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장하준 기자] 카드 관리는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5일(한국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023 아시안컵 E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말레이시아와 3-3 무승부를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조별리그 1승2무(승점 5)라는 성적으로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이번 대회 내내 화두가 되고 있는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카드 관리’다. 한국은 지난 15일에 열렸던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전에서 ‘무더기 경고’를 받았다. 이어서 요르단전과 말레이시아전에서도 경고가 나오며 손흥민과 김민재, 이기제, 박용우, 이재성, 황인범, 조규성, 오현규까지 총 8명의 선수가 ‘경고 트러블’에 걸려 있다.
AFC의 규정상 다른 2경기에서 경고 한 장씩을 받으면 바로 이어지는 다음 경기에 나설 수 없다. 누적된 경고는 4강에 진출해야 소멸한다.
이러한 상황에 따라, 한국은 말레이시아전에서 주축 선수들이 경고를 받지 않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소극적인 경기 운영은 오히려 독이 됐고, 말레이시아는 그 틈을 노려 한국을 완벽히 공략했다.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면 카드 관리는 필수다. 주축 선수가 경고 누적으로 중요한 경기에 결장한다면, 그 팀은 치명상을 입기 마련이다. 덕분에 한국 선수들은 카드 관리에 집중했고, 그 결과 경고 누적으로 16강전에 결장하는 선수는 없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전을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있다. 지금 한국은 카드 관리를 최우선으로 신경 써야 할 팀이 아니었다.
말레이시아전은 그야말로 최악의 졸전이었다. 말레이시아는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에 머물러 있는 팀으로 한국보다 무려 100계단 이상 낮은 위치에 있다. 이처럼 한국은 말레이시아에 비해 전력상 몇 수 위에 있는 팀이었고, 무승부라는 결과를 예측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이며 충격적인 결과를 낳았다.
자연스레 한국은 지금 ‘경고 트러블’이라는 미래를 걱정해야 할 팀이 아니다. 현재 경고를 받은 선수들이 16강전에 경고를 받는다면 8강전에 나설 수 없다. 특히 핵심 멤버인 손흥민 혹은 김민재가 8강전에 뛰지 못한다면, 한국 입장에선 매우 치명적일 것이다.
그러나 ‘경고 트러블’에 대한 걱정은 뒷순위로 밀어둬야 한다. 지금의 한국은 우승은커녕, 8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팀이기 때문이다.
만약 손흥민과 김민재가 경고를 받고 8강전에 나설 수 없다 하더라도 16강전에서 사우디를 잡지 못한다면 두 사람의 경고 누적은 무의미하다. 토너먼트에서 패배할 시, 곧바로 짐을 싸야 한다.
그렇기에 한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장 눈앞에 있는 경기에 승리하는 것이다. 카드 관리에 신경 쓰다 일찌감치 대회를 마무리할 수도 있다.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우승에 가까운 팀이었다면 얘기가 다르다. 영리한 카드 관리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암울했다. 손흥민과 이강인, 김민재 등의 핵심 멤버들이 전원 출전했음에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다. 축구 통계 매체 ‘옵타’는 아시안컵 16강 대진이 결정된 직후, 조별리그 경기력을 반영해 팀별 우승 확률을 새로 공개했다. 한국은 일본과 카타르, 호주, 이란에 이어 우승 확률 11%로 책정되며 5위에 머물렀다. 대회 직전 우승 확률 2위를 기록했던 것과 상반된 확률이다.
결국 한국은 영리하게 카드 관리를 할 여유가 없다. 절박한 처지가 됐다. 핵심 멤버가 경고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16강전에서 사우디와 맞서 싸워 이겨야 한다. 말레이시아전처럼 경고를 피하기 위해 소극적인 경기 운영을 한다면 8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카드 트러블’에 대한 대책은 승리한 뒤에 세워야 한다. 8강에 진출해야 카드 관리에 대한 모든 걱정이 유의미하다.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우승 후보에서 밀려난 한국에 필요한 것은 ‘영리함’이 아닌, ‘절박함’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