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2년까지 에릭 페디(31‧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전형적으로 실패한 유망주였다. 아마추어 시절 좋은 평가를 받으며 2014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워싱턴의 1라운드(전체 18순위) 지명을 받은 페디는 워싱턴이 애지중지한 선발 유망주였다. 마이너리그부터 단계를 차근차근 밟았다. 엘리트 코스에 가까웠다.
구단의 예상대로 컸다. 예상된 시점인 2017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2018년부터는 선발 기회도 얻었다. 나름 가능성을 보여줬다. 2019년에는 21경기 중 12번 선발 등판해 4승2패 평균자책점 4.50으로 선전했다. 이후 부침이 있었지만 워싱턴은 페디가 팀의 하위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이 여전했다. 2021년 27번이나 선발 등판 기회를 줬다. 2022년에도 27번 기회가 돌아갔다. 인내였다.
그러나 페디는 이 2년 동안 구단에 확신을 주지 못했다. 2021년 평균자책점은 5.47, 2022년 평균자책점은 5.81이었다. 2년간 54번의 선발 등판에서 13승22패 평균자책점 5.64에 그쳤다. 리빌딩 팀이었음에도 워싱턴은 페디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리고 2022년 시즌이 끝난 뒤 전격 논텐더 방출했다.
이제 나이도 유망주가 아니었고, 한계를 보인 페디에게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것도 아까웠다. 연봉 조정 자격을 얻은 페디의 2022년 연봉은 215만 달러였다. 재계약을 하려면 관례적으로 이보다는 더 많은 연봉이나 적어도 비슷한 연봉은 줘야 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페디가 그런 가치가 없다고 봤다. 200만 달러도 아까운 선수였다는 것이다. 팀 어린 유망주들의 자리도 마련할 겸 페디를 방출했다. 시련이었다.
하지만 페디는 포기하지 않았다. 방출 직후 애리조나의 한 훈련 시설을 찾았다. 더 체계적으로 몸을 만들었고, 기술 연마에 열을 올렸다. 스위퍼를 배우고, 자신의 변화구 디자인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KBO리그행을 선택했다. 비록 지금은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지만, KBO리그는 안정적인 선발 출전이 보장되어 있었다. 자신이 갈고 닦은 것들을 실험하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KBO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한 외국인 선수들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사례도 많이 봤다.
그렇게 KBO리그에 큰 기대 속에 입성한 페디는 지난해 말 그대로 리그를 평정했다. 큰 기대치인 만큼 그 기대를 못 채우는 선수가 태반인데 페디는 그보다 더 잘했다. 지난해 30경기에서 180⅓이닝을 던지며 20승6패 평균자책점 2.00이라는 역사적인 트리플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시즌을 남겼다. ‘페디가 달라졌다’는 소문을 들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시즌 중반부터 모이며 유턴은 일찌감치 예견되어 있었고, 시즌을 앞두고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총액 1500만 달러에 계약하며 금의환향했다. 200만 달러도 아까웠던 그 선수는, 이제 연 평균 750만 달러를 받는 중견급 선수로 바뀌었다. 딱 1년 만이었다.
그런 페디는 이제 메이저리그 복귀 준비를 마쳤다. 25일(한국시간) ‘2024 메이저리그 시범경기’ 콜로라도와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동안 81개의 공을 던지며 2피안타 1볼넷 4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4회 허벅지 쪽에 타구를 맞는 아찔한 장면도 있었지만 계속 투구했고, 정규시즌을 앞둔 마지막 점검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날 페디는 총 81구 중 커터(27구), 싱커(24구), 스플리터(17구), 스위퍼(13구)를 고루 실험했다. 포심을 대체하는 용도인 싱커 최고 구속은 94.2마일(약 151.6㎞), 평균 93.5마일(150.5㎞)로 정상적인 범주 내에 있었다. 여기에 36%의 헛스윙 비율을 보인 스플리터로 재미를 봤고, 2022년까지만 해도 거의 던지지 않았으나 이제는 주 구종 중 하나가 된 스위퍼는 인플레이타구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가능성을 내비쳤다.
페디는 이번 시범경기에서 총 네 차례 등판했다. 3월 4일 LA 에인절스와 경기에서 2이닝 1실점, 3월 9일 클리블랜드전에서 3이닝 1실점, 3월 14일 밀워키전에서 4이닝 3실점, 그리고 이날 5이닝 1실점을 기록했다. 매 경기마다 이닝을 하나씩 늘려가며 차근차근 빌드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범경기 평균자책점은 3.86으로 마쳤다. 피안타율(.300)이 다소 높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이닝당출루허용수(WHIP)는 1.29로 괜찮았다.
사실 화이트삭스의 선발 로테이션은 그렇게 단단한 편은 아니다. 미 스포츠전문매체 ‘블리처리포트’는 23일 30개 구단의 선발 로테이션 순위를 매기면서 화이트삭스를 전체 30개 팀 중 28위에 올렸다. 현재 로테이션은 개막전 선발로 내정된 좌완 개럿 크로쉐를 필두로 우완 마이클 소로카, 우완 에릭 페디, 우완 크리스 플렉센, 우완 닉 나스트리니로 이어진다. 아무래도 약하다.
크로쉐는 올해가 선발 전향 첫 해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 단 한 번도 뛰지 않았던 선수가 올해 개막전 선발로 나간다. 2019년 13승을 거둔 전력이 있는 소로카는 지난해 평균자책점이 6.40이다. 플렉센도 지난해 부진했다. 다 고만고만한 선수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페디는 올해 화이트삭스로서는 꽤 큰 영입이었던 만큼, 기대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약팀의 에이스 몫을 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준다면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거나 2년 뒤 더 큰 계약도 도전할 수 있다.
역대 KBO리그 역수출 선수 중 가장 성공한 선수는 타자로는 에릭 테임즈, 투수로는 메릴 켈리다. KBO리그에 오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등판 경력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켈리는 2019년 애리조나와 계약한 뒤 지난해까지 5년간 127경기에 선발로 나가 48승43패 평균자책점 3.80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큰 성과를 남겼다.
늦지 않았다. 켈리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나이는 만 31세였다. 페디가 메이저리그로 돌아온 나이 역시 만 31세다. 페디가 향후 켈리만큼의 성과를 남길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페디의 시즌 첫 등판이자 메이저리그 복귀전은 오는 4월 1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와 홈경기다. 페디는 이날 우완 잭 플래허티(디트로이트)와 맞대결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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