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2023 카타르 아시안컵 4강 탈락의 여진은 일단 정리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탁구 게이트’라 명명된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중심의 항명 사태는 주장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에게 찾아가 사과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일단 정리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시끄러웠던 감독 선임 문제도 3월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 4차전은 황선홍 23세 이하(U-23) 축구대표팀 감독이 겸임하는 것으로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정리했다. 물론 자문, 조언 역할이라 이사회를 거쳐 정몽규 회장이 최종 승인하는 형식을 밟아야 한다.
오직 황선홍 감독 지도 역량만 보는 축구협회, A대표팀 수습 전가 ‘무책임’
두 가지 큰 사안은 일단 표면상으로는 해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 효과다. 선수단 내 질서와 황 감독의 A대표팀 겸임은 하나의 고리로 이어져 있다.
U-23 대표팀을 신경 쓰는 것도 정신이 없는 황 감독이지만, 임시 체제로 A대표팀을 끌고 가는 것 역시 버겁다. 연령별 대표팀과 달리 A대표팀은 가장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섬세하게 다루지 않으면 어렵다.
이런 시각에서 강화위는 모든 해결을 황 감독에 맡기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 브리핑에서 선수들의 다툼을 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면 상처가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라며 자체 진상 조사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
이는 책임의 방관이나 마찬가지다. 선수들 사이의 신뢰가 깨져 있는 상황에서 ‘원팀’으로 굴러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은 계속 이어진다. 주장 손흥민이 “대표팀 내 편 가르기 내용은 사실과 무관하며, 우린 늘 한 곳을 바라보며 노력해 왔다”라고 설명하면서 “소란스러운 문제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하고”라고 했지만, 일어났던 일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를 두고 축구협회 한 고위 관계자는 “주장이 사과하지 않았나. 더는 상황 악화로 이어지지 말자는 정 회장의 이야기도 있지 않았나. 진상 조사단은 꾸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만약 징계를 주라고 하면 선수 선발을 하지 않는 것이 곧 징계 아닌가”라며 정 회장의 설명과 같은 시각의 답을 던졌다.
말끔하게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축구협회의 해결 의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상대하는 관계자들이다. 황 감독 등 지도자들의 부담은 훨씬 커졌다. 사우디아라비아 담맘에 가서 미리 4월 카타르 도하에서 예정된 2024 파리 하계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리허설이 아닌 A대표팀 수습이라는 난제를 더 우선해야 한다.
만약 최종예선을 그르치면 국민적 비판은 황 감독의 몫이다. 정 위원장이 “사퇴하겠다”라고 했지만, 비상근직의 사퇴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여자 핸드볼 대표팀을 제외한 나머지 종목은 올림픽 본선행에 실패했다. 유일하게 U-23 남자 대표팀이 남아 있다. 메달 획득에 성공하면 병역 혜택에 따라 유럽 진출을 통한 선진 축구 경험과 기량 성장으로 한국 축구 역량 강화라는 기대 충족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더 기대감, 간절함이 크다.
이미 A대표팀을 둘러싼 구조는 정상적이지 않다. ‘유능하다’라고 평가받지만 정 회장의 지시가 떨어지지 않으면 그 어떤 결정도 하지 못하고 선수들을 상전처럼 모시고 있는 실무 직원들의 고통이 반복될 수 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해소하지 못했던 구조적 문제가 이번에도 그대로 이어진 셈이다.
여론의 방향만 바뀌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익명을 강력하게 원한 한 실무 직원은 “지금 축구협회 수뇌부가 외부 여론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태도와 같아 보인다. 지난해 3월 승부조작범 사면 사태도 그랬고 이번에도 감독 선임 문제로 방향이 바뀌니까 정 회장에 대한 비판이 슬쩍 가려지고 있지 않나”라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스포츠의 생리상 K리그가 시작해 내용과 결과가 나오면 그쪽으로 또 방향이 쏠릴 것이고 다른 종목에서 대형 이벤트가 벌어지면 역시 시선을 뺏길 것이다. 황 감독이 누구를 선발할 것인가로 또 팬들의 관심이 모일 것 아닌가”라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 잔머리를 굴리는 것에 혀를 끌끌 찼다.
그나마 팬들이 시위 트럭을 활용해 의사 표현을 하고 3월 2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예정된 태국전 보이콧을 거론하는 등 냉철한 관심을 보여 K리그 감독 빼가기는 막았다. 하지만, 클린스만 위약금 지급 방식 문제와 대표팀 내분 진상 조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롯이 정 회장이 받아야 할 것들이다.
정 회장은 사퇴론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선거로 당선된 정 회장 입장에서는 규정을 제시하며 자진 사퇴의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태도를 노출했다. 특히 정치권에서 정 회장의 사퇴 이야기를 꺼낼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의 시각에서는 정치 간섭으로 볼 시각도 상존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월드컵 예선 승점 삭감이나 출전 자격 박탈 등의 징계를 받을 사안이다.
만약 정부 등에서 압력을 넣어서 정 회장이 사퇴라도 하고 FIFA가 징계를 내려 월드컵 본선 참가를 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후폭풍은 상상 이상이다. 이런 것까지 축구협회나 정 회장이 계산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적 여론과 압력이 있어도 FIFA라는 든든한 뒷배경이 있어 그대로 시간을 보내도 문제 없다.
선수들과 지도자를 앞세워 자연스럽게 넘어가려는 축구협회와 정 회장의 일 처리 방식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언젠가 외면받고 망한다는 것을 깊게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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