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고 16강 진출 성과를 이뤄 냈던 파울루 벤투 감독이 아랍에미레이트를 아시안컵 토너먼트로 올려놓았다.
UAE는 24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C조 3차전에서 이란에 1-2로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UAE는 이날 패배에도 불구하고 승점 4점과 함께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A조 2위인 타지키스탄과 16강에서 경기한다. UAE는 1차전에서 홍콩을 3-1로 꺾은 뒤 2차전에서 팔레스타인과 1-1로 비기고 이날 3차전에 나섰다.
UAE가 16강에 오르는 과정은 흥미로웠다. 같은 시간 도하에서 열린 C조 경기에서 팔레스타인이 홍콩을 3-0으로 꺾고 UAE와 같은 승점을 4점으로 쌓았다.
이번 대회는 승점이 같으면 승자승과 득실차, 페어플레이 점수 순서로 순위를 가린다. UAE는 팔레스타인과 1-1로 비겼기 때문에 승점이 같아졌을 때 득실 차를 따져야 했다. UAE가 이란에 0-2로 끌려가며 득실 차가 0이 됐는데, 팔레스타인이 후반 60분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켜 득실 차를 UAE와 같은 0으로 쌓았다. 이에 따라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앞선 팔레스타인이 UAE를 끌어내리고 C조 2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13분이 주어진 후반 추가 시간에 상황이 바뀌었다. 후반 추가시간 2분에 UAE가 이란 골망을 흔들었다. UAE는 득실 차를 0에서 +1로 만들어 팔레스타인을 밀어 내고 다시 2위로 올라갔다.
이번 대회는 각 조 상위 두 팀과 함께 3위 팀끼리 순위를 가려 상위 4팀이 16강에 오른다. 3위 팀끼리 경쟁에서 승점 4점인 팀이 1위였기 때문에 UAE는 이날 경기에서 지더라도 조 3위로 16강에 오를 것이 확실시됐다.
하지만 16강 상대가 바뀌었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C조 3위는 16강에서 B조 1위인 호주 또는 A조를 1위로 통과한 개최국 카타르와 만난다. 두 팀 모두 이번 대회 우승 후보로 꼽힌다. 반면 C조 2위가 만나는 타지키스탄은 이번 대회가 첫 번째 본선이다.
이날 경기는 벤투 감독이 처한 상황도 흥미로웠다. 벤투 감독은 팔레스타인과 2차전에서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해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공교롭게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가나전에서 퇴장당하는 바람에 포르투갈전을 관중석에서 바라봤다.
그런에 이날 경기가 열린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이 포르투갈전 경기장이었다. 한국은 당시에도 후반 추가 시간에 터진 황희찬의 역전골에 힘입어 포르투갈을 2-1로 꺾고 극적으로 16강에 올랐다. 장소도, 상황도 비슷한 이날 경기였다.
벤투 감독은 이날 경기를 하루 앞둔 22일 도하 메인 미디어 센터(MMC)에서 진행된 공식 기자회견에서 “지난 팔레스타인전은 어려운 경기였다. 특히 퇴장 이후 한 명 없이 뛰었다. 당연히 이번엔 다른 경기가 될 것이다. 아주 아주 좋은 팀과 상대하는 전략을 준비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이란은 우리 조에서 가장 강한 팀이다. 또 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강팀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최대한 우리의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라고 했다.
계속해서 이란이 갖고 있는 전력을 평가해달라는 말에 “앞서 말했듯 이란은 아주 뛰어난 팀이다. 최근 4~5년 간 이란과 세 차례 정도 경기를 치를 기회가 있었다. 공식전과 두 번과 친선전 한 번이었다. 이란은 아주 뛰어난 선수들과 베테랑이 많은 팀이다. 몇몇 선수는 높은 수준의 무대를 누비고 있다”고 답하며 “우리는 다양한 측면에서 아주 좋은 경기를 펼쳐야 한다. 좋은 결과를 내고 목표에 도달하려면 이란을 상대로 정말 잘 싸워야 한다. 몇몇 순간에서는 겸손하기도 해야 한다. 승점 3점을 위해 싸우겠다”라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한 경기 한 경기,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 뿐이다. 물론 팬들과 미디어가 기대하는 건 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통제할 순 없다. 우리가 뭐 우승을 얼마나 많이 한 팀인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기대하는 건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을 상대로 승점 3점을 챙기겠다고 선언한 벤투 감독은 5-4-1 전형으로 이란에 맞섰다. 이란과 전력 차이가 나는 만큼 수비를 굳히고 역습 한 방으로 득점을 노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란은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했는 데에도 불구하고 사다르 아즈문과 메흐디 타레미 등 주축 선수들을 선발로 내세웠다. 각각 AS로마(이탈리아)와 FC포르투(포르투갈)에서 뛰고 있는 두 선수는 이날 이란이 터뜨린 두 골을 모두 합작하며 높은 수준을 증명했다.
이란은 매세웠다. 5명을 배치한 UAE를 상대로도 경기 시작부터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었다. 오른쪽 측면을 뚫고 올린 날카로운 컷백을 UAE 수비가 가까스로 걷어냈다. 전반 6분엔 프리킥 기회에서 헤딩 슈팅까지 이어갔다. 3분 뒤엔 연이어 페널티박스 안으로 투입한 스루패스를 UAE 칼리드 에이사 골키퍼가 빠른 판단력으로 잘라 냈다.
UAE는 역습으로 이란에 반격했다. 전반 10분 중원에서 이란의 패스를 커트한 뒤 역습까지 이어갔다. 패스 세 번으로 최전방 공격수까지 이어가려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상대 골키퍼에게 걸렸다.
전반 17분 이란이 첫 번째 득점 기회를 잡았다. 왼쪽 측면에서 올린 코너킥이 아즈문 머리에 맞고 골대 위로 살짝 벗어났다. UAE 진영 간담을 서늘하게 할 슈팅이었다.
아즈문과 타레미를 앞세운 이란의 공격은 위협적이었다. 전반 23분 페널티박스 안으로 투입한 얼리 크로스가 수비 등 뒤로 침투하는 타레미에게 연결됐다. 타레미가 발에 맞혀 골키퍼가 빈 문전으로 공을 연결했으나 아즈문이 잡기 직전 UAE 수비가 걷어 냈다.
UAE를 쉴 새 없이 두드리던 이란은 전반 25분 만에 선제골을 넣었다. 아즈문과 타레미의 합작 품이었다. 중원에서 알리 골리자데가 전방으로 공을 연결했고 아즈문이 타레미를 향해 원터치 패스를 시도했다. 아즈문의 스루패스는 수비수 세 명을 지나 타레미의 발에 떨어졌고 타레미가 오른발 슈팅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쉬지 않고 UAE를 두드린 이란은 7분 뒤에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왼쪽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를 골리자데가 몸을 날려 다이빙 헤딩슛으로 연결해 UAE 골망을 흔들었다. 하지만 VAR 판독 결과 오프사이드로 취소됐다.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경기에 변수가 생겼다. 크로아티아 명문 디나모 자그레브에서 뛰고 있는 이란 측면 수비수 사데그 모하라미가 공을 다투다가 쓰러졌고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UAE는 후반 시작과 함께 위기를 맞았다. 수비에서 치명적인 실수가 나왔다. 이란의 스루패스를 수비수가 처리하다가 헛발질을 저질러 이란 공격으로 이어졌다. 타레미의 슈팅은 블록했으나 후속 공경기 계속됐다. 중거리 슈팅이 골대 옆으로 살짝 비껴갔다.
후반 5분엔 아즈문의 한 방이 UAE를 위협했다. 수비기 걷어낸 공을 아즈문이 가슴 트래핑한 뒤 오른발 강슛으로 연결했다.
수비를 단단히 굳히고 역습으로 일관하던 UAE에 기회가 찾아왔다. 후반 16분 VAR 판독 결과 페널티킥을 얻었다. 반칙을 저지른 이란 수비수 후세인 카나니는 대회 두 번째 경고를 받아 다음 경기 출장 정지가 확정됐다.
하지만 키커로 나선 알 나사시가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왼쪽 구석으로 낮게 깔아차려던 공이 이란 골키퍼에게 읽혀 실축이 됐다.
공교롭게도 페널티킥을 놓치자마자 추가골을 허용했다. 이란이 역습 한 방으로 점수 차이를 두 골로 벌렸다. 두 번째 골 역시 아즈문과 타레미가 만들었다. 이란 공격수 세 명과 UAE 수비수 네 명이 맞섰다. 아즈문이 수비 뒤로 내준 공을 타레미가 오른발 강슛으로 연결해 2-0을 만들었다.
폭발한 이란의 화력은 가라앉지 않았다. 두 번째 골을 터뜨린 지 1분도 지나지 않아 아즈문의 발끝에서 세 번째 골이 나왔다. 타레미의 스루패스를 아즈문이 뒷 공간을 파고들어 왼발 슈팅으로 UAE 골망을 갈랐다. 하지만 VAR 판독 결과 다시 오프사이드로 득점이 취소됐다. 후반 35분에도 이란의 골이 터졌다가 오프사이드로 없던 일이 됐다. UAE로선 천만다행이었다.
후반 40분 UAE가 또 결정적인 실점 위기를 넘겼다. 이번엔 아즈문의 슈팅이 골대 옆을 살짝 벗어났다.
UAE는 후반 추가 시간 오랜 만에 이란을 상대로 슈팅을 시도했다. 혼전 상황에서 따낸 공을 오른발 강슛으로 연결했으나 골키퍼 품에 안겼다.
팔레스타인이 홍콩에 3-0으로 앞서 UAE가 실시간 순위 3위로 내려앉아 있는 상황. 후반 추가 시간 2분이 지났을 때 UAE가 기다리던 득점이 터졌다. 왼쪽 측면 침투에 성공한 알 가사니가 오른발 슈팅을 반대편 골문에 꽂아넣었다. 이 골로 UAE는 다시 2위로 올라섰다. 페널티킥 실축을 단번에 만회하는 호쾌한 한 방이었다.
이후 득점 없이 두 경기가 마무리되면서 더 이상 순위는 바뀌지 않았다. UAE가 조 2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했고 팔레스타인 역시 조 3위 팀끼리 경쟁에서 실시간 순위 1위를 유지하며 16강 진출을 사실상 확정했다.
UAE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 후보보다는 다크호스로 분류되는 팀이다. 1996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준우승으로 역대 최고 성적을 갖고 있다. 2015년 호주 대회에선 3위, 그리고 자국에서 열린 직전 대회에선 준결승까지 올라갔다.
UAE는 이번 대회에 이어 2026년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본선 진출을 목표로 벤투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지난 2월 아르헨티나 출신 로돌포 아루아바레나(아르헨티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UAE는 14경기에서 4승 3무 7패로 고전하면서, 결별했고 새로운 사령탑을 물색하게 됐다.
벤투 감독은 지난해 7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우린 1월 대회(아시안컵)에 참가할 것이고, 월드컵을 위한 예선도 치러야 한다”며 “선택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다. 훌륭한 선수 선발을 위해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많은 경기를 봤다”며 “여기서 한 일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승리가 팬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고 자신했다.
지난 2월 아르헨티나 출신 로돌포 아루아바레나(아르헨티나)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긴 UAE는 14경기에서 4승 3무 7패로 고전하면서, 결별했고 새로운 사령탑을 물색하게 됐다.
UAE는 1990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1990 월드컵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지난 8개 월드컵을 지켜보면서 월드컵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벤투 감독은 “월드컵 예선은 야망을 갖고 있는 모든 팀이 통과해야 하는 단계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단계별 작업이 필요하다. UAE는 월드컵 본선에 한 차례 진출했는데, 예선 방식이 바뀌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벤투 감독은 한국 국가대표팀을 맡으면서 “단계별 작업” 강조한 바 있다. 좋지 않은 경기 결과에 비판 여론이 일어날 때도 “올바른 단계”로 가고 있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은 UAE를 상대로 역대 전적 14승 5무 2패로 크게 앞서 있다. 지난해 3월 두바이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10차전에서는 0-1로 졌다. 이미 한국이 본선 진출을 확정한 후라 큰 의미는 없었지만, 무패 진출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이란은 이날 경기까지 조별리그 3연승으로 우승 후보 다운 위용을 뽐내며 C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홍콩은 3연패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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