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추문에 타격 부진까지.
총체적 난국을 겪었던 일본 야구 대표팀 전 주전 유격수 사카모토 하야토(34.요미우리)가 은인의 기일에 부활 포를 쏘야 올렸다.
평판은 떨어지고 성적까지 부진하며 이중고를 겪고 있었지만 부활을 알리는 홈런을 쏘아 올리며 다시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됐다.
사카모토는 8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 경기에 6번타자 유격수로 출장해 홈런 포함 4타수 2안타 1타점 1득점을 올렸다.
이 경기 전까지 19타석 무안타를 기록하고 있던 사카모토다. 이날도 두번째 타석까지는 안타를 치지 못했다.
하지만 세 번째 타석에서 호투하던 상대 선발 도코다를 상대로 중월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이어 마지막 타석에서도 안타를 치며 멀티 히트를 기록했다.
사카모토의 부진은 지난해부터 시작됐다.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타율 0.286 5홈런 33타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당연하게 여겨졌던 국가대표 선발에서도 탈락하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장이 불발되기도 했다.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교제하던 여성에게 낙태를 종용했다는 성 추문에 휘말리며 위신이 크게 떨어졌다.
언론 통제가 가능한 요미우리에서도 막지 못할 정도로 파급력이 큰 사건이었다.
여기에 올 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져 있었다. 홈런은 커녕 안타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8일 히로시마전을 기점으로 살아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일단 타격폼을 수정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중심을 높게 잡아 자세를 취하는 방법을 타격폼을 수정했고 수정한 첫날 홈런포가 터졌다.
특히 이날은 사카모토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무라 전 코치의 기일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기무라 코치는 은퇴를 앞두고 만난 신예 사카모토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며 주전 유격수로 자리 잡는 데 큰 힘이 돼 주었다.
사카모토는 “기무라 선배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빨리 요미우리의 주전 유격수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깊은 은혜를 입었다.
기무라 코치는 2009년 은퇴 후 요미우리 수비 코치로 활동하던 중 2010년 쓰러져 4월8일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 당시 37세에 불과한 나이였기에 더욱 안타까워 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은인의 기일에 부활의 열쇠를 찾은 사카모토다. 성 추문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야구로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철우 MK스포츠 전문기자(butyou@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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