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도쿄 참사’로 불리고 있다. 특히 WBC 경기 결과를 두고 전반적으로 투수 운용에 대해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투수진 운용 자체도 치밀하지 않았고 내보낸 투수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했다는 비판이다.
한국 국가대표팀 이강철 감독은 9일 호주전과의 경기에서 바로 다음 날 열릴 일본전에 대한 부담 때문에 투수진 운용을 제대로 못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광현은 10일 일본전에 선발 등판해 2회까지 완벽한 투구를 했지만, 전날 호주전 불펜 대기로 인한 체력 고갈 등으로 3회에 무너졌다. ‘특급 투수’를 아껴둔 이유는 감독만 알겠지만, 일각에서는 일본전에만 김광현을 마운드에 올린 이유를 두고 일본전에서 패배했을 때 밀려올 후폭풍을 우려한 것 아니냐는 비난도 제기된다. 이번 WBC 김광현의 성적은 2이닝 3피안타 4실점이다.
전문가들도 투수진 운용에 대한 지적을 쏟아냈다. 지난 14일 YTN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한 이순철 야구 해설위원은 “투수들이 경기하면서 뭔가 불안감에 쫓기고 대표팀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 투수 쪽에 많이 있어서 그런지, 자기 투구들을 하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까 제구도 흔들리고 그런 경향들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일본 대표팀 출신의 야구 평론가 사토자키 도모야도 “한국 리그는 주력 투수가 거의 외국인 선수”라며 “KBO리그에서 자국 투수를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외신의 평가도 비슷하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홈페이지인 MLB닷컴은 한국 대표팀의 일본전 패배 요인으로 투수진을 꼽았다. MLB닷컴은 “경기 초반엔 선발 투수 김광현의 호투와 타선의 활약으로 앞섰지만, 투수들이 무너지며 경기가 기울어졌다. 한국은 10명의 투수를 투입했지만 일본 타선에 맞설 수 있는 선수는 없었다”고 꼬집었다. 일본 스포츠매체 ‘풀카운트’는 “구원 투수로 예정됐던 김광현이 선발로 나온 것은 달리 의지할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투수진이 세대교체에도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무너진 투수진 운용에 따른 결과는 처참하다. 9일 호주전에서 사사구(사구인 ‘볼넷’ 과 또 다른 사구인 ‘몸에 맞는 데드볼’을 합친 수치) 5개를 내줬고, 다음날 일본전에는 사사구를 무려 9개나 허용했다. 호주와 일본전 17이닝 동안 21점을 내준 한국 투수진은 평균자책점 11.12로 A, B조 10개국 중 꼴찌다. 결국 한국 투수들이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전에서는 곽빈 정철원 김윤식 구창모 이의리가 마운드에 올랐지만 모두 실점하며 흔들렸다. 6회 무사 3루 상황에 등판한 김윤식은 볼넷 2개와 몸에 맞는 공 1개를 내주며 제구 난조를 보인 후 강판됐다. 반면 이번 대회 4전 전승을 거둔 일본은 사사키 로키가 체코전에 선발 등판해 3⅔이닝 동안 8개의 삼진을 솎아내며, 2피안타 1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했다.
붕괴한 마운드를 두고 이강철 감독은 다음 국제 대회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짧게 말했다. 이 감독은 14일 귀국 인터뷰에서 “어린 선수들이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소형준 이의리 같은 젊은 선수들이 자기 공만 던졌어도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선수를 질책하는 게 아니다. 이 감독은 “나도 아쉽지만, 본인들은 더 아쉬울 거다. 경험을 쌓았으니 국민들께서 기다려주신다면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원중 정철원 원태인 등의 잦은 투수 기용을 두고 일각에서 제기된 ‘혹사’ 비판에 대해선 “한국시리즈에서 투수 몇 명을 쓰는지 알아보시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반박했다.
한편 WBC 3회 연속 1회전에서 탈락한 야구 대표팀의 부진에 대해 한국야구위원회(KBO)가 공식 사과했다. KBO는 16일 사과문을 내고 “야구 대표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과 경기력을 보인 점에 관해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야구팬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KBO와 10개 구단은 WBC 결과에 큰 책임을 통감하며, 여러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향후 리그 경쟁력과 국가대표팀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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