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이요? (가능성) 0%죠.”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외야수 박건우는 3일 한국 고척스카이돔에서 진행된 대표팀 연습경기 전 훈련에서 취재진을 만나 바로 저렇게 말했다. 자신의 선발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백업으로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였다.
그런데 박건우가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맹활약으로 점차 자신의 ‘예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박건우 스스로가 만들어낸 균열이 기적 같은 선발 기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야구대표팀은 6일 일본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열린 오릭스 버팔로스와의 월드베이스볼(WBC) 공식 평가전서 2-4로 패했다. 이날 타선에서 가장 돋보인 것은 멀티히트를 때려낸 이정후와 함께 9회 초 1타점 적시타를 때려낸 박건우였다.
0-4로 뒤지던 답답한 한국의 흐름. 9회 초 1사 1,2루에서 대타로 타석에 선 박건우는 깨끗한 좌중간 1타점 적시타를 때려 한국의 추격의 1점을 뽑아냈다. 이날 한국 대표팀이 뽑은 첫 번째 득점이기도 했다. 이후 대표팀은 이지영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더 얻어 2-4로 오릭스를 추격했지만 끝내 경기를 뒤집지는 못했다.
자칫 한국이 영패를 당할 수 있었던 위기에서 박건우가 대표팀을 구해낸 셈이다. 연습경기라고 할지라도 득점 없이 패한다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결과일 수 있었다.
이런 박건우의 활약은 오릭스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서 박건우는 3일 열렸던 SSG 랜더스 2군과의 국내 연습경기에서 컨디션 난조였던 최정을 대신해 3루수로 깜짝 출전한 바 있다. 그리고 박건우는 홈런에 2루타 2방을 때려내는 장타력을 과시한 바 있다. 5회 박세웅 상대로 2루타, 7회 정철원 상대로 홈런, 9회에는 김원중 상대로 다시 2루타를 기록하며 대표팀에서 가장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줬다.
하지만 박건우 스스로는 주전에 대한 욕심은 없다. 김현수, 이정후, 나성범으로 구성된 현재 대표팀 외야 주전진의 능력과 경력이 워낙 출중한 까닭. 박건우는 스스로 조연을 자처했다.
오히려 짧은 대표팀의 소집 기간에도 스스로 발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박건우였다. 3일 경기 전에도 박건우는 전 소속팀 두산의 동료이자 절친한 선배인 대표팀의 캡틴 김현수에게 계속해서 타격폼을 질문하고 있었다. 김현수 역시 아끼는 후배인 박건우에게 타격 시 스탠스와 히팅 포인트에서 오른발로 힘을 모으는 요령을 계속해서 알려주고 조언하는 모습이었다.
훈련 종료 후 ‘선발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에게 박건우는 “(가능성은) 0%다”라며 손가락으로 ‘0’을 만들어 보였다. 하지만 표정은 밝았다. 이전에도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여러차례 말했던 박건우였기 때문이다.
대표팀에 소집 되어서도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박건우는 “(김)현수 형 잔소리에 귀가 아프다”면서 한참 너스레를 떨다가도 “야구적인 부분은 정말 배울 점이 많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정말 잘 알려주는 좋은 형”이라며 대표팀 동료로서는 물론이고, 대단한 타자인 김현수에게 질문을 구하고 있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전했다.
이처럼 대표팀에서도 자신의 주포지션이 아닌 위치에서까지 나서면서도 박건우는 불평불만이 전혀 없었다. 열심히 맡은 바 역할을 하고 분위기 메이커로 훈련장에서 열심히 뛰면서, 경기에선 뜨거운 타격감까지 보여주고 있는 박건우가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강철 대표팀 감독도 이런 박건우의 좋은 타격감에 주목, 상대 투수에 따라서 우타자인 그를 기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지명타자나 대타로도 경기 중 상황에 따라 박건우를 충분히 기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대표팀에 우타자 비중이 높지 않기에 향후 대타로서도 박건우의 쓰임새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같은 외야 백업 멤버로 분류되는 박해민과 최지훈이 다재다능함에서 앞선다면 박건우는 타격면에서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박건우는 2017년 WBC에서 추신수의 대체발탁 선수로 첫 국대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에는 교체 멤버로 큰 기회를 얻지 못한채로 아쉽게 대표팀의 1라운드 탈락을 지켜봐야 했다. 그때와 비교하면 더 성숙해지고 기량적으로도 성장한 그다.
기적은 스스로 찾는 이들에게 찾아온다고 했다. 0%라는 애초의 전망을 뛰어넘어 박건우가 한국의 승리를 이끄는 기적 같은 활약을 펼치길 기대한다.
김원익 MK스포츠 기자(one.2@mae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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