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베로비치(미 플로리다주), 김태우 기자] 2020년 시즌을 앞두고 꿈에도 그리던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광현(36‧SSG)은 시작부터 어마어마한 암초를 만났다. 환경이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쳤다. 미국도, 메이저리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껏 몸을 잘 만들어 팀의 스프링트레이닝이 열리는 미 플로리다주 주피터에 합류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악몽이 닥쳤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스프링트레이닝 중단을 선언했고, 사태가 호전되기는커녕 더 악화되자 메이저리그 개막도 미뤘다. 선수노조 파업을 제외하면 세계 2차 대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김광현도 발이 묶였다.
세인트루이스 스프링트레이닝 시설도 사실상 폐쇄됐다. 동료들은 각자의 자택으로 돌아갔다. 스프링트레이닝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빠져 나갔다. 김광현도 한국으로 돌아가 사태를 지켜보는 방법이 있었지만, 선뜻 집어 들기 어려운 카드였다고 회상한다. 당시 미국 행정부의 성향상 추후 미국 재입국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광현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외국 선수들 7명만 주피터에 남았다.
가뜩이나 낯선 환경에 시설에 문이 닫히니 기본적인 생활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언제쯤 이 사태가 풀릴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매일 사망자가 더 큰 규모로 불어났다. 더 큰 고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김광현의 곁에 있던 한 지도자가 있었다. 모든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들이 시설에서 철수했지만 오직 감독 하나가 주피터에 남았다. 김광현을 비롯한 7명의 선수들을 챙겼다. 누가 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렇게 했다.
감독은 선수들에게 “빨래할 것이 있으면 클럽하우스에 내놓고 가라. 내가 해 놓겠다”고 했다. 상점이 대거 문을 닫은 상황에서 스스로 “오늘 밥은 뭘 먹을까”라며 선수들을 챙겼다. 김광현은 “구단 직원들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감독이 집에도 가지 않고 우리를 돌봤다. 그런 감독은 처음 봤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그 감독은, 이제는 김하성(29)과 고우석(26)의 감독이 된 마이크 실트 샌디에이고 감독이다.
실트 감독은 선수 경력은 아마추어에서 끝났지만, 지도자 경력을 차근차근 쌓았다. 대학에서 야구 팀 감독을 하다 세인트루이스의 스카우트로 고용돼 구단과 인연을 맺었고, 2017년 팀의 3루 주루코치를 맡아 메이저리그 코칭스태프에 합류했다. 2018년에는 세인트루이스 벤치코치로 승격했고, 그해 7월 마이크 매시니 감독이 자진사퇴하자 감독대행을 맡았다. 감독대행으로 나름대로 좋은 모습을 선보여 정식 계약까지 한 케이스다. 메이저리그에서 선수 경력 없이 메이저리그 감독이 된 보기 드문 사례다.
실트 감독은 2021년까지 세인트루이스를 이끈 뒤 경질됐다. 김광현의 메이저리그 2년 생활을 함께 한 유일한 감독인 셈이다. 이후 샌디에이고의 수석 자문을 거쳐 2024년 시즌을 앞두고 정식 감독직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샌디에이고에는 김하성 고우석이 있어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도 이어졌다.
미 플로리다주 베로비치에서 열리고 있는 SSG 전지훈련에 참가 중인 김광현은 실트 감독의 인상에 대해 “기본적으로는 온화하고 선수들에 배려를 잘해주는 지도자다”면서 “김하성이나 고우석이나 적응하는 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사인을 내는 경우도도 많지는 않다”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2020년과 2021년 투수 운영이 다르기는 했지만, 이는 주로 선발 투수의 교체 시기와 관련된 것으로 두 선수와는 특별한 접점이 없기도 하다.
실트 감독도 두 한국인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김하성이야 팀의 확고부동한 주전 유격수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잰더 보가츠와 포지션을 바꿨다. 지난해 유격수를 봤던 올스타 선수인 보가츠를 2루로 보내고, 김하성에게 다시 유격수를 맡겼다. 물론 실트 감독과 프런트가 다 논의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김하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미 수비력에 대해서는 수차례 ‘극찬 세례’를 하기도 했다.
고우석의 기량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현재 샌디에이고는 팀의 마무리 투수를 아직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다. 스프링트레이닝과 시범경기에서 경쟁을 붙여본 뒤 그 결과를 확인하고 결정하겠다는 심산이다. 실트 감독은 고우석도 하나의 후보로 본다. 실트 감독은 “(고우석은) 긴박한 상황(하이 레버리지 상황)을 많이 경험했다. 이건 누구나 따라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 구단은 그 경험을 좋게 평가하고, 또 경기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신뢰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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