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선발·훈련·성적까지 감독에게 맡기는 관행에서 탈피해야
(서울=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남겼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했던 선수들이 KBO리그 정규시즌에서도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앓고 있다.
WBC 대표팀 30명 중 상당수 선수가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며 팀 성적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각 팀 주축 투수인 김광현(SSG 랜더스)과 고우석(LG 트윈스), 소형준(kt wiz), 이용찬(NC 다이노스), 곽빈(두산 베어스) 등은 한 차례씩 부상자 명단에 오르면서 개막 한 달이 지나도록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박세웅(롯데 자이언츠)과 구창모(NC 다이노스).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정우영(LG 트윈스) 등은 꾸준히 등판하고 있지만 좀처럼 예전 구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투수보다는 덜 하지만 타자들도 부상과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WBC 기간 종아리를 다친 나성범(KIA 타이거즈)은 아예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고 박병호(kt wiz)와 오지환(LG 트윈스), 최지훈(SSG 랜더스) 등도 여기저기 부상을 호소했다.
선수들이 이처럼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는 이유를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규시즌보다 3주가량 일찍 열린 WBC를 대비해 선수들이 경기력을 무리하게 끌어올리려다 체계적인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을 가능성은 높다.
여기에다 대표팀이 전지훈련을 벌인 미국 애리조나 투손의 이상 저온 현상도 선수들의 몸만들기에 나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또한 애리조나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는 예상치 못한 비행기 결항으로 인해 30시간 이상의 장시간 이동을 하면서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일부 선수도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시에도 전지훈련 장소를 잘못 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KBO 관계자는 “당시 KBO리그 7개 팀이 미국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기에 투손을 대표팀 훈련장소로 정했다”라고 설명했다.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이강철 감독의 kt도 현지에서 전지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쉬운 점은 KBO가 전지훈련지를 비롯해 각종 대표팀 관련 현안 결정에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마치 프로야구 초창기에 그랬듯이 모든 결정을 감독에게 맡기고 KBO는 뒷짐 지는 모양새다.
기술위원회도 엄연히 존재했지만, 지금까지는 감독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관례다.
대표팀 감독은 선수 선발과 훈련 일정 및 장소 선정은 물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대 팀 전력 분석까지 사실상 직접 해야 한다.
현재 10개 구단 운영 방식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원시적이다.
감독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 보니 대표팀 성적 부진은 물론 선수 부상까지 책임지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프로야구 출범 40년이 지나면서 구단의 선수단 운영은 선진화됐지만 KBO가 맡은 국가대표팀은 아직도 아마추어티를 벗지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지난 4월 KBO는 WBC에서의 수모를 만회하겠다며 기술위원회를 전력강화위원회로 개명했다.
명칭만 살피면 역할이 오히려 축소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KBO는 국가대표팀뿐만 아니라 선수 육성까지 총괄할 수 있도록 확대 개편했다고 밝혔다.
KBO 관계자는 “위원회의 역할만 확대된 것이 아니라 대표팀 운영에도 적극 개입하기로 했다”라며 “전력강화위는 물론 KBO 사무국에서도 (대표팀을) 직접 챙길 예정”이라고 전했다.
사실 KBO는 예전에도 대표팀 운영 개선 방안을 여러 차례 발표했으나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감독 한 명에게 모든 책임을 지워서는 안 된다.
KBO는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11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또 대표팀을 파견해야 한다.
내년에는 프리미어12도 열린다.
국제대회 성적은 물론 선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서라도 KBO의 체계적인 대표팀 운영 방안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shoele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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