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의 샌프란시스코 담당기자 마리아 과르다도는 202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신인상 후보가 대거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폈다. 꽤 재능 있는 젊은 선수들이 2023년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대거 데뷔했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샌프란시스코가 활용한 선수 중 총 12명이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른 ‘신인’들이었다. 그리고 대다수 선수들이 그 신인 자격을 2024년에도 유지한다. 기본적으로 후보들이 많은 만큼 샌프란시스코의 신인상 수상 전선에 파란 불이 켜졌다는 게 과르다도의 주장이다.
샌프란시스코의 마지막 신인상 수상자는 2010년 버스터 포지였다. 이후로는 수상자가 없었는데 2024년 그 명맥을 이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그 젊은 재능들의 선두 주자가 바로 이정후(26)다. MLB.com은 기사 메인 사진에 이정후를 삽입했는데, 가장 중심이 되는 이른바 ‘센터’에 배치를 해 높은 관심을 대변했다.
KBO리그 최고 타자로 군림했던 이정후는 2023년 시즌이 끝난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다. 2023년 시즌 초반의 부진, 그리고 발목 부상으로 후반기를 날린 것이 걸림돌로 여겨졌으나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신뢰는 굳건했다. 많은 구단들이 그런 악재를 무시하고 이정후에 관심을 보였으며 그 결과 예상보다 몸값이 치솟는 구조로 이어졌다.
이정후에 가장 오랜 기간, 또 깊은 관심을 보인 구단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는 6년 총액 1억1300만 달러(약 1468억 원)를 적어내 이정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인기 명문 구단 중 하나에 항상 ‘승리’에 굶주려 있는 구단이라는 점, 또 이정후를 위한 자리가 현시점에서는 무한하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도 적합한 팀으로 평가된다. 한편으로 아시아 문화에 낯설지 않은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 자체의 환경과 밥 멜빈 감독의 존재 또한 적응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신인상 후보도 단연 이정후다. 샌프란시스코는 포스팅 금액까지 포함하면 연간 2000만 달러 이상을 이정후에 투자했다. 이 어마어마한 투자 금액은 이정후의 권력으로 이어진다. 메이저리그에서는 고액 연봉자는 일단 쓰고 본다. 이정후에게도 메이저리그 적응기가 필요하겠지만, 충분한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는 당분간 벤치행은 걱정하지 않고 최선의 노력만 다하면 된다.
신인상의 기준은 당연히 성적이다. 누적 성적이 많이 쌓일수록 유리하다. 그런 측면에서 이정후는 상당한 메리트를 가지고 있다. 부상만 없다면 풀타임이 유력해 기록 쌓을 기회가 많다. 현재 메이저리그가 주목하는 대형 신인들의 경우 시즌 시작부터 같이 하지는 않고, 시즌 중간 어느 시점에 콜업될 것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이정후가 격차를 시작부터 벌릴 수 있다면 신인상도 꿈은 아니다.
물론 신인상 투표에 나서는 투표인단들은 한국이나 일본에서 프로 생활을 한 뒤 메이저리그에 온 선수들을 ‘순수 신인’으로 보지 않는 시각이 있다. 이미 경력이 있는 선수라 신인이라 지칭하기는 애매하다는 것이다. 은근한 ‘디스카운트’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신인 자격을 가지고 있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표를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KBO리그를 평정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류현진은 LA 다저스에 입단한 2013년 14승8패 평균자책점 3.00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거뒀다. 당시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에 이은 다저스의 3선발로 뛰어난 피칭을 했다. 그 결과 당시 내셔널리그 신인상 투표에서 4위에 올랐다. 당시 1위는 지금은 고인이 된 호세 페르난데스(마이애미), 2위는 야시엘 푸이그(LA 다저스), 3위는 셸비 밀러(세인트루이스)였다. 페르난데스야 워낙 압도적인 투구였고, 밀러보다는 류현진의 성적이 조금 나은 구석도 있었다. 다만 밀러는 순수한 신인이었다.
2015년 피츠버그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강정호는 한국인 역사상 신인상에 가장 근접한 위치까지 올라갔다. 시즌 126경기에서 타율 0.287, 15홈런, 58타점의 성적을 거뒀고 당시 투표에서 3위에 올랐다. 1위는 데뷔 당시부터 워낙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 2위는 맷 더피(샌프란시스코), 4위가 노아 신더가드(뉴욕 메츠)였다. 중고 신인이었음에도 그 값어치는 어느 정도 다 인정받은 순위였다.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이미 30대 중반에 이르렀던 오승환도 2016년 7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92의 뛰어난 성적을 거둔 뒤 신인상 투표에서 6위에 올랐다. 전혀 신인 같지 않은 이미지였지만 그래도 표를 받은 것이다. 당시에는 역시 일본에서 최고 레벨의 투수로 군림하다 미국에 온 마에다 겐타(당시 LA 다저스)가 투표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즈키 이치로나 오타니 쇼헤이와 같이 중고 신인 이미지가 있지만 워낙 좋은 성적으로 신인상에 오른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의 투표 결과는 선입견과 달리 중고 신인에 그렇게 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이정후와 야마모토 요시노부(LA 다저스)가 2024년 내셔널리그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떠오른 것은 이상하지 않다. 언제 콜업이 될지, 언제 튀어나올지 불투명한 다른 대형 신인들과 달리 두 선수는 일단 시즌 시작부터 출전 기회가 보장된 상수들이기 때문이다.
야마모토는 이미 오프시즌의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이정후보다도 더 화려하게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했다. LA 다저스와 12년 총액 3억2500만 달러(약 4222억 원)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에 계약했다. 이는 총액 기준으로 2020년 게릿 콜(뉴욕 양키스)이 세운 투수 최고액(3억2400만 달러)를 아슬아슬하게 경신하는 것이자, 21세기 최초 투수 10년 이상 계약이기도 했다.
야마모토에 대한 메이저리그의 평가는 매우 후하다. 작은 체구지만 이를 극복할 만한 장점을 여럿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장 이번 오프시즌 투수 클래스의 최고 선수로 뽑힌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다저스에서는 올해 타일러 글래스나우, 워커 뷸러 등과 함께 선발 로테이션을 이끌어갈 것으로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에이스감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투수 역대 최고액’을 쓴 야마모토의 투구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를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인 선수는 신인상 수상 사례도 제법 된다. 선구자격인 노모 히데오가 1995년 수상했고, 2000년 사사키 가즈히로, 2021년 스즈키 이치로, 2018년 오타니 쇼헤이까지 총 네 명의 선수가 신인상을 수상했다.
일단 컴퓨터의 예상에서는 야마모토가 약간 앞서간다. 통계 프로젝션인 ‘스티머’는 야마모토가 2024년 3.9의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 중이다. 이정후의 경우는 3.4의 WAR을 예상 중이다. 가격 대비로 보면 오히려 이정후가 더 나은 면도 있지만, 어쨌든 신인상 투표에 선수 몸값을 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 프로젝션의 경우 해외에서 온 선수들은 원래 리그의 수준과 메이저리그의 수준을 보정한 수치다. 프로젝션과 통계 전문가들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분석이기도 하다. 누가 빨리 리그에 적응하느냐의 싸움이 될 수 있는 격차다. 야마모토 신인상 대세론에 이정후가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 2015년 강정호를 뛰어넘는 한국인 역사상 첫 ‘2위 내 입성’도 가능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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