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연합뉴스 |
박정아(한국도로공사)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도, 챔피언결정전 무대에 오를 때도 “나조차 기대하지 않은 성과”라고 했다.
하지만 정규리그를 3위로 마친 ‘언더독’ 도로공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리그 1위 흥국생명을 3승 2패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챔피언결정전을 포함한 역대 포스트시즌 여자부 최장 경기(158분)의 혈전이 벌어진 6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도 박정아는 “우리도 이런 결과가 나올 줄 몰랐다. 정말 우리가 이긴 게 맞나”라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배구 팬들도 놀랐다.
이날 도로공사는 흥국생명을 세트 스코어 3-2(23-25 25-23 25-23 23-25 15-13)로 꺾고, 기적 같은 리버스 스윕에 성공했다.
도로공사는 V리그 남녀부 최초로 챔피언결정전 1, 2차전을 내주고도 우승하는 대역전극을 펼쳤다.
V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에 마침표를 찍은 선수는 박정아였다.
고비 때마다 득점해 ‘클러치박’이라는 별명을 얻은 박정아는 이날도 5세트에서 6점을 올렸다.
매치 포인트(14점째)와 경기를 끝내는 득점(15점째)도 박정아가 만들었다.
13-12에서 박정아는 블로커 3명을 앞에 두고 공격했다.
첫 판정은 ‘인'(박정아의 득점)이었지만, 흥국생명이 비디오 판독을 신청했고 ‘아웃 판정’을 끌어냈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블로커 터치 아웃’을 대상으로 다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느린 화면에 흥국생명 옐레나 므라제노비치(등록명 옐레나)의 손에 공이 스치는 모습이 잡혔다.
박정아는 “사실 공이 내 손에 정확하게 맞지 않아서, 나도 아웃인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김종민 감독도 “박정아의 득점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냥 비디오 판독을 요청한 것”이라고 밝혔다.
행운의 비디오 판독으로 도로공사는 14-12로 달아났다.
14-13에서는 박정아가 퀵 오픈을 성공해 경기를 끝냈다.
박정아는 “(흥국생명 리베로) 김해란 선배가 공을 잡는 줄 알았다. 공이 코트에 닿기 전까지 긴장했다”고 떠올렸다.
김해란이 몸을 날려 공을 건드리긴 했지만, 공은 엔드라인 밖으로 날아갔다. 도로공사가 우승을 위한 1점을 채운 순간이었다.
동시에 박정아의 개인 통산 5번째 우승도 확정됐다.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5회 우승은 박정아와 도로공사 리베로 임명옥, 현대건설 베테랑 아포짓 스파이커 황연주 등 3명이 함께 보유한 최다 타이기록이다.
박정아는 “1세트 초반 랠리를 벌인 뒤부터 지친 상태였다. 그런 적이 없는데 오늘 5세트 막판에는 제발 내게 공이 올라오지 않길 바랐다. 그런데 세터 이윤정이 또 내게 공을 주더라”며 “다행히 득점했다. 정말 다행”이라고 웃었다.
‘5대 1의 응원전’에서 목청 높인 도로공사 원정 팬들도 박정아에게 힘을 줬다.
5차전에는 6천125명의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약 5천명은 흥국생명을 응원하는 홈 팬이었다. 그러나 약 1천명의 도로공사 응원단도 기세에 밀리지 않았다.
1, 2차전 때 흥국생명 팬들의 함성에 주눅 들었다고 털어놨던 박정아는 “5차전에서는 기죽지 않았다. 홈인지 원정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 팬들이 열심히 응원해주셨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비시즌에 국가대표 차출 등으로 체력을 소진한 박정아는 이번 시즌 초 대상포진에 걸려 고전했다.
그러나 점점 공격력을 끌어올려 득점 8위(526점)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1, 2차전에는 10점씩만 올렸지만, 3차전 24점, 4차전 20점, 5차전 23점을 올렸고 경기를 끝내는 득점까지 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박정아의 2022-2023시즌은 해피엔딩이었다.
박정아는 “내가 건강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어렵게 시즌을 시작했는데 결국 잘 이겨냈다”며 “5번의 우승 모두 좋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이번 5번째 우승은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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