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고척 박승환 기자] “일기장에 쓸거에요”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팀 코리아’의 윤동희는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2024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맞대결에 우익수, 2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로 펄펄 날았다.
지난 2022년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전체 24순위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윤동희는 지난해 잊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데뷔 첫 시즌 퓨처스리그에서 매우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1군에서는 4경기에 나서는 것이 고작이었던 윤동희는 지난해에도 개막을 2군에서 맞았다. 하지만 1군의 부름을 받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동희는 퓨처스리그 10경기에서 타율 0.436으로 펄펄 날았고, 머지 않아 1군의 부름을 받았다. 콜업 당시에도 윤동희에게 좀처럼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는데, 5월부터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윤동희는 5월 한 달 동안 18안타를 터뜨리며 타율 0.333으로 활약하더니,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서 롯데 외야의 한 자리를 제대로 꿰찼다. 특히 윤동희에게는 ‘운’까지 따랐다.
항저우 아시안게임(AG)을 앞두고 예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던 윤동희. 당시 갑작스럽게 대표팀 명단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우타자 자원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KBO 전력강화위원회는 윤동희에게 기회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윤동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뜨거운 타격감을 뽐내며 ‘실력’으로 대표팀 승선의 이유를 증명했고, 류중일호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큰 힘을 보탰다.
이후 윤동희에게는 탄탄대로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윤동희는 자연스럽게 한국, 일본, 호주, 대만의 어린 유망주들에게 국제대회 경험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2회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BPC) 대표팀에도 승선하게 됐다. 특히 윤동희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지난해 겨울 새롭게 롯데의 지휘봉을 잡게 된 김태형 감독의 마음까지 사로잡았고, 스프링캠프 일정을 시작하기도 전에 ‘주전’을 보장받았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윤동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해도 된다. 윤동희는 정말 다르다. 루틴이 딱 정립이 돼 있다. 그라운드에 나오면 루틴이 다 보일 정도다.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너무 진지하다. 그래서 뭐라고 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냥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할 것 같다. 아직 윤동희를 겪지 않았으나,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더라. 그래서 주전 우익수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정도로 믿음이 간다”고 극찬했다.
물론 치바롯데 마린스와 교류전에서 아쉬운 수비를 범한 뒤 사령탑으로부터 “주전이라고 생각하지 마!”라는 따끔한 한마디를 들었지만, 큰 변수가 없다면 올해 롯데 외야의 한자리는 윤동희 몫. 윤동희도 사령탑이 왜 그러한 말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한 발 더 뛰고 더 간절하게 하라는 의미에서 감독님께서 강한 메시지를 주신 것 같다. 다 잘 돼라고 말씀을 해주신 것이다. 그래서 더 집중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두 차례 태극마크를 달았던 윤동희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LA 다저스와 서울시리즈에 앞서 열리는 ‘스페셜 게임’의 팀 코리아 대표팀 명단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7일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매우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윤동희의 안타는 첫 타석에서부터 나왔다. 윤동희는 1회 1사 주자 없는 첫 번째 타석에서 샌디에이고의 선발 조니 브리토를 상대로 초구 96.4마일(약 155.1km)의 몸쪽 싱커를 공략, 우익수 방면에 안타를 터뜨리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친 뒤 윤동희는 3회 2사 주자 없는 두 번째 타석에서는 샌디에이고의 바뀐 투수 스티븐 코렉에게 2루수 땅볼, 6회 세 번째 타석에서도 톰 코스그로브를 상대로 2루수 땅볼에 그치며 추가 안타를 생산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갈 무렵 윤동희의 방망이가 한 번 더 폭발했다. 윤동희는 0-1로 뒤진 8회초 2사 1루에서 이번 겨울 샌디에이고가 4년 1650만 달러(약 220억원)의 계약을 맺은 완디 페랄타의 2구째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바깥쪽 85.2마일(약 137.1km) 체인지업에 방망이를 내밀었다.
윤동희가 친 타구는 74.7마일(약 120.2km)의 느린 속도로 샌디에이고의 유격수(김하성)과 2루수(잰더 보가츠) 사이로 향했다. 이때 보가츠가 윤동희의 타구를 잡아낸 뒤 감각적으로 김하성에게 공을 건넸는데, 미처 2루 베이스커버를 들어오지 못한 김하성이 공을 잡지 못하면서 내야 안타로 연결됐다. 이 안타로 마련된 득점권 찬스에서 대표팀은 균형을 맞추지 못했지만, 윤동희가 멀티히트 활약을 펼친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마이데일리’와 만난 윤동희는 샌디에이고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친 것에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어땠느냐’는 질문에 “너무 재밌었다. 마치 내가 메이저리그에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승패도 중요하지만, 순간순간을 재밌게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했다. 썩 좋은 안타는 아니었지만, 좋은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활짝 웃었다. 경기가 끝났지만, 빅리그 선수들과 같은 그라운드를 밟은 생생한 여운이 이어지는 모양새였다.
팀 코리아와 샌디에이고의 맞대결은 이벤트성 경기였지만, 부담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윤동희는 “키움이 다저스와 할 때 점수차가 크게 났다. 특히 우리는 나라를 대표해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명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3점차 이내의 경기라면 선방’이라는 생각으로 편하게 임했는데, 모두 투수들이 잘 던져준 덕분”이라고 투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돈을 주고도 할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 했다. 윤동희는 “진짜 오래 기억하고 싶다. 타티스 주니어, 매니 마차도를 비롯해 너무 유명한 선수들도 많았지만, 김하성 선배님이 너무 반가웠다. 내가 훈련을 할 때 항상 보고 배우려던 선배였는데, 함께 경기를 뛸 수 있어서 의미가 더 있다”며 “경기를 할 때 공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할 만큼 집중을 했다. 그런데 공들이 너무 빨라서 뚜렷하게 기억에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래 기억하고 싶고, 일기장에도 꼭 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샌디에이고를 상대로 풀타임 경기를 치른 만큼 다저스전의 출격 여부는 불투명하다. 때문에 이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일만 남았다. 윤동희는 “국제대회를 할 때마다 느끼지만, 너무 값진 경험이다. 이를 잘 접목해서 나도 저런 선수들처럼 돼야 할 것 같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연치 않게 찾아온 국가대표의 발탁부터 시작된 여러 경험, 윤동희가 성장하는데 자양분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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