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참 안 풀린다. 안 풀리는 팀은 이렇게까지 안 풀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팀이 LA 에인절스가 아닐까. 애초에도 희박했던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모두 사라졌다.
에인절스는 24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애너하임의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와 홈 맞대결 더블헤더 1차전에서 4-9로 패, 2차전에서 3-7로 무릎을 꿀으며 4연패의 늪에 빠지는 등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이날 에인절스에게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더블헤더에서 모두 패배한 것도, 4연패의 수렁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바로 ‘야구천재’ 오타니 쇼헤이의 부상 소식이었다. 오타니는 더블헤더 1차전에 2번 타자-선발 투수로 경기에 나섰는데, 1⅓이닝 동안 1볼넷 2탈삼진만을 기록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투구 내용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오타니는 1회 선두타자 TJ 프리들을 2루수 땅볼로 잡아낸 뒤 맷 맥클레인과 5구 승부 끝에 스플리터로 헛스윙 삼진을 솎아냈다. 그리고 엘리 데 라 크루즈 또한 6구째 스플리터로 삼진 처리하며 삼자범퇴 스타트를 끊었다. 오타니는 2회 선두타자 스펜서 스티어에게 볼넷을 내주며 이닝을 출발했지만, 후속타자 조이 보토를 유격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순항을 이어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크리스티안 엔카나시온-스트래드와 맞대결. 2B-2S에서 5구째를 던진 뒤 몸에 이상을 느낀 듯한 오타니는 더그아웃을 향해 시그널을 보냈다. 에인절스는 트레이너를 비롯, 필 네빈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가 오타니의 몸 상태를 체크했는데 코칭스태프는 더는 경기를 치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투수는 물론, 타석에서도 빠지면서 더블헤더 1차전을 마쳤다.
사실 경기 내용으로는 큰 문제점이 없었지만, 오타니의 상태는 평소와 조금 달랐다. 이는 ‘구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 100마일(약 161km)를 넘나드는 빠른 볼을 뿌리던 오타니의 이날 최고 구속은 94.4마일(약 152.9km)에 그쳤다. 최저 구속은 90.9마일(약 146.3km), 평균 구속은 93.1마일(약 150km)에 불과했다. 몸에 문제가 있음은 분명해 보였는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일본 ‘풀카운트’에 따르면 에인절스는 오타니가 갑작스럽게 마운드를 내려간 이유로 ‘팔의 피로’라고 밝혔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뒤 필 네빈 감독은 “오타니는 검진을 받고 있다. 2주 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것(피로)이 1회에 나왔다. 지금 밝힐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통증은 없지만, 팔의 불편함은 있다”고 밝혔고, 2차전이 끝난 뒤에는 충격적인 소식이 날아들었다.
‘풀카운트’에 의하면 페리 미나시안 단장은 더블헤더 2차전에서 패한 뒤 기자회견을 갖고 오타니의 상태를 직접 전했는데 “MRI를 찍어본 결과 팔꿈치 인대에 파열이 있다. 오타니는 더 이상 남은 경기에 등판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아무런 이상을 호소하지 않았는데, 오늘 교체 후 팔꿈치 부근에 통증이 있다고 하더라. 우리도 몰랐다. 단지 피로감이 있는 줄 알았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미나시안 단장은 “(1차전이 끝난 뒤) 팔꿈치 인대 파열을 알고 있었는데도 오타니는 두 번째 경기에 뛰었다. 그는 ‘뛰고 싶다’고 말했고, 프로다. 상태를 알면서도 뛰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며 “오늘(24일) 오타니는 미디어 대응은 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여기에 앉아 있겠다. 오늘 그와 우리에게 모두 힘든 날”이라고 말했다. 일단 수술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에인절스는 ‘크로스 체크’를 통해 오타니의 몸 상태를 확인해 본 뒤 추이를 보고 수술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에인절스를 넘어 오타니 입장에서는 두 번째 토미존 수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타니는 지난 2018년 6월 발꿈치 내측 측부 인대 쪽의 불편함으로 인해 한차례 부상자명단(IL)에 오른 뒤 9월 마운드로 돌아왔지만, 새로운 팔꿈치 인대 손상이 발견되면서 시즌이 끝난 뒤 10월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 한차례 수술만으로도 1년 이상이 공백기가 필요한 큰 수술인 만큼 오타니 입장에서 두 번째 수술은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다.
올해 에인절스는 참 안 풀리는 모양새다. 에인절스는 올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을 드높였다. 하지만 ‘간판타자’ 마이크 트라웃이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하면서 오타니에 대한 트레이드 문의를 받아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다시 팀 성적이 5할 이상의 승률로 복귀하자 입장을 번복, 오히려 즉시전력감 선수들을 품에 안으며 포스트시즌 진출의 열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에인절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날 오타니가 투수로는 시즌이 아웃됐는데, 최근 유구골 골절 부상에서 돌아온 트라웃마저 손목 부상으로 인해 다시 부상자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게다가 미국 야구통계사이트 ‘팬 그래프’에 따르면 에인절스는 24일 더블헤더를 치르기 전까지는 매우 희박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 확률이 ‘존재’는 했으나, 두 경기에서 모두 무릎을 꿇으면서 가을야구를 할 확률이 0%로 추락했다.
현재 상황은 에인절스와 FA(자유계약선수)를 앞둔 오타니에게 대형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금 관점을 다르게 본다면, 이미 포스트시즌 진출 가능성이 희박했던 에인절스 입장에서 큰 손해는 아니다. 오타니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포스트시즌 가능성은 애초에 희박했던 까닭이다. 엄밀히 보면 사실상 오타니 ‘개인’의 악재인 셈. 오히려 에인절스 입장에서는 ‘찬스’가 될 수 있다.
오타니는 2021시즌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MVP 타이틀을 손에 넣고, 지난 시즌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자신의 가치를 드높였다. 4억 달러는 물론 전례가 없는 5억, 6억 달러 이야기도 수차례 거론됐다. 하지만 투수에게는 치명적인 팔꿈치 인대 파열이라는 부상을 당한 가운데, ‘이도류’로 뛸 수 없는 오타니에게 엄청난 금액을 투자할 구단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고려해 보면, 이는 에인절스에게 기회다.
물론 타자로도 뛰어난 선수지만 ‘이도류’가 아닌 오타니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고, 그를 비교적 싼 금액에 영입하려는 구단들 사이에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않아도 되는 에인절스가 유리한 고지에 오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것은 뚜껑을 열어봐야겠지만, 에인절스 입장에서는 오타니의 부상이 ‘최악’이 아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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