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빛났던 선수를 꼽으라면 양궁의 임시현, 펜싱의 오상욱을 빼 놓을 수 없다. 임시현은 금메달 3관왕, 오상욱은 2관왕. 성적 이외에도 여러 얘깃거리로 어느 연예인 부럽지 않을 관심을 모았다.
양궁과 펜싱은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언제나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서 국민들이 사랑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이른바 ‘인기 선수’들도 숱하게 나왔다.
■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스포츠에 펜싱과 양궁이…
그러나 두 종목 모두 프로 스포츠가 아니다. 국내 대회에 관중들이 많지 않다. 국제대회가 열려도 별로 다르지 않다.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양궁과 펜싱은 ‘인기 종목’일까 ‘비인기 종목’일까?
우리나라는 유난히도 스포츠에서 인기, 비인기 종목을 나눈다.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대한 학술 연구도 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까지 호소하는 선수들이 있을 정도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을 수 없는 현상이다. 그러니 양궁과 펜싱이 인기 종목인지 아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의 한 매체가 매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10개 스포츠’란 순위에서 펜싱 3위, 양궁 5위였다. 다른 매체의 같은 순위는 펜싱 9위, 양궁 10위. 우리가 많이 아는 어떤 종목도 그 순위 안에 없다.
‘흰 족제비 바지 속 숨기기’ ‘극한지에서 다림질하기’ ‘양 숫자 헤아리기’ ‘부인 둘러메고 달리기’ 등 듣도 보도 못한 종목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한 ‘가장 인기 없는 스포츠’ 순위에 펜싱과 양궁이 들어있다니….대한민국의 스포츠 상황을 감안하면 전혀 뜻밖이다.
“펜싱은 사람들이 옛날 귀족이나 허세 부리는 해적을 떠올리게 만든다.” “양궁은 중세시대에는 유명한 스포츠였다. 올림픽 때문에 어느 정도 인기는 있으나 제한적이다” 인기가 없는 이유들의 일부분이다. 펜싱과 양궁의 굴욕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역시 축구. 2위는 크리켓이다. 세계에 25억 명의 팬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협회가 있으며 22년의 월드컵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대표선수가 국내 선수보다 더 많을 정도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크리켓을 알며, 즐기겠는가? 전혀 인기 종목이 아니다.
■ 인기 종목, 비인기 종목 나누기가 필요한가?
이처럼 인기와 비인기 종목은 시대와 지역, 종족, 문화에 따라 다르다. 양궁, 펜싱, 크리켓의 경우를 보듯 극과 극이다. 그것이 스포츠다. 모든 스포츠에 구름 관중이 몰릴 수 없다. 누가 억지로 데려 갈 수 없다. 내가 끌려야 팬이 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스포츠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는 것은 원초적으로 불가능하다.
스포츠의 ‘인기’를 정의하는 것도 문제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것, 존경받는 것. 가장 많이 보는 것, 가장 많은 사람들이 즐겨 하는 것. 인기 종목을 정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기 종목은 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배드민턴도 애매하다. 배드민턴 역시 국제대회인 코리아오픈조차에서도 관중은 많지 않다. 그러나 안세영은 인기선수다. 취미로 즐기는 동호인 숫자는 무려 300만 명이라고 한다. 인기종목인가 비인기 종목인가?
선수는 자신의 신체 특성과 자질, 성격 등에 따라 종목을 선택한다. 국가가 지정해서 특정 종목을 강제하지 않는다. 육상의 경우 100M 선수가 400M 선수는 되기 어렵다. 남들이 보기엔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겨우(?) 300M 차이에도 가장 알맞은 선수가 확연하게 구별된다고 한다. 마음에 든다고 아무 종목이나 할 수 없는 것이 스포츠다. 아무리 인기가 많고 돈을 많이 버는 야구, 축구라도 내가 싫으면 그만이다. 나에게 맞지 않으면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인기 없는 종목도 올림픽이 있고 아시안 게임이 많은 보상을 해 준다. 평소에는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종목이라도 올림픽 등은 인기와 부, 명예를 가져다준다. 세상사 모든 것이 천차만별이듯 스포츠도 그렇다.
그러니 “인기로 먹고 산다”는 연예인이 아니라면 운동을 인기, 비인기 종목으로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굳이 왜 필요한가?
펜싱과 양궁의 순위를 매긴 매체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이다. 모든 것을 순위로 따지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행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미국 등의 유명 스포츠 매체에서 인기 종목, 비인기 종목을 굳이 구분해 비인기 종목 지원을 주장하는 경우를 본적이 없다. 선수들도 자신의 종목이 처한 힘든 현실을 얘기할 뿐이다. “비인기 종목 설움”을 호소하지 않는다.
덴마크의 양궁 컴파운드 스테판 한센은 한때 세계 1위를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다. 그러나 양궁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스포츠의 하나라는 냉엄한 현실을 반영하듯 덴마크는 프로팀 또는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실업팀이 없다. 선수로서의 안정성을 가지기 힘들다.
그래도 얀센은 양궁이 비인기 종목이라고 탓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돌며 상금을 챙기고 후원 계약금을 받아 생활한다. 우승을 하지 못하면 상금도 후원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 프로선수라고 말한다.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오로지 이겨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것이 내 직업”이라며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이루고 싶지만 신체적으로 충분한 수준을 달성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열정”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종목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가득하다. 자신이 선택한 ‘비인기 종목’에 대한 어떤 원망도 후회도 없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말하지 않는다.
학교 스포츠, 동아리, 동호회. 그런 방식으로 참여하고 즐기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면 이미 인기 스포츠요 인지 스포츠다. 애써 나누지 마라. 비인기 종목이라고 서러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부추기지 마라.
스포츠의 아름다움은 인기나 명성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함께 뭉치게 만드는 힘에 있다. 모든 스포츠가 인기 종목인 이유다.
◆손태규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매주 마이데일리를 통해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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