던가. 황선홍 이야기다.
선수 시절, 황선홍은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 하지만 30년 전, 1994년 6월 그는 한국 축구의 역적이 됐다. 1994 미국 월드컵. 한국은 사상 첫 월드컵 첫 승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로 올라갔다. 한국은 C조에 배정이 됐고, 스페인, 독일과 한조가 됐다. 한국이 희망을 가진건 볼리비아였다. 한국이 월드컵 1승 제물로 여긴 팀이었다.
C조 2차전. 실제로 한국이 경기를 지배했다. 사상 첫 승의 기대감도 올라갔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와 기대감을 망친 이가 황선홍이었다. 그는 결정적 기회를 수차례 놓치며 고개를 숙였다. 결정적 슈팅은 연이어 허공을 갈랐다. 결국 0-0 무승부로 경기는 끝났다.
이후 황선홍은 ’마녀사냥’을 당했다. 엄청난 비난과 비판을 받아야 했다. 황선홍 선수 커리어 최대 시련이었다.
황선홍은 그래도 쓰러지지 않았다. 이 때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자신을 향한 비난을 완전히 잠재우는데, 역적에서 영웅으로 바뀌는데 8년이 걸렸다. 2002년 한일 월드컵 D조 1차전 폴란드전. 황선홍은 전반 26분 이을용의 크로스를 논스톱 발리 슈팅으로 연결시키며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이 결승골이 됐고, 한국은 2-0으로 승리했다. 한국 월드컵 역사상 첫 승. 황선홍이 자신의 발끝으로 이뤄냈다.
선수 커리어를 영웅으로 마무리 한 황선홍.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면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감독의 경쟁력을 증명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포항 스틸러스 지휘봉을 잡고, 매력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우승을 일궈냈다. 외국인 선수 없이 한국 선수로만 이룬 업적. 대단한 성과였다. ’황선대원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국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떠올랐다.
이런 황 감독은 자연스럽게 감독으로도 태극마크를 달았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황 감독은 한 번에 무너졌다. 한국 축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2024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이다. 한국은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기대했으나, 황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이 8강에서 인도네시아에 무너지면서 올림픽은 사라졌다. 한국은 40년 만에 올림픽에 본선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상대는 한국 보다 객관적 전력이 한참 낮은 인도네시아다. 충격이고, 참사고, 재앙이다. 한국 U-23 대표팀이 인도네시아에 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것도 첫 선제골을 내줬고, 첫 2실점을 허용했다.
올림픽 본선 좌절에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황 감독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대회 결과에 대한 1차적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 황 감독은 한국 축구에 오점을 남긴 지도자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는 1994년 월드컵 이후 30년 만에 또 한국 축구의 역적이 됐다. 비운의 전설이다. 한국 축구에 이렇게 비운이 겹친 전설은 없었다.
황 감독의 욕심도 있었다. 황 감독은 올림픽 최종예선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 기회였던 서아시아축구연맹(WAFF) U-23 챔피언십에 함께 하지 않았다. 당시 황 감독은 위르겐 클린스만 경질에 의해 공석이 된 A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A대표팀 감독 겸직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무리라고 했다. 올림픽 대표팀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했다. 황 감독은 이런 목소리에 귀를 닫았다. A대표팀 감독 겸직은 결국 독이 됐다. 누구를 탓할 수 없다. 자신의 선택이었다.
선수로서 역적으로 낙인 찍혔고, 8년 만에 영웅으로 돌아왔다. 30년 후 지도자로 역적이 됐다. 이번에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황 감독은 다시 처음부터, 역적에서 영웅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내야 한다.
[황선홍. 사진 = 게티이미지코리아, 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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