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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통역까지’ 김연경, 마지막일지 모를 ‘불꽃’을 태운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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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김연경(왼쪽에서 2번째)이 23일 한국도로공사전 작전타임 때 아본단자 감독(가운데)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KOVO
흥국생명 김연경(왼쪽에서 2번째)이 23일 한국도로공사전 작전타임 때 아본단자 감독(가운데)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사진=KOVO

김연경(35·인천 흥국생명)의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이젠 통역사로도 변신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시즌. 김연경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팀을 위해 쏟는다.

김연경은 23일 인천 부평구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김천 한국도로공사와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홈경기에서 서브에이스 2개와 블로킹 하나 포함 18득점 맹활약, 3-0(25-19 25-17 28-26) 셧아웃 승리를 견인했다.

이날 승리로 흥국생명은 23승 7패, 승점 69를 기록해 2위 수원 현대건설(승점 62)과 격차를 더욱 벌렸다.

지난달 권순찬 전 감독이 석연찮은 이유로 경질된 뒤 ‘감독 대행의 대행’ 김대경 코치 체제로 치른 50여일 흥국생명이 무너지지 않고 선두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엔 단연 김연경의 역할이 지대했다. 김연경은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후배들을 다독이며 코트 안팎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보였다.

과거 튀르키예 페네르바체에서 사제의 연을 맺었던 마르첼로 아본단자(53·이탈리아) 신임 감독과 처음 호흡을 맞추는 경기.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경기 전부터 팀에 시즌 전적 4전 전패를 안겼던 김연경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냈지만 이날도 결국 에이스 봉쇄에 실패했다. 1,2세트에만 성공률 60% 이상의 공격으로 13득점한 김연경을 막지 못하며 무너졌고 결국 결과는 흥국생명의 완승이었다.

경기 후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은 “(김연경과 옐레나 중) 한 쪽을 막겠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라며 “상대가 공략적으로 때론 짧게, 길게 잘 때렸다”고 체념하듯 말했다.

페네르바체에서 김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3회 우승을 일궈냈던 아본단자 감독은 경기 전후 “(김연경은) 말할 것도 없이 세계 최고 선수”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로공사의 블로킹 벽을 뚫고 강스파이크를 꽂아넣고 있는 김연경(오른쪽). /사진=KOVO
도로공사의 블로킹 벽을 뚫고 강스파이크를 꽂아넣고 있는 김연경(오른쪽). /사진=KOVO

아본단자 감독이 주목한 건 경기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퍼포먼스만이 아니었다. 그는 “(김연경은) 페네르바체에서도 경기력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면을 보여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라고 느꼈다”고 전했다.

김연경은 이날 경기에서 팀을 위해 아본단자 감독의 통역사로 변신했다. 코트 안에서 아본단자 감독의 즉각적인 지시를 캐치해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전타임 때에도 이 같은 임무를 수행했다. 오랜 해외 무대 생활로 외국어가 능통하고 아본단자 감독의 생각을 훤히 읽고 있는 김연경은 공식 통역사의 설명만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감독의 ‘진짜 메시지’를 선수들에게 풀어 설명하며 이해를 도왔다.

아본단자 감독의 특별한 부탁이 있었다. 김연경은 경기 후 “코트 안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기에 그런(아본단자 감독의 지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더 할 것 같다. 도움도 요청하셨다”며 “작전을 내릴 때 빠르게 전달하는 등 감독님이 잘 적응하시도록, 선수들도 선진 배구 시스템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명장에게 배울 것이 많겠지만 자칫 언어 문제로 삐걱거릴 수도 있다. 그러나 김연경이 있기에 걱정이 없다. 그는 “사흘 훈련했는데 분위기가 좋았고 (감독님의) 에너지 넘치는 부분들도 잘 받아들이며 훈련했다”면서도 “디테일 한 점에서 (기존 방식과) 많이 다르기에 집중 안하면 놓치는 게 생겨 미스가 날 수도 있다. 더 집중해서 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연경은 앞서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본단자 감독은 경기 전 “유럽에서도 그렇고 소문들을 잘 믿지 않는다”더니 경기 후엔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오늘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부임 초반부터 조만간 특급 에이스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에 시달리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 한 경기였지만 여전히 건재한 김연경의 특급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연경도 경기 후 “은퇴 얘기가 너무 많이 나왔다. 그 얘긴 안했으면 좋겠다”며 “감독님이 오셔서 올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우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집중할 것”이라고 조심스러워 했다.

올 시즌이 김연경의 마지막 시즌이 될지, 아본단자 아래서 현역생활을 연장할지는 김연경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나 분명한 건 김연경이 팀의 해결사이자 정신적 지주, 이젠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감독과 선수들의 소통창구 역할까지 맡게 됐다는 것이다. 마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감독과 동료 선수들, 프런트와 팬들까지 김연경을 떠받들게 만드는 동시에 그와 이별을 상상 조차 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득점 후 동료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는 김연경(가운데). /사진=KOVO
득점 후 동료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는 김연경(가운데). /사진=KOVO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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