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신원철 기자] “저는 어립니다. 어리기 때문에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기량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후(25,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패기 넘치는 신인으로 돌아갔다. 16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입단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 자신의 강점을 직접 소개해달라는 질문을 받고 잠시 고민하더니 “나는 어리다”며 나이를 내세웠다. 만으로 25살, 데뷔 시즌 26살이 되는 만큼 KBO리그에서 얻은 성적이 최고점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진짜 전성기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이 엿보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지난 13일 이정후와 6년 1억 13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고, 15일 메디컬테스트까지 마친 뒤 영입을 확정했다. 6년 내내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이 있고, 4년 후에는 옵트아웃으로 다시 FA가 될 수 있는 조건이 붙었다. 금액뿐만 아니라 세부 조건까지 이정후에게 유리한 계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메이저리그에서 한 타석도 경험한 적 없는 이정후에게 1억 달러 이상의 대형 계약을 안긴 것이 도박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검증되지 않은 아시아 출신 선수라는 점 때문이다.
이정후는 포스팅을 거친 아시아 출신 타자 가운데 가장 큰 계약을 이끌어냈다. 최근 포스팅을 통해 아시아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타자 중에서 이정후만큼 많은 돈을 받은 사례가 없다. 스즈키 세이야(히로시마 카프→시카고 컵스)가 5년 8500만 달러, 요시다 마사타카(오릭스 버팔로즈→보스턴 레드삭스)가 5년 9000만 달러를 받으면서 이정후도 비슷한 수준, 혹은 그보다 조금 낮은 수준의 계약을 따낼 거라는 예상은 나왔다. 그런데 이정후는 그 예상을 뛰어넘었다.
결국 나이가 힘이었다.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를 기준으로 스즈키는 27살(1994년생), 요시다는 29살(1993년생)이었다. 이정후는 겨우 25살이다. 스스로 “나는 어리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정후에 앞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하성(히어로즈→샌디에이고 파드리스)도 같은 나이에 신인으로 새출발했다. 그리고 매년 성장곡선을 그리며 데뷔 후 3년째인 올해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프로 스포츠 선수, 특히 야구선수의 전성기는 26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것이 통계로도 증명이 됐다. 이정후는 자신의 최고 전성기를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맞이한다.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다”는 말 역시 사실인 셈이다.
보통의 메이저리거는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한 뒤 서비스타임을 채우고 나서야 FA 자격을 얻는다. 전성기에서 살짝 내림세일 때 FA 신분으로 시장의 평가를 받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한 살이라도 어린 선수가 각광을 받기 마련이다. 반대로 선수를 1년이라도 더 보유하기 위해 서비스타임을 늘리는 구단의 ‘꼼수’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KBO리그 최고의 선수이자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이하는 선수에게 1억 달러는 충분히 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후는 계약금 500만 달러와 첫 해 연봉 700만 달러를 받는다. 2025년 연봉은 1600만 달러, 2026~2027년 연봉은 2200만 달러다. 마지막 2년 2028~2029년에는 연봉 2050만 달러를 받게 된다. 연평균 수입은 현재 샌프란시스코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 가운데 1위다.
막연한 기대주가 아니라, 확실한 주전선수로 평가하고 이정후를 영입했다는 얘기다. 16일 입단 기자회견에 동석한 샌프란시스코 파르한 자이디 사장은 “이정후는 매일 출전하는 중견수”라고 선언했다. 올해는 외야수들을 플래툰으로 기용했지만 이정후에게는 내년 풀타임 주전을 맡기겠다며 달라진 팀 방침을 알렸다. 미국 매체들은 이정후를 1번타자 중견수로 예상하고 있다.
한편 이정후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인 것 같다. 새로운 투수, 환경, 야구장에 적응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항상 버스로 이동했지만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고 시차도 달라진다. 다 내가 적응해야 하는 과제라 생각한다.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를 잘 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미 앞선 메이저리거 선배들로부터 수많은 조언을 들었을 이정후다. 준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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