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목표는 ‘일단 홈런 10개’…기록 넘어도 이승엽 감독님이 영원한 홈런왕”
“프로 20년 차…비결은 많은 걸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한 것”
(서울=연합뉴스) 하남직 기자 = 최정(36·SSG 랜더스)은 매년 “일단 홈런 10개를 채우자”라는 ‘소박한 목표’를 세운다.
프로 2년 차였던 2006년부터 19년 차였던 지난해까지 최정은 ’18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쳐 이 부문 한국프로야구 KBO리그 기록 보유자가 됐다.
2024년 1월 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도 최정은 “나는 홈런타자가 아니다. 일단 올해 목표는 홈런 10개를 빨리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3차례 홈런왕에 오르고, 개인 통산 홈런 2위를 달리는 최정이 홈런 10개를 채우는 건 KBO리그 팬들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2024년에는 최정이 홈런 10개를 채우는 순간, KBO리그 역사가 바뀐다.
2013년 6월 20일 이승엽 현 두산 베어스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 352번째 홈런을 치며 개인 통산 홈런 1위로 올라선 뒤 10년 넘게 이 부문 1위에는 이승엽 감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승엽 감독은 KBO리그에서 467홈런을 치고서 은퇴했다.
최정은 2023년까지 458홈런을 쳤다.
2024시즌 최정의 10번째 홈런이 나오면, ‘한국프로야구 상식’으로 통했던 ‘통산 최다 홈런 1위=이승엽’이라는 공식이 깨진다.
최정은 “이승엽 감독님은 일본에서 8시즌을 뛰었다. 이 감독님의 한·일 통산 홈런은 626개”라고 강조하며 “내게 이승엽 감독님은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 감독님의 KBO리그 기록을 내가 넘어서도 나를 포함한 모두가 ‘홈런왕은 이승엽’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19년 동안 꾸준히 활약하며 20년째인 2024년 대기록 달성을 앞둔 것은 기록에 무덤덤한 최정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최정은 “2023년에 이승엽 감독님의 득점 기록(1천355개)을 넘어 1위(현재 1천368개)에 올랐을 때는 ‘내가 이승엽 감독님의 기록을 넘어설 수도 있구나’라고 놀라기만 했다”며 “홈런 기록은 다르다. 이승엽 감독님과 함께 홈런 부문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데, 최다 홈런 기록에 근접했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는다. 468홈런 기록에 다가서면 또 어떤 감정을 느낄 지 나도 궁금하다”고 털어놨다.
◇ “프로 20년 차 최정, 나를 칭찬해”
기록이 화두에 오를 때는 “과한 평가”라고 몸을 낮추던 최정도 ’20년 차’라는 새로운 주제 앞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대견하다”며 웃었다.
최정은 2005년 SSG 전신 SK 와이번스 1차 지명으로 프로 무대에 섰고, 그해 5월 7일 인천에서 LG 트윈스를 상대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선발 출전했던 선수 중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선수는 최정, 단 한 명뿐이다.
해당 경기 SK 선발 라인업은 1번 조원우 현 SSG 벤치 코치, 2번 이진영 현 삼성 코치, 3번 박재홍 현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4번 김재현 현 SSG 단장, 5번 정경배 현 한화 이글스 수석코치, 6번 김기태 전 kt wiz 2군 감독, 7번 박경완 현 LG 코치, 8번 최정, 9번 김민재 현 롯데 자이언츠 수석코치였다.
최정과 상대한 LG 선발 투수는 최원호 현 한화 감독이었다.
1군 데뷔전 라인업을 떠올리며 “감독님, 수석급 코치님들이네”라고 추억에 잠겼던 최정은 “1군 데뷔한 날 나는 왼쪽 타석에 섰다”며 “프로 입단 후 2군에서 스위치히터를 시험했고, 결과가 좋아서 1군에 올라왔다. 그날 선발이 오른손 최원호 감독님이어서 왼쪽 타석에서 공격했는데, 범타가 됐다. 이후 2007년, 2008년에도 스위치히터에 도전한 적이 있는데, 결국엔 실패했다”고 비화를 전했다.
최정은 야구 인생에서 ‘여러 번의 작은 실패’를 반복했다. 작은 실패가 좋은 비료가 되어 달콤한 열매가 되는 것도 체험했다.
최정은 “스위치히터 도전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라며 “잠수함 투수를 공략하기 위해 스위치히터에 도전했다. 결국 스위치히터가 되지 못했지만, 그때 많이 고민한 덕에 잠수함 투수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사라졌다. 20년째 프로에서 뛰는 것도, 많은 걸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3년 최정의 잠수함 투수 상대 타율은 0.310이었다.
스위치히터가 되지는 못했지만, 모든 유형의 투수 공을 잘 치는 최정은 KBO리그 오른손 타자 중 가장 많은 홈런을 치고, 가장 많은 타점(1천454개·전체 3위)을 올렸다. 득점(1천368개)은 이미 KBO리그 전체 1위다.
최정은 “내 통산 기록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오늘 상대해야 할 투수와의 기록을 더 자세히 살핀다”며 “통산 홈런 기록은 10개가 남았다는 걸 이미 알아버렸지만, 다른 기록들은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아, 내가 달성했구나’라고 혼자 흐뭇해하고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주위의 칭찬에는 쑥스러워하지만, 최정도 19년의 프로 생활을 잘 보내고 20년 차가 된 자신은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최정은 “20년 차라는 타이틀은 내게도 특별하다. 나 자신을 칭찬한 적이 별로 없는데 올해를 시작하면서는 ‘고생했다. 잘 버텼다. 조금만 힘내자’라고 격려하고 싶더라”고 씩 웃었다.
◇ “대형 계약한 후배들 보며 질투도 하지만…”
2024시즌을 마치면 최정은 개인 세 번째로 자유계약선수(FA) 권리를 행사한다.
최정은 2015년 FA 시장에서 SK와 4년 86억원에 잔류 계약을 했고, 2019년에는 6년 106억원의 조건에 도장을 찍었다.
두 번 모두 ‘대형 FA 계약’으로 평가받았지만, 지나고 보니 ‘염가 계약’에 가까웠다.
SSG 팬들 사이에서도 “최정이 손해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정은 2015년부터 2023년까지 1천124경기에 출전해 타율 0.283, 290홈런, 820타점, OPS 0.956을 올렸다. 이 기간 홈런, 타점, OPS 부문 모두 1위다.
최정은 “당시 구단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주셨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팬들 사이에서 스토브리그 때마다 ‘최정은 싸게 계약했다’는 말이 나온다고 하던데, ‘먹튀’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후배들이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때는 질투도 하고, 배도 아프다”고 농담을 섞어 말했다.
150억원대 계약을 한 다른 선수를 보며 느낀 최정의 질투심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최정은 “내게 또 FA 계약을 할 기회가 온 게 신기하다”며 “2024시즌에도 건강하게, 좋은 성적을 내고 ‘대어급 FA’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내 목표가 ‘은퇴할 때까지 30대 초반의 신체 나이로, 3루수로 뛰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그렇게 나를 바라볼 수 있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2023시즌 종료 뒤 개인 훈련을 하다가 12월 말 가족 여행을 하며 피로를 푼 최정은 2일부터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2024시즌을 대비한 개인 훈련을 재개한다.
jiks79@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