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그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최형우는 당시 ‘윈 나우’ 케이크 위에 올라간 가장 맛있는 체리와도 같았다. 최형우 영입으로 화룡정점을 찍은 KIA는 그해 압도적인 팀 타선을 앞세워 ‘V11’ 통합 우승을 달성했다. 그해 타율 0.342/ 26홈런/ 120타점을 달성한 ‘4번 타자’ 최형우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광의 순간 뒤로 KIA는 부침을 거듭했다. 우승 멤버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면서 2017년 영광의 순간도 빛바랜 과거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23년, 여전히 바뀌지 않은 ‘불변’의 존재가 있다. 이 역시 타이거즈 ‘4번 타자’ 최형우다. 올 시즌 초반 위기에 빠진 팀 상황에서 최형우는 다시 4번 타자로 복귀해 타이거즈 해결사를 맡고 있다.
2020시즌 최고령 타율왕 등극 뒤 2년 동안 다소 주춤했지만, 최형우는 올 시즌 다시 ‘타자 최형우’가 왜 ‘KBO리그 리빙 레전드’인지를 증명하고 있다. 최형우는 올 시즌 18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8/ 20안타/ 3홈런/ 11타점/ 출루율 0.423/ 장타율 0.557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두 번째 FA 계약이 끝나는 시즌이기에 최형우는 현역 연장을 목표로 자신의 진가를 다시 인정받고자 한다. MK스포츠가 “나에게 예고 은퇴는 없다”라는 최형우의 마음가짐을 광주에서 직접 들어봤다.
시즌 초반 위기의 팀을 구해내는 영웅은 역시 최형우였다. 책임감이 많이 느껴질 듯싶다.
솔직히 내 마음이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 마음을 비운 까닭이다. 이제 나는 팀의 중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2년 전부터는 6번 타순에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마음가짐이다. 지금은 다른 후배들이 팀 중심이 돼야 할 때다. 나는 뒤에서 받쳐준다는 느낌으로 야구를 하고 있다.
김종국 감독의 말로는 최근 스윙 속도가 빨라진 느낌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에 뭐 해봤자 얼마나 스윙 속도가 빨라지겠나(웃음). 지난해 타격 수치가 많이 떨어지면서 시행착오도 자주 겪었다. 올 시즌은 타격 컨디션 자체가 괜찮다. 또 슬럼프가 길게 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방망이를 돌리니까 스윙 속도가 빨라 보이고 자신감도 더 붙은 것처럼 보이지 않나 싶다.
2017년도 그렇고 6년이 지난 2023년도 타이거즈 4번 타자를 맡고 있다.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다.
글쎄. 팀으로 봤을 때는 나 같은 늙은이가 4번 타자인 게 썩 좋은 상황이 아닌 건 사실이지 않나(웃음). 다른 후배들이 못 올라오는 거라 좋은 느낌은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내가 4번 타순에 들어가든 벤치에서 시작하든 크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이제 ‘4번 타자’라는 단어에 신경 안 쓴다.
그래도 최근 달성한 개인 통산 2루타 신기록(468개)은 감정이 남달라보였다.
내가 중·장거리 타자라고 항상 입버릇처럼 얘기하고 다녔지 않나. 홈런을 넘보기 어렵지만, 2루타는 자부심이 있다. 2루타를 이렇게 많이 쌓은 게 그래도 개인적으로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1,500타점 기록도 남았는데 크게 의식은 안 한다. 안 아프고 꾸준히 경기에만 나간다면 언젠가 깨질 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예전부터 타점 기록에 대한 애착이 컸기에 향후 가능한 1,500타점 대기록 달성의 의미도 크겠다.(최형우는 4월 26일 기준 1,472타점으로 이승엽 감독(1,498타점)에 이어 개인 통산 타점 2위에 올라 있다)
맞다. 아무래도 타점 기록이 가장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1,500타점을 달성한다면 정말 내 야구 인생에 큰 영광이고 축복이 아닐까 싶다.
최형우 야구인생을 돌아보면 선수로서 전환점은 무엇이었을까.
군대다. 군대를 다녀와서 나름대로 더 열심히 준비하면서 야구가 잘 풀리기 시작했다. 군대를 다녀와서 첫 홈런을 쳤을 때도 그전에 만루 기회에서 대타로 두 번 정도 나갔는데 다 못 쳤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크게 자책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하고 안 되면 2군에 다녀오자는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오면서 소심한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후배들에게도 그런 전환점이 필요하겠다.
사실 나는 군대가 그랬지만, 야구선수들의 전환점은 뭐라고 딱 정해진 건 아닌 듯싶다. 선수에 따라서 그 전환점이 언제 올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열심히 준비하고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 전환점이라는 게 자기도 모르게 와서 자기도 모르게 나처럼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이 그 전환점일 수 있기에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지금 베테랑 최형우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우선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나를 응원해주는 게 큰 원동력이다. 그것도 그렇고 야구장에 나오는 게 너무 재밌는 것도 있다. 우리 팀은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동생들이라도 격의 없이 장난치면서 즐겁게 지낸다. 그래서 야구장에서 아직 떠나기 싫고 애들이랑 더 놀고 싶은 마음이 크다(웃음).
아들도 야구를 조금 알고 아버지가 야구하는 걸 좋아하는 듯 보이던데.
사실 아들이 야구를 잘 아는 정도는 아니다. 그냥 나가면 홈런을 치라고 말하는데 홈런이 뭔지도 잘 모른다(웃음). 그냥 베이스를 돌고 오면서 하이파이브 하는 게 신나 보이니까 홈런을 치라고 하는 거다. 아빠가 어떤 존재고 홈런을 치면 뭐가 좋고 이런 건 아직 모른다. 그걸 알 수 있을 때까지 뛰면 좋겠지만,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최근 김강민(SSG 랜더스) 선수가 은퇴 가능성을 언급해 화제가 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쩔 수 없이 고민이 되는 듯싶다.
나도 2년 전부터 해마다, 매일 느끼고 있다. 몸이 움직이는 게 그렇고 스윙하거나 공을 보는 것도 전체적으로 예전과 크게 다르다. 은퇴 생각도 매일 하고 있지만, 일단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야구를 하고 싶다. 나는 예고 은퇴도 없다. 밖에서 나오는 얘긴 중요하지 않다. 구단에서 나를 필요로 하면 계속 야구를 할 거다.
FA 계약 마지막 시즌이라 더 고민이 깊어질 듯싶다.
그런 건 진작 내려놨다. 그냥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받아들일 거다. 내가 잘했다고 해도 구단이 여기까지라고 하면 깔끔하게 그만하는 거고, 어정쩡하게 했어도 구단이 필요하다고 하면 계속 뛸 수 있는 거다.
6년 전처럼 다시 후배들과 마지막 우승의 꿈을 꾸고 싶지는 않나.
당연히 우승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런데 모든 베테랑들이 인터뷰할 때마다 우승 얘길 꺼내지 않나. 식상하니까 그런 말을 안 꺼내는 편인데 마지막에 우승을 한 번 더 하고 싶긴 하다.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입에 발린 우승 얘기보단 팀이 꾸준히 상위권에 올라가면서 후배들과 포스트시즌 경험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 그런 경험이 하나하나 쌓이면서 후배들과 그들이 이끌 팀에 큰 재산이 되는 거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 좋은 날이 오지 않겠나. 그 좋은 날에 내가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근한 MK스포츠 기자(forevertoss@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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