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에듀케이션 스타디움을 찾은 4만2000명이 넘는 사우디아라비아 서포터가 침묵했다.” – 일본 축구 매체 ‘풋볼존’.
64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에 도전하는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이 거둔 극적인 승리에 일본 매체들도 일제히 놀랍다는 반응을 쏟아 냈다.
한국은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 라이안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승부 차기 끝에 사우디아라비아를 4-2로 꺾고 8강에 올랐다.
0-1로 끌려가던 한국은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렸다. 10분이 주어진 추가 시간 중 9분이 흘렀을 때 조규성이 헤딩슛으로 굳게 닫혀 있던 사우디아라비아 골문을 열었다.
이어 연장전 30분을 지나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조현우가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 조현우는 사우디아라비아 3번 키커와 4번 키커가 찬 슈팅을 연달아 막아 냈다. 손흥민부터 김영권 조규성까지 모두 성공한 한국은 4번 키커 황희찬이 호쾌한 슈팅으로 네 번째 득점을 올리면서 경기를 끝냈다.
이날 경기가 열린 에듀케이션 스타디움은 사실상 사우디아라비아 홈 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회가 열리는 지리적 특성상 가까운 서아시아 국가 팬들이 이번 대회를 가득 메우고 있으며 우승 후보로 꼽히는 사우디아라비아 팬들은 그 중에서도 뜨거운 열기를 자랑한다. 이날 경기엔 실제로 4만2000명이 넘는 사우디아라비아 팬들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한국 팬들은 20명 남짓에 불과했다. 사우디아라비아 팬들은 경기 내내 사우디아라비아에 응원을, 한국엔 야유를 보냈다.
일본 축구 매체 게기사카는 한국의 승리를 “미라클 한국”이라고 치켜세웠다. 또 다른 일본 축구 매체 사커 다이제스트는 동점골을 넣은 조규성을 주목하며 “비판을 뒤집는 큰 일을 해냈다”고 칭찬했다.
서아시아 국가들의 일방적인 응원 때문인지 일본 팬들 역시 한국의 승리에 반색했다. 일본 역시 서아시아 국가들과 싸우기는 마찬가지. 조별리그에서 이라크에 졌고 16강전에선 바레인과 경기를 앞두고 있다. 사실상 서아시아 진영에서 거둔 같은 동아시아 라이벌인 한국의 승리가 통쾌하다는 반응이었다. 한 일본 팬은 “한국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침대 축구를 통쾌하게 격파했다”고 호평했다. 다른 일본 팬은 “사우디아라비아는 겁쟁이 집단이었다. 한국의 집념이라기도 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스스로 승리를 걷어찼다”고 꼬집기도 했다.
서아시아권 소식을 다루는 아랍 뉴스는 “후반 동점골과 승부차기로 아시안컵 꿈이 무너진 사우디아라비아의 상심”이라는 제목으로 이번 경기를 다뤘다.
매체는 “연장 30분 동안 이길 수 있는 팀은 한 팀(한국)뿐이었다. 녹색 옷을 입은 팀(사우디아라비아)는 아니었다. 활력이 넘치는 한국은 승자가 되기 위해 전진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는 무승부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꼬집었다.
프랑스 매체 프랑스24는 두 차례 선방으로 한국에 승부차기 승리를 안긴 골키퍼 조현우를 두고 “후보 골키퍼 조현우가 한국을 아시안컵 8강으로 이끌었다”고 극찬했다.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공식 기자회견에 등장한 조현우는 “(클린스만) 감독님 말씀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좋은 결과로 이겨서 기분 좋다. 승부차기에서 막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가 이겨야 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승부차기 연습을 많이 했고 (쾨프케) 코치도 제게 믿음이 있었다. 제 판단이 다 옳다고 말했다. 덕분에 잘 판단해서 선방이 나왔다. 서로를 믿었다”고 전했다.
이번 대회에서 조현우는 김승규를 받치는 후보 골키퍼였다. 김승규(알 샤밥)가 바레인전을 마치고 훈련에서 무릎 인대 파열 부상으로 귀국해 조현우가 주전 골키퍼로 나서게 됐다. 요르단에 2-2, 말레이시아에 3-3으로 비기는 과정에 실점이 많아 우려를 샀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8강전에서 영웅으로 올라섰다.
조현우는 “개인적으로 지나간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 다가올 준비를 계속 했다. 골을 내주지 않으면 (동료들이) 득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실점했지만 끝까지 믿었고 골이 나왔다. 그래서 승리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만치니 감독을 칭찬하는 말로 입을 열었다. “지난해 9월에 뉴캐슬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친선경기를 했다. 그 때 만치니가 부임했다. 짦은 기간에 얼마나 팀을 발전시켰는지 놀랐다. 강팀으로 달라졌다. 어려운 경기를 예상했다. 어렵고 경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다고 예상했다. 전반에는 원하는 플레이를 하지 못했다. 전반에는 사우디가 나았다. 후반전에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다. 후반전에 더 좋은 부분들이 많았다. 득점 찬스는 많았다. 사우디도 많았다. 얼마나 어려운 경기였는지를 보여주었다. 승부차기까지 가는 하루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준비했다. 조현우가 좋은 선방을 보여주었다. 오늘 경기 대비했다. 다음 라운드에 진출해서 기쁘다. 잘 준비해서 좋은 결과 가져오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동점골로 영웅이 된 조규성은 “(이)강인이의 크로스를 받았을 때 ‘됐다’고 싶었는데, 그게 아쉽게 골대를 강타했다. 그 다음, (설)영우의 크로스를 받았을 땐 ‘골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교체 투입 당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들어갔기 때문에 무조건 골을 넣겠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며 ‘감정이 올라왔을 것 같다’는 말엔 “올라왔다기 보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갔지”라는 생각을 했다. 훈련에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 좋았다. 내면에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하다 보니 집중이 된 것 같아서 좋았다”고 답했다.
또 응원석에서 사우디 응원가가 커서 선수들이 신경썼을 것 같았다는 질문에 “솔직히 사우디 홈 경기장인줄 알았다”며 “그렇다고 저희 팬 분들 응원이나 함성 소리가 안 들렸던 것이 아니다. 거기에서 힘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조규성의 동점골을 도운 측면 수비수 설영우는 “개인적으로 이 자리는 너무 소중한 자리다.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절대 놓칠 수 없다. 힘들어도 주어진 역할을 받는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극적으로 16강을 통과한 한국은 8강에서 호주와 4강 진출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 호주는 16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4-0 대승을 거두고 8강에 올랐다.
클린스만 감독은 “약속은 하지 않는다. 축구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당연한 것은 없다. 우승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대회에 나서겠다. 수준높은 팀들과 상대한다. 그들 상대로 우승을 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국이 우승을 한 지 너무 오래됐다. 팀의 자질, 선수들을 보면 충분히 우승 가능하다. 좋은 결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 대회를 통해 많이 배우고 있다. 얼마나 힘든지 잘 느끼고 있다. 중동팀들의 장-단점, 동남아 팀들의 장단점을 알게 됐다. 쉽지 않겠지만 목표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8강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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