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인천공항, 이성필 기자] 지난해 9월 영국 뉴캐슬, 웨일스와의 평가전을 마치고 뉴캐슬 축구대표팀 숙소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잠시 만나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에 대한 부정 여론에 대해 질문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축구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 3월 A매치 2연전에서 콜롬비아에 2-2 무승부, 우루과이에 1-2로 졌다. 그나마 클린스만 감독이 뽑은 것이 아닌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 선수들이 대다수였고 막 출발하는 시점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6월 페루에 0-1 패배, 엘살바도르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자 부임 초 “1-0으로 승리하는 것보다 4-3으로 이기는 것을 더 선호한다”라며 공격 축구를 원한다는 주장이 무색해졌다. 무슨 내용으로 하는 경기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렇게 나쁜 흐름으로 9월 웨일스와의 영국 원정 첫 경기가 열렸고 0-0 무승부를 거뒀다. 한숨 돌리기는 했지만, 웨일스가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준 것도 아님에도 수비 공략법을 보여주지 못했다. 팬들은 클린스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전술이나 전략이 있는 지도자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했다.
특히 국내에서 머무르는 것보다 미국 캘리포니아 자택으로 돌아가서 스포츠 전문매체 이에스피엔(ESPN) 패널 활동에 열중한 것은 비판 여론에 불을 붙였다. 역대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감독이나 다른 국가의 감독이 재임 중 특정 방송사 패널로 나서 각종 축구 현안에 대해 떠드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야말로 생경한 상황이었다. 이미 대표팀 재임 전 계약한 활동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고 축구협회도 말리지 못하기도 했고 하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정 회장에게 클린스만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아직 대표팀 맡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지도자다. 조금 기다려주는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답이 돌아왔다. 즉 팀이 새롭게 만들어지기를 시간을 갖고 기다려 달라는 뜻이었다.
개별 활동을 막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딱히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즉답을 피했다는 표현이 딱 맞다. 당시만 하더라도 4년이라는 과정을 같이 가면서 빌드업에 기반한 안정 지향적인 축구의 틀을 구축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사례가 있었기에 클린스만도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하게 구축하며 대표팀에 녹이기를 기대한 부분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카디프에서 경기를 치르고 런던으로 이동하기 전 회복 훈련에서 첼시와 바이에른 뮌헨 전설끼리의 올스타전 참석 논란이 벌어졌다. 첼시 홈구장 스탬포드 브릿지와 대표팀 훈련장은 차량으로 30분이면 이동 가능했다. 국내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은 카디프에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대표팀 지휘 중 다른 행사 참석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황당해 현지에서 취재진이 “제발 가지 말라고 전달해달라. 국내 여론이 너무 좋지 않다. 지금 가는 순간 끝이다”라며 애원(?)을 해야 했고 영향력은 딱히 없었고 전달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가지 않는 것으로 정리됐다.
적어도 클린스만은 소위 유명세는 타고났다. 사우디가 제공, 런던에서 뉴캐슬로 이동한 전세기에서도 극빈한 대접을 받았다. 승무원이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썼고 숙소든 어디에서도 ‘셀럽’의 지위를 누렸다. 여기저기서 사인 요청도 끊이지 않았다. 이번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도 타국 기자들이 독일 대표팀 시절의 클린스만 유니폼을 가져와 사인을 받는 등 동경하는 모습을 연출해 줬으니 스스로 더 유명하다 느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뉴캐슬에서 사우디전을 1-0으로 승리한 뒤에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고 유럽파 확인이라는 명분 아래 유럽에 머무는 것이 또 논란이 됐다. 역시 취재진이 대표팀 관계자를 통해 “제발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에는 들어가라고 해달라. 다시 나오더라도 꼭 들어가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해 주기를 부탁한다”라고 읍소했다.
어쨌든 ‘코칭스태프와의 회의를 통해 한국으로 귀국한다’라는 입장이 어렵게 도출됐다. 대표팀 감독이 A매치 2연전을 그것도 원정으로 치렀다면 큰일이 있지 않은 이상 돌아와서 리뷰하는 것이 절차지만, 오해만 더 키웠고 여론은 역시 나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축구협회 임원 누구도 클린스만의 행동을 제어하지 못했다.
규정상 할 수가 없었다. 이미 김판곤 전 축구대표팀 감독선임위원장(현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 시절 위원장의 자격을 ‘자문한다’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현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위원장이 무슨 말을 한다고 영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도 뉴캐슬 클럽하우스에서 열렸던 대표팀 훈련에서는 구경꾼 신세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기자는 같은 항공사의 다른 도시 출발 항공기를 타고 귀국했지만, 대표팀이 타고 왔던 항공기가 먼저 도착해 옆 수하물 벨트에서 선수들과 스태프가 짐을 빼고 있었다. 클린스만은 일부 여행객의 사인 요구에 응대한 뒤 그 장면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혼자 있는 그의 옆으로 가서 “입국장을 나가서 (취재진과)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라고 물었더니 “당신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해서 오지 않았나.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했더니 농담으로라도 던지고 2연전을 총평하겠다고 한다. 나중에 기사를 확인하니 실제로 같은 말을 건넸다.
일련의 상황으로도 클린스만은 자기 태도를 바꿀 생각은 거의 없어 보인다. 아시안컵을 4강에서 끝내고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해서도 상황 인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두 번 만난 요르단에 자신의 전략, 전술 대응력 미진함이 다 나왔음에도 더 여유가 넘쳤다.
사퇴 여론이 크다는 지적에 “이 팀을 이끌고 있어서 정말 행복하게 생각한다. 요르단을 만나기 전까지 결과를 가져오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요르단이 훨씬 좋은 팀이었고 진출할 자격이 된다”라며 동떨어진 상황 인식만 전했다. 요르단에 최악의 경기를 한 것은 그의 머릿속에 없이 상대 존중이었다. “한국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라는 요르단 감독의 말을 듣긴 들었을까.
3월 말 예정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3, 4차전 태국 홈, 원정 경기를 준비하겠다며 정몽규 회장과도 현지에서 대화를 나눴다고 “당장 코앞에 다가온 태국과의 월드컵 예선 2연전을 어떻게 준비할지 이야기도 나눴다. 앞으로 다가올 예선에서 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준비 기간 사이 클린스만 감독은 자택에서 쉬고 유럽에서 선수들을 점검하고 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온전한 점검인지 아니면 개인 사업에 선수들의 점검을 얹힌 것인지는 알기 어렵지만, 어차피 개별 활동을 하면 현지 언론에서 모두 자연스럽게 다뤄준다는 점에서 드러나게 된다.
자선사업도 하고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의 경기력이나 해리 케인(바이에른 뮌헨)의 득점력에 대해 평론하는 클린스만이다. 쉬는 기간 자신의 아시안컵에서 보인 능력을 비판했던 ESPN의 패널 활동을 또 할지도 모른다. 한국 대표팀 감독 활동으로도 24시간이 부족해야 하는데 집중력을 다른 곳에 분산시키면 이는 누구의 손해일까.
1년 동안 전술, 전략은 물론 외적인 문제로 시끄러웠던 감독을 계속 끌고 간다면 강력한 통제 외에는 답이 없지만, 그럴 인물은 축구협회 내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벤투 감독 시절 A매치를 치르고 나면 위원장 주재의 리뷰를 통한 반성과 보완을 했지만, 클린스만 체제에서 위원들까지 합세해 A매치를 되짚었다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한국 축구를 거친 외국인 감독들 중 클린스만 이상으로 유명했던 인물은 많다. 거스 히딩크부터 딕 아드보카트 등 세계 축구계에 족적을 남겼던 지도자가 많았다. 다만, 이들은 축구 그 자체에 열정을 쏟았을 뿐이다. 축구 외적인 것에는 거의 집중하지 않았다.
온갖 비판을 받아도 반응없는 무생물처럼 있는 축구협회, 정 회장은 클린스만 목에 방울을 달 수 있을까. 지금까지 상황에서 나올 대답은 “N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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