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구일행(一球一幸). 공 하나하나에 행복을 느끼는 소년들이 있다. 드넓은 운동장에서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며 건강하고 올바르게 자라는 소년들. 바로 대한유소년야구연맹(회장 이상근) 소속 유소년야구 선수들이 주인공이다. ‘공부하는 야구, 행복한 야구, 즐기는 야구’를 지향하는 대한유소년야구연맹은 2011년 문을 열고 한국 야구 유망주 육성 산실이 됐다.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 중인 왼손 투수 최승용을 비롯해 여러 프로 선수들을 배출하며 한국 야구 저변 확대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 야구를 넘어 스포츠 전체에 좋은 모범사례가 되는 대한유소년야구연맹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 본다. (편집자 주)
[마이데일리 순창 = 심재희 기자] 일구일행 인터뷰 세 번째 초대 손님은 황윤제(55) 성북구 유소년야구단 감독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외모의 그가 등장하자 주위에서 ‘황박사’라는 말이 들려온다. 그도 그럴 것이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 그리고 눈높이 교육까지 정평이 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사’라는 표현에 되레 손사래를 친다. 자신이 내세울 것은 눈에 띄는 부분이 아니라 야구에 대한 깊은 열정과 어린 선수들을 위한 희생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잡초’라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묘한 매력을 풍기는 ‘잡초’ 황윤제 감독이다.
◆ 재능기부로 시작된 유소년야구 감독 생활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 덕수중과 덕수고를 졸업한 그는 수준급 투수였다. 하지만 개인 사정으로 야구를 더 길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슴 속에 야구가 계속 남아 있었다. 황 감독은 “19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1993년 리틀야구단 코치로 활약하면서 사회인야구도 했다”며 “선수 생활을 더 오래하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2008년 우연한 기회로 매원초등학교에서 펼친 ‘야구 재능기부’가 황 감독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는 “지인 소개로 2008년에 방과 후 교사로 아이들과 만났다. 야구로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며 “클럽활동 시간에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뭔가 느낌이 왔다. ‘야구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가르쳤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성북구 유소년야구단을 창단하게 됐다”고 밝혔다.
생업에 종사하면서 성북구 유소년야구단을 함께 운영했다. 당시 열악한 야구 환경 등으로 쉽지 않은 길을 걸었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011년 대한유소년야구연맹 창립 멤버로 포함됐다. 황 감독은 “2011년 대한유소년야구연맹에 가입하면서 더 많은 대회와 경기를 치르게 됐다”며 “돌아보니 팀을 창단한 지 16년이나 지났다. 지금은 대한유소년야구연맹 대회에 1년에 10여 번을 나간다. 성북구 유소년야구단과 행복한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다”고 웃었다.
◆ 10년 만의 우승과 끝내기 역전 만루포
인터뷰 도중 황 감독을 향해 ‘황박사’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별명인가”라고 물으니 손사래를 친다. “박사는 무슨 박사인가. 그냥 유소년야구 판에 오래 있었으니 주위에서 예우를 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며 “어찌 보면, 저는 박사가 아니라 잡초에 더 가깝다. 힘든 순간에도 열심히 노력해 스스로 성장했고, 운이 좋게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대한유소년야구연맹 창립 과정에서 이상근 회장님께서 많은 힘을 실어줬던 게 기억난다”고 설명했다.
성북구 유소년야구단은 현재 8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대한유소년야구연맹 강호로 평가받는 팀이다. 숱한 명승부를 펼쳐 더 주목을 받았다. 황 감독은 특히 지난해 유소년리그 청룡에서 10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때를 가장 멋진 순간으로 꼽았다. “지난해 마지막 대회였던 ‘2023 제5회 서울컵’에서 대한유소년야구연맹 간판 리그인 유소년리그 청룡 우승을 차지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2013년 우승 후 10년 만에 유소년리그 청룡 무대를 제패했다. 야구를 즐기는 아이들이 기념비적인 우승을 이뤄 너무나도 기뻤다”고 미소를 보였다.
‘황박사’라고 불리는 사령탑의 지휘 속에 성북구 유소년야구단은 2월 23일부터 28일까지 순창 일원에서 벌어진 제9회 순창군수배 전국유소년야구대회에서도 놀라운 역전 드라마를 이뤄냈다. 2월 26일 유소년리그 청룡 조별리그 남양주야놀 유소년야구단(감독 권오현)과 경기에서 대역전승을 거뒀다. 황 감독은 “5-3으로 이기고 있었는데, 4회초 마지막 수비에서 5실점하며 5-8로 뒤졌다. ‘오늘은 어렵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역전했다”며 “4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1사 만루 찬스가 왔다. 곽준환이 타석에 들어서 역전 끝내기 만루포를 터뜨리고 9-8로 이겼다. 지금도 손에서 땀이 난다”고 크게 웃었다.
◆ ‘공부하는 야구’를 실천하면서
지도자로서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대한유소년야구연맹이 지향하는 ‘즐기는 야구, 공부하는 야구, 행복한 야구’의 실천이다. 황 감독은 “팀 창단 초기에는 제 야구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선수들의 캐치볼 팔 동작과 타격 자세 등을 일일이 잡아 주면서 지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취미반에서 서로 어울리고 놀면서 야구를 즐긴 선수가 더 실력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뒤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며 “우리 팀은 선수반과 취미반이 혼합돼 ‘즐기는 야구, 공부하는 야구, 행복한 야구’를 항상 따른다. 저는 선수들이 야구를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감독으로서 항상 고민한다”고 전했다.
그는 “야구를 즐기면서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고 말을 이었다. “현재 포항공대에 다니는 손광훈이라는 제자가 있다. (손)광훈이는 어린 시절부터 공부도 잘하고 야구도 잘했다. 야구를 취미로 즐기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고 명문 대학교에 입학했다”며 “지난해에 (손)광훈이가 포항공대와 카이스트가 야구대결을 펼치는 ‘포카정기전’에 출전한 사진을 보내왔다. 여전히 야구를 즐기는 모습에 지도자로서 정말 뿌듯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이 이끄는 성북구 유소년야구단에는 선수반보다 취미반 선수들이 훨씬 더 많다. 약 80명 가운데 60여 명이 취미반에서 뛴다. 그런데도 대한유소년야구연맹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곧잘 낸다. 비결에 대해서 묻자 “팀워크”라고 답했다. “우리 팀에는 취미반 선수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선수들의 기본 기량이 떨어지진 않는다”며 “선수들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오랫동안 뛰었기 때문에 팀워크가 자연스럽게 좋아졌다. 아이들이 잘 협력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춰 좋은 경기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황박사’의 진정한 목표
유소년리그 청룡에서 ‘디펜딩 챔피언’으로 제9회 순창군수배 유소년야구대회에 출전했다. 토너먼트에 진출했지만 아쉽게 우승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전혀 실망하지 않는다. 앞으로 더 밝은 미래를 그릴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소년리그 청룡에서 뛴 선수들 여러 명이 이번 순창군수배를 끝으로 팀을 떠난다. 전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리빌딩 작업에 대한 구상은 끝났다. 팀을 재정비해서 다시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목표에 대한 질문에 황 감독은 “지금처럼”이라는 말을 꺼냈다. 지금처럼 성북구 유소년야구단을 계속 이끄는 게 목표라고 답했다. “성북구는 제가 태어난 지역이다. 고향에서 유소년야구단을 지휘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겐 큰 영광이다. 고향인 성북구에서 계속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북구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됐다. 서울시대의원을 맡으면서 생활체육위원장으로 열심히 뛰고 있다. 이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아이들과 함께 야구를 하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야구를 했다면, 아마도 유소년야구 감독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1명이라도 저에게 야구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들이 있다면, 평생을 바쳐 열심히 노력해 가르칠 것이다.”
황 감독은 현재 성북구 유소년야구단이 있기까지 도와준 여러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 달려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우리 성북구 유소년야구단 아이들이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며 “특히 팀 단장님이신 김태수 서울시의원님, 이승로 성북구청장님, 하광호 성북구체육회장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대한유소년연맹 창단부터 지금까지 좋은 기회를 제공해 발전을 도운 이상근 회장님께도 고마움을 전한다”고 힘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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