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출신 어머니와 대구서 맹훈련해 결실 “훈련 장소가 중요한 것 아니다”
남자 선수 최초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 “자만하지 않겠다”
(영종도=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서민규(15·경신고)는 좋아하는 영화를 10차례 이상 돌려보며 키운 연기력이 우승의 밑바탕이 됐다고 밝혔다.
서민규는 4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 “어릴 때부터 다양한 작품을 많이 보며 연기력을 키웠다”며 “특히 강동원 배우가 뛰어난 연기력을 펼쳤던 영화 전우치 등 좋아하는 영화는 10차례 이상 돌려봤다. 이런 것들이 연기력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서민규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24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총점 230.75점을 받아 일본의 나카타 리오(229.31점)를 제치고 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시상대에 오른 건 처음이고, 남녀 선수를 통틀어도 이 대회 우승을 차지한 건 2006년 김연아(은퇴) 이후 18년 만이다.
서민규는 4회전 점프 등 고난도 기술을 펼치지 않았지만, 뛰어난 연기력과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앞세워 깜짝 금메달을 차지했다.
매 순간 펼친 섬세한 연기와 표정은 만 15세 선수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뛰어났다.
그가 프리스케이팅에서 받은 예술점수는 76.72점으로 은메달리스트 나카타(73.63점)보다 3점 이상이 높다. 연기력으로 금메달을 쟁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성인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기술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최소 3개 이상의 4회전 점프를 펼쳐야 시니어 국제무대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
서민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올 시즌 초까지만 해도 (세 바퀴 반을 회전하는) 트리플 악셀 점프를 쇼트프로그램에 넣지 않았고, 이번 대회 공식 훈련에서도 성공률이 떨어졌다”라며 “휴식기엔 트리플 악셀을 넘어 내가 할 수 있는 쿼드러플 점프를 찾고 훈련하겠다”고 밝혔다.
서민규의 우승 배경엔 부모님의 피땀이 녹아있다.
서민규의 어머니는 피겨스케이팅 선수 출신이자 지도자인 김은주 코치로, 서민규는 어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피겨를 접했다.
아들이 재능을 보이자 그의 부친은 주거지인 대구에 피겨 실내 훈련장을 차리기도 했다.
서민규는 외국과 서울에서 훈련하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부모님과 대구에서 집중 훈련을 했다.
그는 “훈련 장소가 중요한 건 아니다”라며 “선수 본인이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실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회엔 어머니가 동행했는데 매우 기뻐하시더라. 아버지는 매번 내가 좋은 성적을 낼 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는데, 이번에도 우셨을 것”이라며 웃었다.
서민규에게 이번 대회 우승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의 시작점이다.
그는 ‘제2의 차준환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라는 말에 “아직 내겐 과분한 단어”라며 “메달을 땄다고 자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규는 급하지 않다. 처음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이 2030년에 열리기 때문에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겠다는 생각이다.
2008년 10월 14일생인 서민규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의 시니어 대회 출전 연령 규정 개정(만 15세→만 17세)에 따라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다.
그는 “아쉬움이 있지만, 2030년 올림픽(개최지 미정)을 더 열심히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괜찮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함께 귀국한 여자 싱글 은메달리스트 신지아(세화여고)는 3회 연속 은메달 획득에 관해 “조금 아쉽긴 하지만,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게 돼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다음엔 더 노력해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겠다”고 밝혔다.
신지아는 쇼트프로그램(73.48점), 프리스케이팅(138.95점), 총점(212.43점) 모두 개인 최고점을 썼지만, 동갑내기 라이벌 시마다 마오(일본·218.36점)에게 또다시 밀렸다.
신지아는 2023 주니어 세계선수권대회와 2022-2023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2023-2024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2024 강원 동계청소년올림픽에 이어 이번 대회도 시마다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그는 “이번 대회엔 금메달에 관한 욕심이 있었는데, 다음에 또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2023-2024시즌이 끝난 만큼 (지현정) 코치님과 함께 고난도 기술 훈련에 관한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cycl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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