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영역 넓힌 대회…’e스포츠가 스포츠냐’ 질문에 페이커는 현답
‘가장 격한 춤’ 브레이킹은 스포츠·예술 사이 어딘가…이젠 올림픽으로
(항저우=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게임과 춤’이 정식으로 스포츠로 인정받은 역사적 이정표로 기록됐다.
이번 대회에서 e스포츠는 리그 오브 레전드(LoL)·배틀그라운드 모바일·FC온라인·스트리트 파이터 V·왕자영요·몽삼국·도타 2까지 7개 종목을 겨뤘다.
우리나라는 이중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따왔다.
스트리트 파이터 V에서 김관우, LoL에서 ‘페이커’ 이상혁이 속한 대표팀이 우승하며 e스포츠 강국다운 성과를 거뒀다.
직전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 시범 종목으로 도입된 e스포츠는 드디어 정식 종목이 됐다.
스포츠가 맞냐는 의구심 섞인 시선을 받는 e스포츠로서는 이번 대회에서 성공이 중요했다.
e스포츠의 본질은 ‘온라인 게임’이다.
스포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신체 단련이 없고, 현실이 아닌 가상 세계에서 경쟁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e스포츠’라는 용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학계·체육계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e스포츠를 극히 단순하게 보면, 기계 장치 안에 마련된 가상 세계의 아바타를 손가락 운동으로 조종해 겨루는 활동이다.
신체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정신적 한계와 고통을 극복하는 극기 등 전통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e스포츠를 스포츠라 부르기 어렵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규정의 적용을 받는 ‘공정한 환경’에서 갈고 닦은 전문 기술로 승자를 가려내는 경쟁의 연속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e스포츠는 각종 분야에서 신체적인 한계를 시험해온 종합 대회의 패러다임을 바꿀 가능성을 이번 대회에서 보여줬다.
특히 젊은 세대 등이 익숙해진 방식 대신 새로운 형태의 경쟁을 원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입장권이 가장 비싸고, 구하기 가장 어려운 종목이 e스포츠였다.
400위안(약 7만3천원)부터 시작하는 비싼 가격에도 많은 팬이 입장권을 구하고 싶어 해서 이번 아시안게임 종목 중 유일하게 복권 추첨 방식으로 입장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 최고 스타 이상혁은 이와 관련된 어려운 질문에 ‘현답’을 냈다.
이상혁은 지난달 30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e스포츠가 스포츠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스포츠가 주는 긍정적인 영향을 강조했다.
그는 “몸을 움직여서 활동하는 게 기존 스포츠 관념인데, 그보다 중요한 건 경기를 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분께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며 “금메달을 따는 모습이 많은 분께 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이킹은 e스포츠와 반대로 선수의 신체를 극단적으로 단련해야 하는 종목이다.
브레이킹도 이번 항저우 대회를 통해 아시안게임에 처음 도입됐다.
모태는 힙합이다. 1970년대 힙합 문화의 일부로 발명된 브레이킹의 시원은 길거리였다. 거리에서 댄스 배틀을 벌이는 문화가 제도화돼 스포츠의 영역까지 들어왔다.
기원이 이질적인 브레이킹이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정통 스포츠’다운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회전 기술이 핵심인 브레이킹은 가장 격한 춤으로 꼽힌다.
톱록(서서 움직이는 준비 동작), 다운록(손, 하체가 바닥에 닿은 상태에서 선보이는 스텝) 등을 통해 몸에 열을 낸 선수들은 자신만의 회전 기술 연계를 선보인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중력을 이겨내고 공중에서 몸을 돌리기 위한 신체의 출력이 필요하다.
프리즈(순간적으로 동작을 멈추는 기술), 에어트랙(팔과 다리를 모두 쭉 펴고 한 손으로만 바닥에 짚어 몸을 돌리는 기술) 등은 일반인의 운동능력으로는 시도조차 엄두를 낼 수 없다.
신체를 이용하는 특성만큼은 확실한 브레이킹이지만, e스포츠와는 ‘반대 맥락’에서 스포츠로서 지위를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문화의 영역에 있던 만큼 승리가 중요한 스포츠인지, 심미성을 좇는 예술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당사자인 선수들에게도 이런 혼란이 있었다.
김헌우(Wing)는 점수화가 이뤄지는 경쟁의 장에서도 예술을 입히려 했다.
김헌우는 지난 6일 예선을 마치고 “춤을 개발하면서 나만의 예술적인 동작을 많이 넣었다. 그게 스포츠 영역에서도 통할까 나도 궁금하다”고 말했다.
초대 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전설적 비보이’ 김홍열(Hong10)은 이상혁처럼 현명한 결론을 내놨다.
김홍열은 지난 7일 시상식을 마친 후 “스포츠와 예술, 둘 다 챙기는 게 내 목표”라며 “스포츠냐 예술이냐 여러 이야기가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두 개가 섞여서 하나가 된 게 브레이킹”이라고 말했다.
묘기 수준의 화려한 기술로 관중들의 눈을 사로잡은 브레이킹은 이제 올림픽으로 향한다.
브레이킹은 2024 파리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pual07@yna.co.kr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