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실패가 오늘을 만들었다.
KIA 내야수 박찬호(28)가 데뷔 9년만에 전성기에 들어섰다. 전형적인 대기만성 스타다. 올 시즌 101경기서 356타수 106안타 타율 0.298 2홈런 39타점 54득점 21도루 OPS 0.725 득점권타율 0.341이다. 2022시즌이 커리어하이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올해가 경력 최고의 시즌이다.
공수주 겸장 유격수로 거듭났다. 화려한 수비력에 내실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옛말이다. 김종국 감독이 바라던 기본적인 움직임에 충실한 수비수로 거듭났다. 이젠 거의 실수가 보이지 않는다. 주루야 예전부터 박찬호를 먹여 살린 주무기였다. 도루 이상으로 원 히트-투 베이스 혹은 재치 있는 주루에 능하다.
야구통계사이트 스탯티즈 기준 WAR 3.19로 리그 23위이자 유격수 리그 1위다. 타격 0.28, 도루 0.14, 주루 0.33, 수비 0.33 등 고른 수치다. KIA에선 3.92의 소크라테스 브리토에 이어 2위다. 24일 수원 KT전서도 결정적 득점과 결승타로 히어로가 됐다. 8월 들어 KIA 하이라이트 필름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선수다.
기본적으로 박찬호가 여기까지 달려온 건 본인의 연구와 노력 덕분이다. 2022시즌부터 달라질 조짐이 있었다. 왼 다리와 어깨가 히팅포인트에 가기 전에 열리는 악습을 완전히 고쳤다. 이젠 구종에 따라 히팅포인트를 조절하는 레벨로 진화했다는 평가다.
알고 보면 지도자들의 인내심도 한 몫 했다. 김종국 감독은 박찬호를 입단할 때부터 지켜봤다. 오랫동안 수비코치를 역임했으니, 박찬호를 직접 가르치며 호흡했다. 현역 시절 천부적인 수비 감각, 센스를 보여준 김종국 감독의 시야에 박찬호의 잠재력이 들어오지 않았을 리 없다.
감독 부임 후 일각에선 김도영을 주전 유격수로 써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박찬호의 유격수 수비력은 김도영 포함 팀에서 따라올 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다. 물론 김 감독이 박찬호에게 타격을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단 수비력을 믿고 꾸준히 기용한다는 믿음이 박찬호의 타격 발전에 중요한 동력이 된 건 분명하다. 선수 입장에서 매일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타격의 발전에 좋은 영향을 미칠 리 없다.
거슬러 올라가면 현역 시절 한국과 미국에서 타격으로 한 획을 그은 김기태 전 감독과 맷 윌리엄스 전 감독의 인내심도 재평가 받을 만하다. 두 전직 감독은 결국 KIA와 헤어질 때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타격 전문가답게 박찬호가 타격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꾸준히 기회를 줬다. 김 전 감독은 박찬호의 타격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특히 두 전직 감독이 재직하던 시절 박찬호는 한창 타격에서 벽에 부딪혔다. 윌리엄스 전 감독은 오프시즌에 이례적으로 박찬호에게 방망이를 잡지 않게 하고 체력훈련만 지시하는 등 박찬호의 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두 전직 감독이 재임 기간 다 잘 했던 건 아니다. 박찬호 타격 관련 시행착오도 많았다. 단, 지도자가 선수를 꾸준히 믿고 기용할 때, 그 사이 수많은 실패와 부작용, 그 부작용을 극복하는 과정을 인내하면 언젠가 열매를 따먹을 수 있다는 현실을 박찬호 사례가 일깨워준다. 물론 박찬호의 수비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박찬호가 지도자 잘 만나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전적으로 본인의 노력 덕분이다. 스토리가 넘쳐야 먹고 사는 KBO리그에 이런 선수는 많을수록 좋다. 단지 그 배경에 지도자들의 인내심도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숨어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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