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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어떻게 남미에서 ‘야구의 나라’가 됐을까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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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WBC에 출전한 베네수엘라 대표팀 선수들.  /사진=뉴스1
2023 WBC에 출전한 베네수엘라 대표팀 선수들. /사진=뉴스1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진출 팀 가운데 남아메리카 국가는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2개국이다. 이 중 콜롬비아는 1라운드 C조 첫 경기에서 멕시코를 제압했지만 나머지 경기에서 모두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반면 베네수엘라는 1라운드 D조에서 4전 전승을 기록했다. 베네수엘라가 도미니카공화국과 푸에르토리코와 같은 조에 편성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었다.

베네수엘라는 19일(한국시간) 미국과의 8강전에서도 선전했다. 비록 7-9로 역전패하기는 했지만 베네수엘라는 막강화력을 앞세운 우승후보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이날 경기에서 지난 시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AL) 수위타자였던 베네수엘라의 루이스 아라예즈(26·마이애미 말린스)는 두 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WBC 2연패를 노리는 야구 종주국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내심 이번 대회에서 2009년 WBC 3위를 넘어서는 결과를 기대했던 베네수엘라는 8회초 미국에 만루홈런을 허용해 4강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이번 대회에서 야구 강국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베네수엘라의 야구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1984년 MLB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적인 유격수 루이스 아파리시오(89)를 필두로 안드레스 갈라라가(62), 오마 비즈켈(55), 요한 산타나(44), 미겔 카브레라(40·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호세 알투베(33·휴스턴 애스트로스) 등 전현직 베네수엘라 출신 MLB 스타들이 즐비하다.

지금까지 베네수엘라 출신 MLB 선수의 숫자는 도미니카공화국을 제외하면 중남미 국가 가운데 가장 많다. 베네수엘라에서 스포츠로 성공하기 위해 축구를 비롯한 다른 어떤 종목보다 야구를 시작하는 유망주들이 많았던 이유다.

축구를 종교처럼 떠받드는 남미에서 베네수엘라는 야구에 열광하는 매우 이례적인 국가다. 베네수엘라의 야구가 국민 스포츠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원유 때문이었다. 베네수엘라의 원유 매장량은 세계 1위다.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매장량이다.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 붐은 1920년대 스탠다드 오일, 모빌 등 미국의 거대 정유회사의 탐사로부터 시작됐다. 미국 정유회사들은 원유 개발을 위해 베네수엘라에 대규모 산업 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에는 학교, 병원뿐 아니라 야구장도 세워졌다. 베네수엘라로 건너 온 미국인들은 물론 정유 산업단지에서 일자리를 찾은 베네수엘라 사람들도 야구라는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원유 개발에서 촉발된 야구 보급이 급속도로 전개되면서 베네수엘라는 야구의 나라가 됐다. 이 결정적 계기는 1939년과 1941년에 만들어졌다. 1939년 알렉스 카라스켈(1912~1969)이 워싱턴 세네터스에 입단하면서 베네수엘라 사상 최초의 메이저리거가 탄생했고 2년 뒤에는 베네수엘라가 세계아마추어야구대회에서 쿠바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덕분에 야구 강국의 길을 걸을 수 있었지만 국가 경제 차원에서 석유 산업은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자본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1976년 석유 산업을 국유화했다. 하지만 만연한 부정부패와 1980년대 유가폭락으로 인해 다시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은 민영화됐다.

베네수엘라의 호세 알투베(가운데)가 지난 19일(한국시간) WBC 미국과 8강전에서 투구에 오른손 엄지 골절상을 입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베네수엘라의 호세 알투베(가운데)가 지난 19일(한국시간) WBC 미국과 8강전에서 투구에 오른손 엄지 골절상을 입고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 같은 흐름은 지난 1999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된 우고 차베스(1954~2013)에 의해 다시 전환됐다. 사회주의 노선과 함께 철저한 반미주의를 정치 구호로 내걸었던 차베스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그는 석유라는 자원을 무기로 미국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외교 정책을 추진했으며 대내적으로는 빈곤격차 해소를 위해 포퓰리즘적인 복지정책을 전개했다.

미국의 정치와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라틴 아메리카 국가 간의 연대를 강조했던 차베스는 ‘미국의 스포츠’ 야구가 아닌 ‘남미의 스포츠’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가 재임 중이었던 2007년 약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를 들여 코파 아메리카 대회를 자국에서 개최한 이유였다. 베네수엘라 축구는 이 대회에서 8강에 진출하기는 했지만 대회 준비와 운영에 너무 많은 돈을 쓰면서 차베스의 인기는 오히려 하락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깊게 뿌리내린 야구의 사회적 영향력은 축구를 압도해 왔다. 이는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을 때 여실히 드러났다. 당시 화이트삭스의 감독은 베네수엘라 출신 아지 기옌(59)이었다. 1917년 이래 화이트삭스에 첫 우승을 선물한 기옌은 베네수엘라의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그는 중남미 국가 출신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최초의 야구 감독이었다. 정치적으로 미국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던 차베스는 TV 쇼에 직접 출연해 미국 프로야구에서 베네수엘라의 자존심을 세운 기옌을 극찬해야 했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국가 경제가 붕괴된 베네수엘라에 어쩌면 유일한 희망은 야구다. 다른 중남미 국가 이상으로 베네수엘라에서 야구는 빈곤 탈출을 위한 중요한 플랫폼이다.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숱한 시도에도 베네수엘라는 여전히 미국 경제권에 예속돼 있다.

물론 야구도 그렇다. 야구에 죽고 사는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 MLB는 꿈의 무대다.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들이 대거 활약하는 MLB 경기를 지켜보는 것은 그들의 일상생활이기도 하다. 이번 WBC에 출전한 베네수엘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헬멧에도 베네수엘라에 MLB를 독점적으로 중계하는 미디어인 심플 TV의 로고가 붙어 있었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머니투데이
content@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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