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안홍석 기자 = 신유빈(18·대한항공)과 전지희(30·미래에셋증권)가 합작한 2023 개인전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복식 은메달은 멈추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각자의 난관을 넘어선 끝에 이룬 성과다.
어릴 적부터 ‘탁구 신동’으로 주목받은 신유빈은 2021년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해 11월 열린 개인전 세계선수권에서 손목 피로골절 부상으로 중도 기권하는 등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 못했다.
탁구에서 가장 중요한 관절인 손목에 문제가 생긴 탓에 신유빈의 성장은 한동안 더딜 수밖에 없었다. 일부 팬들은 그를 ‘거품’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신유빈은 지난해 초 손목뼈에 핀을 박는 수술을 받고 국제대회에 나섰으나 손목 통증이 재발했다. 9월 말에는 추가로 뼛조각 제거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연이은 수술에도 신유빈은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손목을 못 쓸 때는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파워를 키우고 체력도 보강했다.
이번 대회 신유빈의 샷은 예전보다 묵직했다. 상대 공격에 대처하는 센스도 좋아졌다.
결국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전지희와 함께 준결승에서 중국의 세계 1위 조를 격파하며 한국 선수로는 36년 만에 여자복식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제 국제대회에서 복식만큼은 언제든 우승을 노릴 수 있는 선수로 훌쩍 큰 신유빈이다.
전지희의 도전 과정은 더 극적이다.
전지희는 세계적인 강자로 인정받으면서도 유독 세계선수권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다.
2018년 단체전 세계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따냈을 뿐 개인전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서는 번번이 입상에 실패한 전지희는 자신보다 뒤처져 있다고 여겼던 중화권 선수들이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 시상대에 서는 것을 보며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무릎 부상이 전지희를 괴롭혔다. 이제 전지희 시대도 끝나간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승민 대한탁구협회 회장의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단식 금메달을 지도한 김택수 감독이 이끄는 미래에셋증권으로 지난해 12월 팀을 옮긴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김택수 감독은 “여러 조건을 걸지 않았다. 올림픽 메달에 도전해보자는 의지만 서로 확인했다. 내가 실업팀 지도자로서 경험한 계약 과정 중 가장 간단했다. 그 정도로 전지희의 의지가 컸다”고 전했다.
‘가혹하게 훈련시키겠다’고 엄포를 놨던 김택수 감독은 정말 그렇게 했다.
혹독한 훈련의 과실은 달았다. 전지희는 팀을 옮기고서 불과 반년 만에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계를 넘어서려는 신유빈과 전지희의 노력은 서로에게 자극제도 됐다. 여자단식에서는 적으로, 2019년부터 합을 맞춰온 여자복식에서는 동료로 건강한 경쟁을 펼쳤다.
안재형 한국프로탁구리그(KTTL) 총괄위원장은 “2년 전 올림픽 반짝스타로 멈추는 듯했던 신유빈이 부상을 잘 이겨내고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이 전지희에게 자극제가 되면서 시너지가 나 은메달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신유빈과 전지희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다.
특히 전지희는 2024 파리올림픽을 사실상의 마지막 도전 기회로 보고 있다.
두 선수 모두 몸이 완전하지는 않다. 신유빈은 손목 관절을 계속 관리해야 한다. 전지희는 무릎 부상이 고질이 됐다.
이들에게 계속 강한 동기를 부여 하면서도 ‘파이팅’이 몸을 갉아먹지 않도록, 지도자들이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길잡이 역할을 잘해야 한다.
이들이 기세를 이어간다면, 한국 여자탁구는 파리 올림픽에서 ‘복식 필승 카드’를 손에 쥘 수 있다.
올림픽 탁구에서는 남녀 복식 종목 없이 남녀 단식과 혼합복식, 남녀 단체전에 걸쳐 5개의 금메달이 걸려있다.
그중 단체전에 복식이 들어가는데, 1번 경기로 치르기 때문에 승부에 큰 영향을 준다.
ah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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