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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고개 숙인 그날, 또 다른 SSG 1차지명은 희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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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건. /사진=SSG 랜더스
백승건. /사진=SSG 랜더스

SSG 랜더스의 6월은 시작부터 혼돈이었다.

간판급 선수인 김광현(35)이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 도중 음주 파문으로 1일 인천 삼성전을 앞두고 팬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날 선발로 예정돼 있었으나, SSG는 김광현의 1군 엔트리 제외를 결정했다. 김원형 SSG 감독은 “KBO 조사가 나오기 전에 팀 자체적으로도 시간을 좀 갖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엔트리에서 빼기로 했다”며 “조사 결과에 따라 콜업 시점이 정해질 것이다. 언제일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김광현을 대신해 마운드에 오른 것은 또 다른 좌완 백승건(23)이었다. 지난달 25일 인천 LG전 3이닝 무실점 후 등판이 없던 그는 이날 삼성을 상대로 4이닝 2피안타 1볼넷 2탈삼진 무실점 깜짝 호투를 펼쳤다. 최고 시속 145㎞의 빠른 공을 던지면서 60개의 공으로 4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SSG의 14-2 대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투구 내용이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맞은 타구가 외야로 자주 뻗었고 결국 4회에는 김현준, 호세 피렐라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 2루 위기에 놓였다. 여기서 올 시즌 자신의 강점을 가감 없이 발휘했다. 좌타자 구자욱을 9구 승부 끝에 좌익수 뜬 공으로 잡았고 우타자 강민호와 이재현은 각각 내야 뜬 공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해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5월까지 올 시즌 백승건의 피안타율은 0.160으로 위기 상황에서만큼은 김광현(피안타율 0.158)급의 선수였다. 어떻게든 실점을 최소화하는 투구로 올 시즌 19경기 2승 1패 3홀드 평균자책점 2.74로 필승조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지난달 만난 백승건은 뛰어난 위기 관리 능력에 “중요한 상황에 부르실 때 ‘어? 나를? 이상하다’라고 생각은 가끔 한다”고 웃으면서 “나도 이유는 모르겠다. 더 긴장하고 더 집중해서 그런 것 같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백승건(오른쪽). /사진=SSG 랜더스
백승건(오른쪽). /사진=SSG 랜더스

이렇게 너스레를 떨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입대 전까지 백승건의 위치는 애매했다. 동막초-상인천중-인천고를 졸업한 백승건은 2019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SK(현 SSG)에 입단했다. 슬라이더라는 위닝샷과 괜찮은 체인지업을 지니고 있어 미래의 선발감이라는 평가였다. 직구 구속이 시속 140㎞ 근방이었던 탓에 미래는 불투명했다. 2021년 국군체육부대(상무) 입대 전까지 1군에서 남긴 25경기 평균자책점 5.73의 기록은 초반의 평가대로 가는 듯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군대 다녀오면 철이 든다는데 내가 그런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상무에서의 규칙적인 생활은 도움이 됐다. 그를 오랜 시간 지켜본 스승 이승호(42) SSG 1군 불펜 코치는 돌아와 달라진 그를 보고 놀랐다. 이 코치는 “상무에 다녀오면서 불펜 투수로 바꿨는데 컨트롤이 많이 좋아졌다. 구속도 많이 늘어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는 시속 147㎞까지 봤다”고 말했다.

이어 “(백)승건이가 노력을 정말 많이 했다. 예전에는 몸이 빨리 열리면서 높은 볼이 많았다. 지금은 릴리스 포인트를 많이 끌고 나오며 중심 이동이 바뀌었고 제구도 잡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커브를 많이 연습했는데 그 커브가 카운트를 잡을 정도의 구종으로 성장하고 기존의 슬라이더 각도 예리해지다 보니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이제 슬라이더는 백승건에게 직구보다 가장 자신 있는 공이 된 것 같다”고 칭찬했다.

좌타자를 상대로 몸쪽에서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는 범타를 유도하기 좋다. 우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좌완에게 체인지업 계열의 공은 필수다. 백승건은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비중을 늘리면서 2019년 61.8%였던 직구 구사율을 올해 44.3%까지 낮췄다. 이날 4회 무사 1, 2루 위기에서 구자욱을 상대로 범타를 끌어낸 것은 6개의 슬라이더였다. 이 코치는 “좌투수는 슬라이더가 좋아야 승부하기가 편하다. 그래서 슬라이더 비율을 높이려 했다. (백)승건이에게는 빠르게 볼 카운트를 잡을 수 있게끔 항상 공격적으로 승부하라고 주문한다”고 밝혔다.

공격적인 피칭은 투수에게 유리한 볼 카운트를 만들면서 많은 이닝 소화로 이어졌다. 커리어에서 4이닝 이상을 소화해본 적은 이날 포함 3차례. 2020년 8월 20일 인천 삼성전 5이닝 5실점(3자책) 패배 이후 처음. 생각지 않은 에이스의 이탈로 혼돈에 빠진 그날, 한동안 잊고 지냈던 1차 지명은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3년 전 패배의 아픔을 안긴 상대에게 같은 장소에서 대패를 선물하면서 SSG에 희망을 남겼다.

백승건. /사진=SSG 랜더스
백승건. /사진=SSG 랜더스
백승건(오른쪽)이 1일 인천 삼성전 후 수훈선수가 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SSG 랜더스
백승건(오른쪽)이 1일 인천 삼성전 후 수훈선수가 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SSG 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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