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에 오타니도 영광도 없다. 술판만 있을 뿐이다. 태극마크는…
“도덕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롤모델이 될 이가 없다는 것 아닌가. 실력적으로도 세계 최고를 찾기 어려운데 인성면에선…같은 야구인으로 참 부끄럽고 죄송하다.”
WBC 심야 음주 술판 파동 이후 역대 국대 레전드 출신의 한 야구인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그의 말처럼 한국야구에 이제 아이콘은 없다. 국제대회 성적은 추락한 지 이미 오래고, 현실에는 술판 진실공방만 남아 있다.
김광현·이용찬·정철원은 1일 경기를 앞두고 각각 인천 SSG 랜더스필드와 창원 NC 파크에서 WBC 대회 기간 심야 음주 사건 보도의 당사자가 자신들이라고 밝히며 나란히 사죄의 뜻을 밝혔다.
앞서 한 매체와 유튜브 채널은 지난달 30일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일부 선수가 본선 1라운드가 열린 일본 도쿄에서 음주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 건에 대해서 3명의 선수들은 보도 이후 3일만에 대중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전체적인 여론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분위기다. 선수들이 해명하고 있는 음주시점이나 여성 접대부 등이 없었다는 주장 자체도 신뢰하기 어렵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국가대표로서 해선 안될 행동을 했다는 게 대중의 반응이다.
이렇듯 일부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일탈이 아닌 야구계나 야구 국가대표팀 전체의 도덕적 인 해이로 보는 대중의 시선은 굉장히 아프다. 하지만 결코 간과해선 안될 반응이다.
WBC 대회 기간 술자리 파문 직후 야구계 구성원 다수, 야구팬, 일반 대중 등 각계각층의 반응을 지켜보면 정작 핵심적인 건 선수들의 사과와 진실공방이 아닌 듯 보인다. 어느덧 한국야구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느낌도 피할 수 없다.
지난 WBC에서 많은 이들이 목격했듯이 일본 야구 대표팀은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라는 에이스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타자와 투수를 겸하는 이른바 ‘이도류 선수’로 세계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는 그가 ‘사무라이 재팬’에 헌신하는 모습은 일본 야구팬들과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대회 기간 전후로 대표팀 최고참인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와 함께 리더를 자처하며 선수들을 똘똘 뭉치게 하고, 미디어 앞에서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자신들의 목표를 말하는 모습에선 사실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오타니와 다르빗슈가 주최한 회식이나 팀 미팅에서 일본 대표팀의 자신감을 북돋워주고 동기부여를 제공하는 소식을 듣곤 고개가 끄덕여줬다. 일본 국민들과 야구팬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특히 결승전에서 오타니가 우승을 확정 짓는 세이브를 올리며 기뻐하는 순간은 WBC 역대 최고의 장면으로 꼽힐 정도로 많은 이에게 큰 감동을 줬다.
일본은 물론, 대회 현장에서 예선부터 8강 라운드까지 우리보다 약체 혹은 야구 변방으로 여겼던 호주 대표팀과 체코 대표팀의 선전 및 최선을 다한 플레이를 지켜보는 건 참 속상하고 부러운 일이기도 했다. 특히 그들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없는 세미프로 등의 환경에서도 대회 기간 내내 꿈과 희망, 행복을 이야기했다.
그들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국 대표팀의 추락을 지켜보면서 내내 기자는 비통한 심정과 서글픈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속상함과 원망스러운 마음이 공존했다. 그러면서도 부디 기적이 일어나길 내내 간절히 바랬다.
그렇게 제3자 이면서도 대회 기간 내내 지극히 주관적인 마음으로, 일방적인 응원과 격려, 그리고 애정 혹은 애증을 담아 그 여정에 동행했다. 많은 야구팬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개인의 고충보다는 다시 한번 기대를 쏟았다가 또 한 번 참패라는 결과를 지켜보며 깊이 실망한 한국 국민들과 야구팬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은 직업인으로도 개인으로도 가장 슬프고 힘든 일이었다. 그 실망에 담긴 좌절감을 읽었고 공감했기에 더 무력한 기분이었다.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한 개인에게도 이토록 실망스러운 결과인데, 태극마크를 달고 모든 것을 쏟았을 대표팀 선수단 역시 크게 좌절하며 낙담하고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그 심정을 공감하려 애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결국 이런 ‘우리들’의 노력과 마음은 결국은 처절하게 배신당한 셈이 됐다.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로 꼽히는 오타니는 선수 생활 내내 그 흔한 구설에 오른 적도 없을뿐더러 항상 성실하고 모범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렇기에 그는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인 동시에 일본 스포츠를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유소년 시절부터 많은 책을 읽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고, 슈퍼스타가 된 지금도 그 책임감이 무뎌지지 않고 있는 오타니는 그래서 ‘사무라이 재팬’의 자랑이고, 일본인들의 자부심이 됐다.
환호와 땀이 빠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 추악함만이 남은 세계를 누가 기쁘게 지켜볼 수 있을까.
아름다운 세계를 지켜보지도 못한 대신에 왜 야구팬들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그들의 내밀하고 얼룩진 사정까지 봐야 하는 걸까.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라 올해 야구팬들은 온갖 사건 사고 소식을 야구 관련 소식보다 먼저 접해야 했다.
그렇게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린 건 아닐까. 새삼 다른 스포츠의 국가대표들의 모습, 훌쩍 성장한 시대의 모습을 보면서, 또한 지금 대한민국의 의식 수준에 견줘서 야구계를 지켜보면 또 하나의 질문이 치밀어 올라온다.
과연 그들에게, 한국야구에 태극마크는 무슨 의미일까.
김원익 MK스포츠 기자(one.2@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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