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2등의 품격을 위해서…”
KBO 골든글러브 시상식은 통상적으로 수상자 위주로 참석한다. 물론 후보자 모두 초대장을 받고, 참석할 권리가 있긴 하다. 그러나 굳이 자신의 수상이 유력하지 않다고 직감하는 순간, 굳이 ‘시상식 들러리’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대체로 그렇다.
KIA 타이거즈 유격수 박찬호(28, 120표, 41.2%)는 2023년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다. 오지환(LG 트윈스, 154표, 52.9%)에게 근소하게 밀렸다. 올해 골드글러브 최대 격전지가 유격수 부문이었다. 예상대로 대접전이었다.
그렇다고 박찬호가 수상을 확신한 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이미 지난달 27일 KBO 시상식에서 오지환과 유격수 수비상 공동수상 직후 자신이 오지환에게 밀릴 것이라고 냉정하게 예상했다. 그럼에도 박찬호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레드카펫에 섰다.
“2등의 품격을 위해서.” 박찬호의 첫 마디였다. 그는 “사실 올 생각이 없었는데 급하게 오게 됐다”라고 했다. 그러다 수상자가 되면 ‘불참자’가 돼 사진 한 장 남지 못하지만, 그만큼 박찬호는 ‘자기 객관화’가 잘 돼있다. 그게 발전의 동력이다.
박찬호는 “(오지환과 함께 골든글러브 레이스 거론)너무 좋다. 같이 언급된 게 몇 달 됐다. 나도 내가 생각하는 선수로 다가서고 있다. 지금도 자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라고 했다. 생애 첫 3할 타율을 쳤다. 자기 객관화가 ‘자기 비관’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선배 오지환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고, 자신도 과소평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지환으로부터 “멋있다”라는 말도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역대급 골든글러브 레이스는 ‘막을 내렸다’라고 말하면 좋겠는데, 박찬호도 사람인지라 솔직한 감정도 드러냈다. “늘 ‘쟤는 어디 안 다치나’라고 할 정도로 잘 안 다치는 선수였다”라고 했다.
인생이 마음 먹은대로 안 풀린다. 박찬호는 “야구가 잘 되니까 다치더라”고 했다. 9월12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전서 3유간 깊숙한 타구를 날린 뒤 1루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하다 왼손을 다쳤다. 이후 9월26일 창원 NC 다이노스전서 선발라인업에 돌아오기까지 2주간 정상 출전을 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박찬호가 다친 그날부터 KIA의 상승세가 하락세로 돌아섰다. 그리고 박찬호는 10월4일 수원 KT 위즈전서 사구에 척골 분쇄골절을 당하며 시즌아웃 판정을 받았다. 시즌 막판 약 1개월간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 게 KIA의 5강 이탈, 본인의 골든글러브 레이스 모두 결정적 악재가 된 건 사실이었다.
박찬호는 “안 다치면 얼마나 좋은 성적을 냈을까 싶다”라고 했다. KBO 시상식에선 안 다치고 계속 경기에 나갔다면 3할을 못 칠 수도 있었다고 겸손했지만, 역시 사람의 본심은 그렇지 않다. 누가 봐도 생애 최고의 시즌인데 시즌 막판 팀과 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에 다쳤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박찬호는 11일 생애 첫 골든글러브 시상식장 방문이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을 위한 동기부여의 시간이었다. “한번쯤 구경 와보고 싶었다. 받을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자리에 같이 언급된 선수로서 빛내면 좋을 것 같다. 시상식장 풍경이 궁금하다”라고 했다. KBO는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을 늘 멋지게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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